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추다르크’의 거침없는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또 한 번 당청 갈등의 진원지로 떠오른 것이다. 추 대표는 과거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당 ‘인사추천위’를 구성해 당 대표로서의 인사권을 행사하려 했지만 당내 친문계의 반발로 물러서야 했다. 추 대표와 친문·청와대 간 ‘파워 게임’의 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후 추 대표는 ‘머리 자르기’ 발언으로 국민의당이 보수 야당의 국회 보이콧 대열에 합류하게 만들며 복수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한동안 잠잠했던 ‘추다르크’가 3차 반란을 도모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청와대에 비서관 등으로 입성한 지역위원장이 맡고 있는 곳을 포함한 15개 지역구를 ‘사고당’으로 지정했다. 당의 지역 기반인 당협위원장(지역위원장)에 대행을 임명하는 대신 자신의 사람들로 채워 당을 장악하겠다는 속내로 풀이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에 일조했지만 친문 주류에 밀려 비주류의 설움을 겪고 있는 추 대표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당청 간에 어떤 역학관계가 새로이 조성될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1차 ‘인사추천위’ 敗, 2차 ‘머리 자르기’ 勝... 3차는?
- 親文 “배려해줄 수도 있는데... 너무한 것 아니냐” 볼멘소리
 

[1차 반란] ‘인사추천위’
당·청 ‘파워게임’의 서막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정부 내각에 주요 인사를 천거하려 했던 더불어민주당의 ‘인사추천위원회’가 당·청 갈등 양상까지 보이며 좌초된 바 있다. 민주당은 지난 5월 12일 당무위원회를 열어 인사추천위원회와 관련한 조항을 당헌 개정안에서 삭제하기로 했다. ‘인사추천위’는 추미애 대표가 밀어붙였던 카드였으나 당내 친문계가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제동을 걸었다.
 
인사추천위는 추 대표가 지난해 8·27 전당대회에서 공약으로 내걸었던 기구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당·청 일체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를 만들겠다”며 화답했다. 당 지도부와 청와대가 인사와 정책을 공유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추 대표도 문 대통령 특유의 ‘OK화법’의 또 다른 희생양일 뿐이었던 것이다. ‘OK 화법’이란 문 대통령이 처음에는 ‘알았다’, ‘좋다’고 한 사안에 대해서 뒤돌아서서 다른 입장을 내놓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보니 생겨난 단어다.
 
민주당에서 비주류로 전 고위 당직을 지낸 한 인사는 “안철수 전 대표를 비롯해 손학규, 박지원, 윤여준, 김종인, 이상돈 등 민주당을 떠난 사람들의 한결같은 지적이 ‘문 전 대표와 독대할 때는 반드시 녹음을 해야 한다’는 넋두리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당시 정치권 관계자들은 “당헌 개정안에 당이 인사를 추천한다는 취지는 아직 남아있다”며 “당장은 친문계의 벽에 막혀 한 발 물러난 추 대표지만 그의 인사권 행사 의지가 워낙 확고하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권 논란이 재점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2차 반란] ‘머리 자르기’ 파문
국민의당 절실한 청와대에 일격...
 

이 같은 정치권의 추측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화됐다. 추 대표의 청와대에 대한 앙금이 ‘머리 자르기’ 발언 파문으로 도출된 것이다. 추 대표의 국민의당 지도부를 향한 날 선 발언은 국민의당이 보수 야당의 편에 서는 사태를 초래했고, 그 결과 국회가 ‘올 스톱’ 되면서 당시 논의 중이던 추경과 정부조직법 논의가 완전히 멈춰 서게 만들었다. 집권 여당 대표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친문계 중진의원들은 즉각 추 대표에게 ‘유감 표명’을 요청했으나 추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추 대표는 지난 7월 13일 제주도에서 현장 최고위를 주재한 자리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정부 역시 당과 청와대가 분리됨으로써 흔들렸고 끝까지 가지 못했다”며 “세 번째는 반드시 성공시키는데 당력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모든 난관을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여당이 됐다고 여당인 척하는 게 아니라 원래 우리가 갖고 있던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발 등에 불이 떨어진 청와대가 ‘대리 사과’를 자처하면서 상황을 급히 무마했지만 추 대표는 세를 꺾지 않았다. 그는 7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의 영수회담 자리에서 문 대통령에게 “여당 대표가 막무가내로 대리사과를 당하기 전에 대통령도 여당 대표와 소통해달라”고 말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의 ‘대리 사과’가 자신과의 충분한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것에 대해 우회적인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당시 정치권은 추 대표가 ‘머리 자르기’ 파문으로 비판 여론에 직면한 것은 사실이지만 집권 여당 대표로서 청와대에 존재감을 강하게 어필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실보다 득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인사추진위’가 백지화된 이후 청와대가 민주당 원내지도부와는 소통하고, 추 대표는 논의에서 소외시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대두되는 시점에서 집권여당 대표의 도움 없이는 국정운영이 쉽지 않다는 점을 청와대에 확실히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3차 반란] 靑 비서관 8인방
‘사고지역위’ 지정

