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현 상황은 가히 난세(亂世)라 할 수 있다. 2017년은 420년 전 정유재란이 일어났던 해와 같은 정유년(丁酉年)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따른 극심한 국론분열과 불신, 안보 불감증, 북핵·미사일 대남 협박과 미국의 대북 ‘예방전쟁론’ 등으로 삼각, 사각의 국가위기 속에서 우리는 천하대란의 불신시대를 불안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마침 21일부터 31일까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 존 하이튼 전략사령관, 새뮤얼 그리브스 국방부 미사일방어청장 등 미군 수뇌부 3인이 UFG를 직접 참관하며 합동 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주한미군 철수설’을 잠재우고 미국의 한반도 방어 의지를 과시하는 효과가 있다 하겠다. 이번 연합훈련을 통해 ‘김정은이 잠 못 잘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과시해야 한다. 김정은의 도발 의지는 말이 아닌 강력한 군사력과 김정은 참수작전 공포에 의해서만 억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7일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취임 100일 국정운영 지지도에서 서민·약자 우선 정책, 탈권위·소통·공감 행보, 개혁소신·추진력 등에서는 긍정평가가 많았고, 선심성 정책 과다, 내편·네편 편가르기, 외교·안보능력 부족 등에서는 부정평가가 많았다.

결국 대통령의 성패는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사에 의해 좌우된다.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역대 모든 대통령들은 인사를 할 때 능력 우선이냐, 아니면 개인적인 충성 우선이냐에 대해서 많은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을지문덕, 이순신이나 제갈공명과 같은 능력과 충성을 고루 갖춘 인걸(人傑)들이 많다면 걱정할 것이 없겠지만.
 
치세(治世)에는 ‘임인유친’(任人唯親, 능력과는 관계없이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만 임용)의 인사가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지만, 난세(亂世)에는 무엇보다 ‘임인유현’(任人唯賢, 인품과 능력만을 믿고 사람을 등용)의 인사를 해야 한다. 난세에 ‘임인유친’의 인사를 한 경우 국가는 쇠망하고, 그 지도자도 불행하게 끝나는 일이 다반사인 것은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임인유현’의 인사 성공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중국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 위청(衛靑, ?~BC106)은 노예의 사생아 출신이었지만, 7회에 걸친 북방(흉노) 정벌에서 전공(戰功)을 세워 용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원나라 칭기즈칸 때 야율초재(耶律楚材, 1190~1244)는 거란족 출신이었지만, 국정목표를 민생보호와 정치발전에 설정, 몽골의 ‘한화(漢化)’를 위한 길잡이 역할까지 해내어 오늘날까지 중국인(한족)의 우러름을 받고 있다.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 가지 해로운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고, 한 가지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은 한 가지 일을 줄이는 것만 못하다(흥일리불약제일해 생일사불약멸일사, 興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명재상 야율초재가 남긴 이 말은 ‘안정 속의 개혁’ 기조를 강조한 것으로 800년이 지난 지금도 공감을 얻고 있다.

정치 격동기에는 능력과 덕망과는 거리가 먼 진보인 체하는 경조부박(輕佻浮薄, 말이나 행동이 신중하지 못하고 가벼움)한 부류들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새 정부의 인사에 대해 “역대정권 중 가장 균형인사, 탕평인사, 통합인사”라고 자화자찬한 바 있다.

그러나 4일 후인 21일에는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분노한 국민에게 사과해야 했다. 애당초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인사는 ‘임인유현’의 인사와는 거리가 먼 ‘임인유친’의 코드인사, 편중인사, 보은인사의 결정판이었기 때문에 무능한 류영진 처장에 대한 야당의 해임 요구는 어쩌면 당연하다.
 
문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강조했던 책임총리제는 용두사미가 되어버렸고, 새 정부의 ‘복지 개혁’ 속도는 마라톤 코스를 100미터 경주 식으로 과속하는 격이다. 이 같은 산타클로스식 포퓰리즘 정책은 필시 ‘재정대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한다.’는 잠바브웨이의 속담을 차분히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세력의 결집과 권력 공고화, 기득권층에 대한 타격, 그리고 지지도 제고를 위해 ‘적폐청산’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촛불세력의 공동 목표로 보수 정권 9년에 대한 정치 보복행위이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 법과 칼에 의한 보복정치는 하책(下策)의 정치이다.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나 김영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인사는 특정 이념에 치우친 사람의 발탁으로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사법부 코드 인사’이다.
 
문 대통령은 지금 높은 지지율에 고무되어 진영논리에 갇혀 ‘과거와 싸우는’ 국정 운영을 하고 있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를 못 내게 한 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것으로 집권자의 특권이 될 수 없다. 인위적인 과거청산 작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 정치사가 주는 교훈이다.

정치의 세계는 일면관(一面觀)에 치우치면 안 된다. 문 대통령은 활인(活人)의 도(道)를 정치에 접목시켜야 한다. 불인지심(不忍之心, 타인의 불행을 남의 일 같지 않게 느끼는 마음)으로 포덕(布德)의 정치를 펴야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박수는 사람을 어리석게 만든다. 박수치고 또 박수치라. 대장은 스스로 넘어질 것이다.”라는 선현들의 말씀을 문 대통령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쇠망하는 것을 바라는 국민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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