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유독 과학기술계 인사에서 잡음 많아
- 이공계 불만 방치 시 상당한 지지층 이탈 시작될 수 도
 

“도대체 우리에게만 왜 이러는 것이냐?” 과학기술계 사람들이 최근 문재인 정부에게 한다는 질문이다. 업계 영역을 넘어 이공계 출신들의 만남에서 정부에 대한 거대한 성토가 이루어진다고도 한다. 이공계 출신 및 과학기술업계 종사자들의 소셜미디어와 메신저들이 한탄으로 넘쳐난다.
 
류영진, 유영민, 박기영, 박성진, 백경희……. 그들은 이런 식으로 나열한다. 류영진 식약처장은 이른바 ‘살충제 달걀 파동’ 국면에서 정부 차원의 대응에 미숙함을 드러냈다. 특히 국회 상임위 보고에서는 부적절한 언행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후 ‘독성 생리대’ 논란에 대한 늑장 대처로 ‘케미포비아’(화학제품에 대한 공포) 현상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는 약사 출신으로, 지난 대선 부산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2012년에도 문재인 대선 후보 직능특보 겸 부산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보은 인사’, ‘코드 인사’ 의혹이 나왔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현대 과학의 핵심 이론 중 하나인 진화론에 관한 입장을 밝혀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입장 표명을 거부하다가 나중에야 이를 번복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그는 청문회장에서 의원들로부터 ‘과학 담당 장관으로서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공계 출신들은 이때의 해프닝이 바닥인 줄 알았을 것이다.
 
언급된 인물 중 유일하게 사퇴한 박기영 후보자는 사회현상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창조론자인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그 산하기관이며 엄청난 예산을 집행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 본부장을 ‘황우석 사태’ 관련 인물로 앉히려고 했다. 이는 학계에서 크게 문제가 되었고 결국 박 후보자는 버티지 못하고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반지성의 상징 창조과학 옹호자까지...
 
그런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이번엔 소신을 가진 창조과학자가 등판했다. 중소기업벤처부장관으로 내정된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가 장관 지명 직전까지 창조과학회 이사직을 맡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청와대는 “신앙은 검증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누가 박성진 후보자가 개신교인이란 사실을 문제 삼았나? 대한민국의 정치 권력에서 개신교인은 사실상 주류다. 그런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창조과학은 과학적 가설에 어떻게든 흠집을 내어 만물이 성경에 쓰인 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지적 흐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한마디로 말해 반과학이요, 반학문이다.
 
비판자들은 박성진 후보자가 검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그 신앙에 따라 예산을 집행하면 어떡하느냐고 성토했다. 물론 박성진 후보자는 본인이 전혀 그런 잣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명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공계 출신들은 “창조과학은 지능의 문제다. 도무지 그런 사람이 어떻게 공직을 맡을 수 있다는 거냐”라고 분통을 터트린다.
 
물론 그러한 반응은 다소 과장된 것일 수 있다. 기능적 사고와 종합적 판단을 구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옹호자들은 박성진 후보자가 포항공대 교수로서 문제가 없었듯이,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으로서의 직능에도 무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러난 결격사유를 뒤엎을 만큼 박성진 후보자에게 드러난 장점이 있을까?
 
잇따른 과학기술계 인사 잡음, 우려스러워
 
흥미로운 부분은 박성진 후보자의 경우 심지어 ‘코드 인사’조차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몇몇 진보 언론들은 박성진 후보자가 뉴라이트 성향이란 점을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이공계 출신들에겐 자괴감을 줄 만하다. ‘신앙은 검증의 대상이 아니다’ 해명 이후 논란에 모르쇠로 일관하던 청와대가 이런 보도들에 반응하여 박성진 후보자가 ‘생활 보수’라는 해명을 다시 내놓았기 때문이다.
 
박성진 후보자를 낙마시키려는 의도를 떠나서, 뉴라이트 성향이란 사실이 창조과학 신봉자라는 사실보다 더 청와대와 개혁 성향 시민들에게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어떻게 여겨지겠는가?

뉴라이트 사관은 논란은 있을지언정 역사 담론의 하나이지만 창조과학은 결코 과학의 일부가 아니다. 지금 ‘황우석 신화’를 해체했던 젊은 과학자들의 웹 커뮤니티 브릭에서는 박성진 후보자의 임명을 반대하는 릴레이 기고문이 쓰이는 중이다.
 
화룡점정이라고나 할까. 지난 8월 31일 역시 정부 과학기술 분야 고위직 중 하나인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위원장으로 백경희 고려대 교수가 임명됐다. 문제는 백경희 후보자가 과거 데이터 조작을 이유로 논문이 철회된 경력이 있다는 것이다.

앞선 이들의 화려한 이력에 다소 못 미치는 전력이기는 하지만 평소라면 과학계에서 충분히 분통을 터트렸을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며 정부의 몇몇 인사에 환호성을 보내던 그 이공계 출신 시민들은 이젠 “도대체 우리에게만 왜 이러는 것이냐?”를 넘어 체념에 빠져드는 중이다.
 
문과와 이과가 명확히 구별되는 한국의 교육체계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회에서 문과 출신과 이과 출신은 다른 감각과 감수성을 지닌다. 이 차이는 정치 성향과도 별개다. 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하고 정권교체에 동의했으면서도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인사 문제에 분노해야 하는 이과 출신들의 심경을 문재인 정부가 알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박성진 후보자를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이공계 출신의 생활 보수’라고 칭하며 이해하려고 했던 그 지극정성의 백분지 일만큼이나 이공계 출신들을 헤아린다면 이런 인사를 남발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을 상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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