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국민의정부에서 박지원씨의 종횡무진했던 정치권력은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세상 못할 일이 없을 정도로 무소불위 였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시절에는 비서실장의 권위를 추월해서 왕수석이란 신조어를 낳기도 했었다. 이처럼 국민의정부 5년간 소통령으로까지 불리면서 세상 판세를 엮어내던 박씨가 새 정권이 들어서고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내막은 권력 무상의 교훈을 다시 한번 극명하게 확인시키는 대목이었다. DJ정권 말기부터 세간에는 박씨가 미국으로 사실상의 망명을 시도할 것이라는 등 근거 없는 루머가 나돌았던 게 사실이다.

박지원씨의 향후 거취에 대해 세상 이목이 모아진 것은 역설적으로 말해 박씨의 5년 동안 변함없이 지속돼 왔던 정권 실세로서의 영향력을 반추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 현노무현대통령이 그때까지는 누구도 의심치 않았던 이인제 대세론을 뒤집고 광주대회를 기점으로 새로운 대권 다크호스로 떠오르면서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지기 시작했었다. 김심(金心)의 작용과 박지원씨의 역할에 대해 억측이 구구해지면서 박씨의 안정된 국내 생활은 오로지 노무현 대선 후보의 승리가 관건일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물 불 안 가린 박지원의 충성심

그 같은 억측은 당시 민주당 분위기에 비춰서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노무현 대선후보의 탄생에는 반드시 보이지 않는 손의 민첩한 장내 교통정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국민의정부 시절 박씨의 모든 정치적 언행과 일거수일투족은 바로 DJ의 뜻으로 인식됐었다. 따라서 김심에 힘입어 참여정부를 개막시킬 수 있었던 노무현대통령은 불가피한 정치적 상황이 아니고서는 DJ를 크게 섭섭하게 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무리가 아니었던 관계로 참여정부 시작부터 진행된 박지원씨 구속과 중형 구형이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예전의 정치인 구속이 다들 그러했듯 박씨 역시 얼마 안가서 갑자기 신병을 이유로 병보석 허가를 받아 석방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미 30년 전에 녹내장으로 왼쪽 눈을 실명한 박씨가 구속된 후 오른쪽 눈마저 정말 심각한 녹내장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오른쪽 눈의 안압이 갑자기 상승해 구치소의 허가를 받아 외부 병원에서 레이저 수술을 받은 박씨가 더 이상 수감 생활이 어렵다는 전문의 소견서를 받아 재판부에 구속 집행 정지를 신청했다고 한다.

눈감고 아옹도 곧잘했는데

그럼에도 담당 재판부가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자 지난 달 26일 항소심 재판에서 박지원피고인이 재판 진행 중에 발언 신청을 하여 “하나 남은 눈을 살려 달라”며 자신의 절망적 심정을 털어 놨다. 밥을 먹지 못하는 자신에게 “이러면 죽는다”며 교도관이 사다준 빵을 들고 많이 울었다는 그는 “들것에 실려서라도 재판에 꼭 나오겠다”면서 “수형 생활을 달게 받을테니 제발 눈만은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재판을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가는 앰뷸런스 안에서 설움에 복받친 듯 대성통곡했다는 박지원씨의 소식을 접하는 마음이 여간 안타깝지가 않다.

한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세속을 풍미했는가 하면 유독 정치인들의 비리범죄에는 솜방망이로 일관하다시피해서 때로는 눈감고 아옹격이라는 비난까지 감수해야 했을 정도로 사법부 권위가 말이 아니었었다. 그런 점에서 사법부의 냉정함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또한 한결같은 국민의 뜻임에 틀림없을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지은 죄를 미워해도 결코 사람을 미워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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