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기면 끝장’ 은행은 지금 전쟁 중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지자체 금고 쟁탈전이 시작됐다. 금융권에 따르면 대전시, 강원도, 충청북도, 전라남도 등 광역자치단체 4곳과 기초단체 50곳의 금고가 올 연말 교체될 예정이다. 이에 따른 시중은행 간 물밑경쟁이 한창이다. 

이미 시중은행에서는 지자체 금고 유치 경쟁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일부 은행에서 차지하고 있던 금고 업무를 뺏겨 해당 지역의 책임자가 문책성 인사를 당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그렇다면 시중은행들이 지자체 금고 열쇠를 가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 연말 광역자치단체 4곳, 기초단체 50곳 금고 교체 예정
과도한 인센티브 논란…타 은행에 뺏기면 문책성 인사도

지자체 금고 운영권을 따내면 지자체의 주거래은행 자격으로 많게는 수십조 원의 자금을 운용할 수 있어 은행에게는 ‘큰손’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각종 세입금 수납과 세출금 지급, 수입증지 등 유가증권 보관 업무로 최대 100억 원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게다가 지역 공무원과 주민 대상 영업까지 할 수 있다. 또한 1금고와 2금고로 구분돼 1금고는 지자체 관련 모든 세수를 관리하며 2금고는 기금이나 특정 분야의 자금을 담당한다. 한 은행이 1, 2금고를 모두 맡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이 사활을 건다.

특히 올 하반기에는 지자체 중에서도 대어로 꼽히는 대전시, 강원도, 충청북도, 전라남도 등 광역자치단체 4곳과 기초단체 50곳의 금고가 올 연말 교체될 예정이다.

광역단체의 금고 규모도 대전시는 지난달 ‘시금고 지정 및 운영 규칙 일부 개정 규칙안’을 입법 예고하고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금고 은행 재선정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지자체는 일반회계(총 예산의 70~90%)를 담당하는 1금고와 특별회계(총 예산의 10~30%)를 운영하는 2금고를 두고 있다.

대전시 예산은 총 5조 원으로 올해 금고 은행 계약 만료를 앞둔 지자체 가운데 세번째로 크다. 대전시보다 많은 곳은 강원도와 전라남도로 총예산이 각각 6조 원이고 충청북도는 4조 원이다.

이에 각 지자체는 시·도금고 지정 및 운영에 관한 조례 개정을 검토하고 있어 금고지기가 되기 위한 은행 간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중 은행 관계자는 “금고 업무는 4∼5년간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고 지자체와 각종 업무 협력을 강화할 기회도 생긴다”며 “차지하고 있던 금고 업무를 뺏기면 해당 지역의 책임자가 문책성 인사를 당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주회장이 직접 현장 찾아

이렇다 보니 금융지주 회장이 직접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지난달 10일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은행장, 이홍 경영지원그룹 대표 등은 이날 김포와 체결하는 KB통합주전산센터 설립 등 상생발전 업무협약식에 참석했다.

KB금융은 오는 10월부터 김포시 장기동 김포한강신도시에 센터 설립을 위한 첫삽을 뜬다. 공교롭게도  KB금융의 통합주전산센터가 이전하는 김포시는 올해 말 금고(현재 NH농협은행) 교체를 앞두고 있다.

앞서 지난 6월 20일에는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송영길 국회의원과 하나금융타운 1단계 조성사업인 그룹 통합데이터센터 준공식에 참석했다. 하나금융은 은행ㆍ증권ㆍ카드ㆍ보험ㆍ캐피털 등 13개 관계사별로 분산돼 있던 정보기술(IT) 인프라와 인력을 통합 운영하는 통합데이터센터를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건립했다. 하나금융의 통합데이터센터가 들어선 인천광역시는 내년 말 금고(현재 신한은행, 농협은행)를 선정한다. 다른 지주회장들도 마찬가지다. 앞다퉈 지차체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아직 계약 만료까지는 시간이 남았지만 매년 금고 유치전이 치열해 은행권의 물밑작업이 치열하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자체 금고 선정 기준은 재무건전성과 금리, 점포수, 지역사회 기여도 등으로 구성된다.

“수수료 상승 원인” 우려도

하지만 은행 간의 건전성과 금리 수준은 다 비슷하기 때문에 출연금이나 기부금 규모에 따라 당락이 좌우되는 만큼 출혈경쟁이 불가피하고, 지자체 선정을 두고 검은돈이 오가는 등 공정성 시비도 불거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농협 등 5개 시중 은행이 지난해 대학과 병원, 지자체 등 공공기관에 낸 출연금과 기부금은 총 2095억 원이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에서는 은행이 고객에게 저금리로 유치한 돈으로 영업을 위해 수천억 원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국내 시장은 한정돼 있고 성장은 해야 하다 보니 기관 유치 위해 과도한 경쟁을 벌이는 것 같다”며 “이런 영업 경쟁이 일반 소비자의 각종 수수료나 대출 금리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위기감을 느낀 일부 시중은행은 자기 구역이라도 지키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자체 중 가장 규모가 큰 서울시 금고 지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조~30조 원을 움직이는 서울시 금고 입찰이 내년 초로 예정돼 있어 우리은행은 꼭 지켜낸다는 입장이다.

농협은행은 특성상 농촌지역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농협은행이 매년 농촌 지원활동에 주력하는 것도 이같은 점이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농협은 올해 만기가 도래한 광역단체 4곳 중 강원과 충북, 전남에서 1금고를 맡고 있다. 기초단체도 48개 중 37개 지역에서 1금고를 담당하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지난해 부산시, 울산시, 경상남·북도, 경기도 광역지자체 시·도금고 선정 결과를 보면 기존 은행들이 다시 선정됐지만 올해는 신규 진입을 노리는 은행들의 도전이 더욱 거셀 것”이라며 “하지만 지자체가 기존 금고지기 은행에 유리한 조항들을 개정하는 등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어 지역에 따라 금고지기 은행이 바뀌는 지역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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