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대상에는 성역이 없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경찰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발족식이 지난달 25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렸다. 경찰청은 이날 유남영 변호사 등 진상조사위원 9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하고 인권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들에 대한 진상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번 위원회는 경찰 개혁 일환으로 추진됐다. 당초 문재인정부는 새 정부 들어 검찰과 경찰의 대대적인 개혁을 주문했다. 그 중심은 인권이었다. 진상조사위원회가 발족하면서 과거 어떤 사건이 조사 대상이 되느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위원장으로 선출된 ‘인권 변호사’ 유남영
경찰개혁위원회 관여나 참여도 배제된다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민간·경찰 합동조사팀을 20명 규모로 구성해 1년간 조사를 진행한다. 조사 기간은 6개월 단위로 최대 1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사건의 진상·침해 내용·원인 분석 및 재발 방지 대책 등을 포함해 조사 결과를 공표할 계획이다.

민간위원들은 인권침해 사건 관련 시민단체 추천을 포함해 시민사회계의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결정됐다.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유남영 변호사를 비롯해 천주교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 흥사단 김전승 사무총장, 서울지방변호사회 노성현 인권위원회 노동인권 소위원장, 대한변협 위은진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여성단체연합 정문자 이사 등 6명이 위촉됐다.

경찰 추천 위원에는 경찰청 박진우 차장·민갑룡 기획조정관, 한림대 박노섭 국제학부 교수 등 3명이 임명됐다. 위원들은 발족식 당일 1차 회의를 열고 내부 논의를 통해 유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유 변호사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으로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대표를 맡는 등 각종 사회 문제와 인권 현안에 활발하게 참여해 왔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다 2010년 당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며 조국 비상임위원(현 청와대 민정수석) 등과 함께 자진 사임한 바 있다. ‘용산참사 기억과 성찰 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용산 참사 관련 백서 제작을 총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이력을 볼 때 유 변호사는 경찰에 상당히 껄끄러운 ‘운동권 변호사’로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인권 경찰’로 거듭나기 위해 오히려 과감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 수뇌부는 유 변호사가 위원회에 참여해 철저한 진상조사에 나서는 것이 객관성과 국민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과감하게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위원장은 “진상조사위원회가 경찰 개혁 작업의 기본 전제가 되지 않나 생각한다”며 “솔직히 과거에 뭘 했는지 잘 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알아야 개혁을 할 거 아닌가. 위원회 활동이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느냐가 경찰 개혁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 활동이 특정 개개인 경찰 신상에는 영항을 줄 수도 있다”며 “그렇지만 경찰의 자부심과 인권을 신장시키는 데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위원회 독립성 보장 위해
권한을 경찰청 훈령으로

 
진상조사위원회는 경찰개혁위원회의 첫 번째 권고안을 경찰청이 수용하면서 발족했다. 위원회에서는 앞으로 경찰의 경비·수사·정보수집 등 경찰권 행사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 또는 의심되는 사건, 인권침해 진정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 등을 선정해 진상조사를 맡게 된다.

경찰청은 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조사 대상 사건 선정이나 조사 기간을 결정할 수 있는 위원회의 권한을 경찰청 훈령으로 규정했다. 또 경찰개혁위원회의 관여나 참여도 배제된다. 대신 조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찰청에서 경찰 내부 자료는 물론 인력·장비·시설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달 28일 경찰 인권 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출범과 관련해 조사 대상에는 성역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청장은 이날 서면 기자간담회에서 “진상조사위는 경찰의 경비·수사·정보 수집 등 경찰권 행사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했거나 발생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을 담당한다. 조사 대상에는 성역이 없다”며 “필요 시 위원회 위원을 포함한 경찰 지휘부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청장은 “경찰은 위원회의 모든 조사에 성실한 자세로 협조하고 행정 분야에서도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할 계획”이라며 “실효성 있는 진상조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관계자 조사, 관련 시설 방문, 자료제출 요구 등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위원·조사관 일부에게 2급 비밀 취급 인가를 부여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위원회에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 위원회가 대상자의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달 25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청사에서 제1차 정기회의를 열고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등 총 5건을 우선적으로 진상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회의에서 결정된 우선 진상조사 대상 사건으로는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밀양 송전탑 건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평택 쌍용자동차 파업 사건, 용산 철거현장 화재 사건 등 총 5건이 선정됐다. 다만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등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에 대한 조사 착수 여부는 지난달 30일까지 확정되지 않았다.
 
