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수원 강의석 기자]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남긴 세계적인 걸작 문화재다. 잘 알려졌다시피 정조의 아버지는 당쟁에 휘말려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사도세자이다.

효심 깊은 정조는 아버지의 묘를 조선 최대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옮기며, 수원화성을 축성하게 된다.

정조의 효심이 수원화성 축성의 배경이지만, 수원화성은 정조의 더 많은 이상과 의지를 담고 있다. 즉,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서의 비전이 내포돼 있는 것이다.

아울러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복안도 숨어 있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해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채제공의 총괄 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했다.

축성시 거중기 등 최신 발명품과 신기술이 총동원 된 사실이 눈에 띈다. 수원화성 축성과 함께 부속시설물로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 등 많은 시설물을 건립하였으나, 전란으로 소멸, 현재 화성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있다.

수원화성은 축조 이후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됐으나 1970년대 후반 ‘화성성역의궤’를 참고로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 지형은 평지를 이루지만,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고지대의 형태를 보인다.

성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砲)루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9, 은구 2 등 총 48개의 시설물로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7개 시설물이 소멸돼 현재 41개 시설물이 현존하고 있다.

수원화성은 축성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돼 있을 뿐 아니라,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 역시 현재까지 그대로 흐르고 있다.

또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이 현재에도 도시 내부 가로망 구성의 주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220여 년 전 성의 골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한편 수원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특히 당대학자들이 충분한 연구와 치밀한 계획에 의해 동서양 축성술을 집약해 축성했기 때문에 그 건축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축성 후 1801년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는 축성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계산, 시공기계,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성곽축성 등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료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며, 세계인을 불러 모으는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재가 됐다.

18세기에 완공된 짧은 역사의 유산이지만 동서양의 군사시설이론을 잘 배합시킨 독특한 성으로서 방어적 기능이 뛰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약 6km에 달하는 성벽 안에는 4개의 성문이 있으며 모든 건조물이 각기 모양과 디자인이 다른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기준 (Ⅱ)와 (Ⅲ)을 충족시키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기준(Ⅱ)은 일정한 시간에 걸쳐 혹은 세계의 한 문화권내에서 건축, 기념물조각, 정원 및 조경디자인, 관련예술 또는 인간정주 등의 결과로서 일어난 발전사항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유산 기준(Ⅲ)은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유산을 말한다.

이처럼 수원화성의 축조 배경과 그 의미를 알아봄으로써 정조대왕의 시대적상황과 그 정신을 들여다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정조대왕의 업적을 기리면서, 그 효의 역사적 가치를 받아들이고 그 얼을 계승하면서, 자랑스러운 후손들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수도권 강의석 기자  kasa59@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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