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일본의 다도를 경험한 적이 있다. 일본 전통가옥의 정원과 긴 복도를 지나 다다미방으로 들어가니 다도실 이었다. 방 한가운데에 찻물을 끓이는 솥이 걸려있는 정갈하면서 독특한 공간이었다.
 
들어가기 전부터 다도실에 들어가면 떠들어서는 안 된다는 안내를 받았던 터라 조용하게 앉아 기다렸다. 전문 다도인이 들어와 차를 만드는 과정은 조용함을 넘어서 엄숙함마저 느껴졌다.
 
많은 담소를 나누며 차와 다과를 대화의 소재로 여기는 우리의 문화와는 달리 일본의 다도는 오롯이 한 잔의 차에 집중하게 된다. 차의 빛깔, 향, 잔을 통해 느껴지는 온도, 물이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쌉쌀한 맛을 마치 명상을 하듯 느끼게 된다.
 
차 문화에 있어 우리나라는 예의를 갖춰 마신다 하여 다례라 하고 일본은 절도 있게 마신다 하여 다도라 한다는 말이 있다. 일본은 그만큼 차 한 잔도 장인 정신을 가지고 만들어 마신다.
 
이렇듯 차 마시는 시간과 장소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본에서 커피는 어떤 위치일까? 일본은 세계에서 생두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로 미국, 독일 다음이다. 아시아에서는 단연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18세기 네덜란드에 의해 처음 커피를 접한 일본인들은 커피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재료 고유의 맛을 지켜내는 일본의 음식과 머신으로 내린 크레마 가득한 커피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음식과 어울리고 담백한 커피를 찾다가 발견을 하게 된 것이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이다. 1908년 독일의 밀리타 벤츠 여사가 발명한 핸드드립커피는 엉뚱하게도 일본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칼리타, 하리오, 고노 등 핸드드립 도구들은 모두 일본에서 발명하고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핸드드립 커피는 원두를 조금 굵게 갈아 종이필터가 올려 진 드리퍼에 담는다. 그리고 90℃정도로 온도를 맞춘 물을 얇은 수구가 달린 주전자로 일정한 속도로 따라준다. 이렇게 내려진 커피는 크레마가 깨끗하게 걸러져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
 
내리는 방법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큰 편인데 드리퍼 도구에 따라, 주전자의 형태에 따라, 또 내리는 사람의 속도에 따라 같은 원두임에도 맛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꽤 숙련된 속도감과 절제된 행동으로 커피를 내려야 하고 만드는 과정이 정적인 핸드드립 커피는 어딘가 일본의 다도와 많이 닮아 있다.
 
핸드 드립으로 내린 커피의 담백하고 깔끔한 맛은 일식과 잘 어울리고 만드는 과정도 차를 우릴 때의 엄숙함이 그대로 베어있어 일본의 커피문화의 발전사를 유추해 볼 수 있다.
 
물론 세계적인 커피브랜드 UCC, 도토루 등이 일본에서 탄생을 하였고 미국의 커피문화인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도 대중화가 되었지만 일본의 커피하면 핸드드립커피를 빼놓고는 얘기를 할 수 없다. 비록 타국의 음료임에도 자국의 문화를 녹여내어 새로운 커피산업의 꽃을 피운 핸드드립커피는 가장 일본다운 모습일 것이다.

이성무 동국대 전산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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