 
기세를 탄 추 대표는 청와대에 비서관 등으로 입성한 지역위원장이 맡고 있는 곳이 포함된 지역구를 ‘사고당’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민주당이 평소 공직 문제로 지역위원장이 공석이 된 경우 사고지역위로 결정하지 않고 직무대행을 임명한 점을 봤을 때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다.
 
현재 민주당은 총 15개 지역위원회를 ‘사고위원회’로 지정해둔 상태다. 여기에는 나소열 자치분권비서관(충남 서산·태안), 박수현 대변인(충남 공주·부여·청양), 백원우 민정비서관(경기 시흥갑), 정태호 정책기획비서관(서울 관악을), 조한기 의전비서관(충남 보령·서천),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서울 강서을), 한병도 정무비서관(전북 익산을), 박남현 제도개선비서관실 행정관(경남 창원·마산·합포)의 8명의 지역구도 포함돼 있다.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임명된 배재정 전 의원(부산 사상)의 지역구를 합치면 총 9곳을 청와대와 정부 진출을 이유로 사고당으로 지정한 것이다.
 
아울러 탈당 절차를 진행 중인 은수미 여성가족비서관(경기 성남 중원), 신정훈 농업비서관(전남 나주·화순), 백두현 정무수석실 자치분권행정관(경남 통영·고성), 오중기 정책실균형발전행정관(경북 포항 북구), 허대만 행정안전부 정책보좌관(경북 포함 남구·울릉)이 맡고 있는 5곳도 당적이 정리되는 대로 ‘사고지역위’로 의결할 예정이다.
 
이에 시선은 자연스럽게 지역위원장 선정에 큰 권한을 가진 당의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로 모이고 있다. 지역위원장은 차기 총선 공천 과정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년 6월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도 적잖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다. 따라서 새 위원장 자리에 기존 지역위원장의 영향력 밖에 있는 인사가 임명된다면 기존의 지역위원장의 정치적 공간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자 청와대 입성에 성공한 기존의 지역위원장들과 친문계 인사들 사이에선 “배려해 줄 수도 있는데,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곳곳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공직 문제로 당적을 잠깐 정리한 경우 사고지역위로 결정하지 않고 이전처럼 직전 지역위원장의 입장을 존중해서 직무대행을 임명하면 되는데 굳이 사고지역위로 결정한 배경이 궁금하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8월 중 최재성 전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당내 혁신기구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추 대표는 지난달 28일 “100년 정당'을 목표로 당 체질을 개선하고 시스템을 정비하겠다. 당의 힘은 당원으로부터 나오니까 당세의 확장, 당의 체력 확장, 체질 강화를 하겠다”면서 혁신위 구성을 공식화했다.
 
그러자 추 대표에 반감을 갖고 있던 당내 친문계 인사들 사이에선 혁신위 추진을 오랫동안 구상해온 추 대표가 지방선거를 1년 앞두고 당 장악력 강화 행보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더욱이 혁신위원장에 추 대표 측 3선 최재성 전 의원이 내정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추 대표가 공천 과정에서 '입김'을 강화하려는 것이란 우려도 내놓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자신과 닮은 류석춘 위원장을 임명하고, 지역당협위원장 물갈이에 나서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2015년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냈던 대표적 ‘친문 인사’였으나, 최근엔 추 대표의 최측근으로 불린다.
 
이렇듯 당내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고조되자 추 대표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날 것이라는 게 여권 내 전언이다. 추 대표가 ‘사고당’으로 지정한 모든 곳에 자신의 사람을 심지는 못할 것이고 일부에는 새 위원장을 임명하고 일부는 기존의 대행 체제를 유지하는 방식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추 대표 나름의 ‘절충안’도 기존 위원장들의 불만의 목소리를 가라앉히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행이 아닌 새로운 위원장이 임명된 지역의 위원장 입장에선 “차별하느냐”는 말이 나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적전분열 양상이 결국 안보 정국에서 취임 후 첫 위기를 맞고 있는 정부에 난기류를 몰고 올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