괴롭히는 상사, 방치하는 회사 “동료가 동료 아니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철강제조전문업체 휴스틸이 복직 판결받고 돌아온 직원을 다시 해고하기 위해 ‘복직자 해고 매뉴얼’을 만들어 운영한 사실이 알려지며, 파문이 일고 있다.

이 문건에는 복직자의 이름과 이들의 퇴사를 유도할 방법 등이 상세히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소식을 접한 근로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면서도 씁쓸해 했다. 이유인즉 이와 유사한 일이 다른 기업에서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월과 4월에도 유사한 일이 폭로된 바 있다. 관련 내용을 토대로 기업에 만연한 ‘해고자 관리’실태를 파헤쳐본다.
 

능력 이하 업무 배당·무시와 소외·직장 내 괴롭힘 등 다반사
직장 내 차별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산업재해…관련 법 발의 중

정규직으로 6급 시험에 합격해 근무하다 사내결혼을 한 2쌍의 부부사원이 있었다. 2015년 6월께 통상 정년 1년 남은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명예퇴직 대상자에 부부사원 중 1명씩이 포함됐다.

처음에는 신경쓸 필요 없다던 전무가 2쌍의 부부사원의 남편인 남직원 2명을 호출해 배우자를 퇴직시킬 것을 강요했고 여직원 2명은 전략기획 상무가 호출해 같은 강요를 받았다.

명예퇴직 신청 기간 종료일까지 퇴직 신청을 하지않자 조합장으로부터 유감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2쌍의 부부 중 임신 중이던 1쌍의 부부사원에게 퇴사 강요가 집중됐다. 이후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임신기간 중 아이의 태동이 느껴지지 않아 병원진료를 받으러 간 적도 있다.

출산 전,후 휴가기간에도 퇴사 강요가 지속적으로 이뤄졌으며 전략기획상무는 남편에게 “부인이 축산에 가서 고기를 썰 수도 있다”고 압박했다. 실제 해당 기업 노조가 증거로 내민 녹취록에는 “(전략기획상무 왈) 니네, 니네 버텨봐야 못 버텨. 막말로다가 니 마트 축산 이런 데 가서 고기 썰으라고 하면 어떡할거야. 이러면 얼마나 꼴이 우스워져”라고 했다.

문제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출산 후 복귀와 함께 본점 금융업무에서 축산파트로 인사발령이 났고 영하의 냉동고에서 생고기를 나르고 축산물을 칼로 자르는 업무를 하게 됐다. 부당한 인사발령에도 여직원이 지속적으로 근무하자 6명 한 팀의 부서에 7명을 배정해 해당 여직원이 업무 배제를 당하는 수모를 겪게 했다. 결국 이 여성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퇴사를 결정했다.

날개 꺾인 노동자들

대법원 판결을 통해 드러난 해고 매뉴얼도 있었다. 일명 ‘CP(부진인력)퇴출 프로그램’이다.

우선 이 회사 내에 존재하는 특이한 부서인 업무지원단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
이 회사에 입성한 A회장은 취임 직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 8304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A회장은  구조조정이 일단락된 직후 ‘업무지원단’이라는 신설조직을 만든 후, 명예퇴직을 거부한 직원, 민주노조 활동가 등 291명을 발령했다. 이들은 경기 지역 등 주로 대도시 외곽 지역에 배치됐고 그동안 담당해 온 인터넷, TV 판매의 영업과 통신시설 유지보수 등의 업무와 무관한 생소한 업무가 부여됐다.

또 부당한 업무 지시로 괴롭히면서 자진 퇴사를 유도했던 ‘CP(부진인력) 퇴출프로그램’을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B 과장에 대한 탄압 사례다. 
‘무선품질측정’이라는 외근 현장업무를 지시받은 B과장이 다른 직원들처럼 샤워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자, 회사는 외부 사우나 티켓을 끊어 주며 18시 이후에 샤워하고 퇴근하라는 지침을 전달하였다.

퇴근시간 전에 전화국 내에 설치된 샤워장을 사용하고 퇴근하는 현장근무직 남직원들과 비교할 때 엄연한 차별 행위였다. 이에 B과장이 차별 철폐를 요청하는 글을 노조 홈페이지 등에 게시해 문제 제기를 하자 회사는 서면 경고를 하는 등 압박하였고, 국가인권위에 여성차별 진정을 제기하자 2015년 인사고과에서 최하위 등급을 주는 등 불이익을 주었다. 

사무실 대기는 또 다른 괴롭힘의 시작이었다. 청사 내에서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팀장이 뒤를 따라오는 감시 행위가 시작되었고, 업무 협의를 빌미로 본부 관리자 등이 방문하여 온갖 모욕적인 언행과 무시를 일삼았다.

그들은 B과장을 거짓말쟁이로 몰고 “이 양반이”, “당신이” 등 멸시하는 호칭과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산재요양을 받고 정상적인 근무를 하지 못한 B과장에게 2016년 인사고과에서도 최하위 등급을 부여했다.

업무지원단으로 강제발령을 받은 노동자들은 ‘업무지원단 철폐투쟁위원회’를 만들어 회사의 부당한 발령과 업무지시에 맞섰으며, 3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회사에게 업무지원단을 해체하고 일반 업무로 복귀시킬 것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태이다.

사내 괴롭힘 탓에 어렵게 얻은 직장을 박차고 나가는 신입 퇴사 행렬도 늘고 있다. 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지난해 전국 306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2016년 신입사원 채용실태)에 따르면, 대졸 신입 사원이 1년 내 퇴사하는 비율은 2012년 23.6%에서 지난해 27.7%로 급증했다. 네 명 중 한 명은 1년을 못 버틴다는 얘기. 경총은 “조직 및 직무적응 실패(49.1%) 같이 입사 초기 조직 부적응에 대한 불만으로 퇴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2차 피해 ‘산재’ 법안 상정

한 노동연구가는 “직장 내 괴롭힘은 특히 연령이 낮거나 여성, 비정규직인 경우 더 빈번하다”며 “이들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보단 속으로만 앓다가 결국 사표를 던지게 된다”고 진단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지난 4월 방영된 MBC ‘무한도전’에 출연 당시 ‘직장 내 멘탈 털기 금지법’을 제안한 국민의원이 “직장 내 상사 등이 자신들의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부하 직원이나 여직원들의 멘탈이 털릴 정도로 괴롭히는 것”이라고 설명해 시청자들의 깊은 공감을 얻은 바 있다.

이어 “직장 내 1주일에 1번 이상씩 6개월 이상 상사라든지 직장 내 관계 안에서 괴롭힘을 당하면서, 정신적 고통을 받는 것은 산업재해에 해당한다”며 “앞으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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