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영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류를 벗어나 장기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납품비리와 원가 부풀리기 등 방위산업 관련 의혹으로 시작한 수사가 분식회계로 궤도를 고쳤다가, 이제는 채용비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검찰이 이 사건을 인지하고도 2년을 묵히는 바람에 핵심 피의자는 도주해 버렸고, 이로 인해 수사가 별 진척을 보지 못하다보니 생긴 결과라는 지적이다. KAI 노조 등 일부에서는 수사가 장기화됨에 따라 항공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목소리를 내놓는 상황이다.
 
당초 KAI 수사는 전·현직 임원들이 협력업체와 계약하면서 납품단가를 부풀리는 등 수법으로 부당한 이득을 챙겼다는 의혹에서 시작했다.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 등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부실 개발 및 원가 부풀리기가 이뤄졌고, 특정업체와 임원들이 부당하게 이권을 챙겼다는 게 골자다.
 
이후 검찰은 “최근 KAI의 부품원가 부풀리기 등 분식회계가 포함된 경영상 비리를 살펴보고 있다”고 발표했다. 수사 과정에서 대규모 분식회계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그러나 수사의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 본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다, 앞서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의 첫 구속영장 청구도 기각된 바 있다.
 
이 때문에 2년 동안이나 진행한 수사임에도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게다가 KAI경영비리의 핵심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손승범 차장도 도주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이후 본 수사 방향과 달리 채용비리 등 여러 혐의로 수사를 넓히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업계 안팎에서는 검찰 수사 장기화로 항공산업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KAI 노동조합은 지난달 24일 “검찰의 엄정한 수사와 별도로 KAI의 조속한 경영 정상화가 시급하다”며 “비리에 대한 수사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지만, 항공산업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방산 적폐인 비리에 대해서는 전 종업원 모두가 일벌백계함은 물론 영구적으로 퇴출해야 할 분명한 시대적 과제라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현재 검찰 수사 장기화로 회사 경영이 위기 상태로 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현재 회사에 대한 여수신이 동결되고 기관들의 채권 회수가 시작됐다. 현재도 임직원에 대한 소환조사가 이뤄지고 있어 종업원들이 일손을 놓고 있다는 전언이다.
 
노조 측은 “검찰 수사가 장기화할수록 KAI 경영이 어렵게 되고 KAI가 무너지게 되면 대한민국의 유일한 항공산업이 사라진다”며 “개인 비리를 비롯한 방산 적폐 비리는 빠른 수사로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검찰이 주요 간부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잇달아 청구하면서 하성용 전 대표를 향해 수사망을 좁히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 전 대표는 KAI 수사가 시작되자 각종 비리의 핵심 인물로 지목됐다. 지난해 하 전 대표의 연임을 둘러싸고 지난 정권 청와대 핵심 인사들과 부적절한 유착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검찰은 최근 KAI 본부장급 간부 2명에 대한 신병 확보에 나서며 수사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의 방위산업을 담당하는 독점기업 전반에 경영비리가 있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게 수사의 목적”이라며 “누구든 입사하고 싶어 하는 공기업에 채용비리가 있었다면 이 부분도 경영비리의 본류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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