백남기 농민 사망 581일
사과 뜻 밝힌 경찰청장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은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으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백 씨는 지난 2015년 11월14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 이후 300여일 간 의식불명 상태로 지내다 지난해 9월25일 숨졌다.

당시 주치의는 백 씨의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표기했고 이를 두고 서울대 의대 재학생, 동문 등이 잇따라 성명을 내는 등 논란이 일었다.

결국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9월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지 9개월 만인 지난 6월 16일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다. 기존에는 급성경막하출혈에 따른 급성신부전에 의해 심폐정지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됐지만 수정된 사망진단서에는 중간사인을 패혈증으로 바꾸고 패혈증의 선행사인으로는 외상성경막하출혈을 적시했다.

이같은 수정은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가 병원 의료윤리위원회의 수정 권고를 받아들인데 따른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1월 백씨의 유족 측이 사망진단서 수정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병원 차원에서 6개월 간 사망진단서 수정 여부를 재검토했다.

이에 따라 담당진료과인 신경외과에 소명을 요구하는 한편 ‘사망진단서는 대한의사협회 지침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수용, 지난 6월 7일 의료윤리위원회를 열어 수정권고 방침을 결정했다.

이철성 경찰청장도 백 씨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지 581일 만인 6월 19일 백남기 농민의 유족을 직접 만나 사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용산 철거현장 화재 사건은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에서 발생했다. 당시 용산4구역 철거민 40여 명이 건물 옥상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정부의 재개발 정책에 따른 생존권을 보장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농성이 지속되자 경찰은 진압작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경찰이 농성자들을 진압하면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이 불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경찰 강압수사로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삼례 나라슈퍼 3인조사건’은 지난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께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침입한 3인조 강도가 주인 할머니 유모(당시 77)씨의 입을 틀어막아 숨지게 한 뒤, 현금과 패물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사건 발생 8일 후 숨진 피해자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임 씨 등 3명을 붙잡아 강도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징역 3년에서 6년을 선고받고 복역을 마쳤다.

그러나 이들이 유죄 판결을 받은 지 한 달 만에 이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이모(48)씨 등 ‘부산 3인조’가 부산지검에 검거돼 범행 일체를 자백했으나 전주지검으로 사건이 이첩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고 혐의를 부인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에 임 씨 등은 경찰의 강압수사 등을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 2015년 11월 전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임 씨 등은 법정에서 “당시 경찰이 청소용 밀걸레자루로 폭행하는가 하면 조사를 이유로 수일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아 범행을 인정했었다”며 경찰의 강압 수사를 주장했다.

변호인도 유족인 보관 중인 현장검증 동영상과 임 씨 등이 수사기관으로부터 강압 수사를 당한 사실, 자신이 진범이라고 밝힌 사람이 등장한 점, 당시 사건기록 등을 제시하며 재심 개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 씨 측은 증거의 위조와 변조의 증명(제420조 제1호), 무죄 등을 선고할 명백한 증거의 발견(제420조 제5호), 수사 관여 사법경찰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독직폭행죄(제420조 제7호) 등 3가지 사유를 들어 재심을 청구했다.

이 가운데 재판부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에 따라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재심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재심대상 판결 확정 후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받고 부산지검에서 검거한 ‘부산 3인조’의 자백 진술을 뒷받침하는 참고인 진술 등은 새로운 증거로서 피고인들의 무죄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변호인이 청구한 재심 사유 중 제420호 제5호가 다른 재심청구사유에 관해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가 없어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면서 “너무 늦게 재심 대상 판결을 하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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