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표를 줘야 하는지 …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신학기를 맞아 서울시내 모 여자고등학교에 하루 명예교사로 나섰다가 강의가 끝난후 한 학생으로부터 ‘그런데 어떤 일 하세요?’란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이날 정의장은 방송기자에서 정치인이 되기까지의 자신의 꿈 얘기를 들려주고 정치가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여성의 정치 참여가 확대돼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학생 질문을 유도했다는 것이다.아마 정의장은 개혁을 바라는 젊은 세대의 싱싱하고 패기 넘치는 질문을 기대해 마지않았을 것이고 모르긴 해도 그에 답하는 자신의 당당한 목소리가 교실 가득히 넘쳐나는 그림을 그려내고 싶었을 게다. 그런데 그처럼 황당한 질문을 받고 말았으니 정동영의장 표정이 어떠했을 지는 가늠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머쓱한 표정으로 뒷맛이 영 개운치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그 자리에 다른 정치인이 있었다고 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면 한 여학생의 엉뚱해 보이는 질문이 절대로 엉뚱한 것이 아니라 너무도 솔직하게 정곡을 찔렀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아무리 입시준비에 매달려 있는 학생처지라지만 밤낮 없이 노란색 파카옷을 걸쳐 입고 뉴스 시간대마다 화면 속에 클로즈업되는 정동영의장의 얼굴을 모를 턱없을 터이고 그가 지금 하는 일이 뭔지를 모를 까닭도 없다.부끄러워 차마 얼굴 들 수가그럼에도 이 땅의 고등학생이 그를 향해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냐고 묻고 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10대 후반의 소녀가 나라안의 돼먹지 않은 정치판을 싸잡아 질타했다는 생각이 백에 하나라도 들었다면 부끄러워서 차마 얼굴을 바로 들 수가 없었을 것이다.이제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 사태까지 몰고 온 17대 국회의원 선거 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종래의 선거 분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살벌함이 배어있는 만큼 선거 후유증 또한 예상 못할 상황을 예비하고 있지나 않을는지 불안하기 그지없다.정치가 그 지경인데다 민족문화는 중국의 중대한 역사 침략을 받고 있고, 사회를 지탱해온 도덕규범은 말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책임을 탓하고 따질 여유도 없다누구의 책임을 따지고 탓할 여유조차 없는 작금의 나라꼴을 해 놓고도 무슨 할 말들이 그리 많은지 자고 뜨면 기자회견하고 또 토론한다고 법석이다.뭘 국민에게 호소하고 어떤 걸 개혁하자는 건지, 또 누구를 위해 표를 달라는 건지 과연 그에 관심 있는 국민이 있을지 조차 의문스럽다. 하루 벌이가 막막한 실업인구 하나만 들여다봐도 인구 수백만이 무위도식하는 가운데 겨우 직장이 있다해도 전체 근로자의 32%(460만명)가 비정규직이라는 정부 공식 통계가 나왔다.

노동계 주장은 그보다 훨씬 많은 780여만 명이 불완전 고용직에 매달려 있다고 한다. 일부 산업현장은 비정규직이 오히려 정규직을 앞지를 정도로 우리 사회의 고용 패턴에 적색 불이 커져 있는데도 어디에서고 그 어떤 대책도 확연하게 나오는 게 없다. 이런 판에 이제 임기 한달 남짓 남은 국회가 임기 1년 갓 넘은 대통령을 탄핵해서 쫓아내는 상황을 급기야 맞고 말았으니 주눅든 국민들 안절부절 못해서 불안한 가슴을 또 쓸어 내리며 활화산 폭발후의 폐허를 걱정해서 전전 긍긍해 하는 모습이 애처로울 지경이다.‘도대체 지금 뭣하는 분들이세요?’라고 묻고 싶은 것은 서울 모 여고생의 쑥스러워했던 질문이 아니라 그것이 곧 이 나라 현실을 보는 우리들 모두의 한결같은 마음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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