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돌아서지 못한 이름, 몽펠리에
카르카손에서 나와 몽펠리에로 향한다. 프랑스 남부의 랑그독 루씨옹 지방의 주도로 좀 더 지중해성 기후와 가까운 곳. 그래서 볕은 유난히 좋았고,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맑고 맛있었다. 그래서 특별히 이곳에서는 저녁이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할 것. 몽펠리에를 전부 다 담고 싶다면.
몽펠리에의 중심인 코메디 광장에 서면 언젠가 파리에서 느꼈던 묘한 기시감이 얼핏 주위를 감싼다. 유독 파리를 닮고 싶어했다는 몽펠리에. 프랑스 내 리틀 파리가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오페라 극장 앞에는 프랑스 어디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회전목마가 서 있고 삼미신 분수가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삼미신 분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와 부인인 에우뤼노메의 딸들인 아글라이아, 에우프로쉬네, 탈리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유쾌함과 환희, 아름다움과 눈부신 빛 그리고 풍요와 축제. 아마도 이것이 몽펠리에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의 전부가 아닐는지.
개선문 그리고 몽펠리에 대성당
리틀 샹젤리제라 불리는 포슈 거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길 끝에 개선문이 보인다. 몽펠리에 법원이 바로 옆에 있다. 루이14세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파리의 개선문을 모델로 한 리틀 개선문.
대법원 너머 오른쪽으로 몽펠리에 의대가 보이고 정면에 페이루 공원이 크게 펼쳐진다. 1180년 설립된 몽펠리에 의과대학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프랑스 의학이 집대성 된 중심지로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최초로 발표된 졸업식도 이곳에서의 졸업식이었다고 한다.
단테, 보카치오와 더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문학자 중 한 명이었던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몽펠리에에서 머물던 당시의 집을 들른 후 이번엔 유럽 최고의 해부학 관련 박물관으로 향한다.
글쎄, 이곳을 단순한 광장이나 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만족해야 할까. 몽펠리에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딱히 로맨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프랑스의, 그러니까 몽펠리에식 낭만이 이토록 넘치는 곳을. 낮 시간에 개선문을 지나 잠시 들렸던 페이루 광장을 저녁 시간에 다시 찾았다. 공원을 나올 때까지 뒤를 돌아보며 남았던 아쉬움이 오래도록 진하게 배었기 때문이다.
샤또 드 플뢰제르그
몽펠리에는 일 년 내내 날씨가 좋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땅에 300여 일 동안 내린 축복. 프랑스 와인의 1/3은 이곳 랑그독 루씨옹에서 생산된다.
물이 전하는 신화, 퐁 뒤 가르
몽펠리에에서 두 시간 남짓, 님을 지나 북서쪽으로 작은 마을들을 따라가다 보면 퐁 뒤 가르라는 거대한 고대 로마의 수로교를 만날 수 있다. 석회암으로 건조됐으며 50여km 떨어진 님 지역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기독교가 전파되기도 전 시기에 지어졌다.
아레나 님
님에 도착해서 거리를 걷다 보면 그리고 님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고 오지 못한 사람이라면 어느 지점에서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경이와 찬탄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 로마에만 있었다고 생각한 바로 그 세계인류문화유산인 콜로세움, 본토인 로마의 것보다 보존 상태가 훨씬 좋은 것을 넘어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는 님의 아레나이다.
과거 로마제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남프랑스 지역에는 유난히 그 시대의 유적들이 많고 이곳 사람들 또한 자신들의 역사 속 일부라고 생각해 보존과 유지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육중한 벽들과 돌기둥이 늘어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입구로 들어가 콜로세움을 직접 경험하는 시간. 경기장 안에서 밖으로 이어지는 유난히 많은 출입구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보다 빠르게 드나들기 위해 고안한 디자인이었다니, 그 당시 이미 시스템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를 갖춘 그들의 아이디어에 역시 또 한 번 경이와 찬탄을 보낸다.
과거에는 물론 이곳에서 검투사들끼리 결투를 벌였다. 패배한 자가 현장에서 왕의 지시에 의해 바로 죽임을 당하는 것은 상업영화가 지닌 왜곡된 정보라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투우의 종가인 스페인, 특히 바로 옆에 이웃한 카탈루냐 지방이 투우를 법적으로 금지시키고 있는 데 반해 아를과 이곳 님에서는 아직도 투우를 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1년에 2차례 정도 열린다.
메종 카헤 & 카헤 시립 현대 미술관
아레나에서 내려와 작은 도시 님의 골목을 따라 걷는다. 사람도 많지 않고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도시가 아니라서 한적한 공간은 오로지 걷는 사람의 몫이다.
<사진=여행매거진 Go-On>
프리랜서 이곤 기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