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지식 해박…방송작가와 기자들도 종종 자문 구해
특수부 검사 출신의 날카로움 번득이는 ‘면도날 변호사’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최근에는 각종 시사프로나 뉴스 등에 수많은 변호사들이 출연하고 있다. 대다수의 변호사들은 주로 현안에 대한 법률적인 해설 등을 한다.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 바로 강민구 변호사. 그는 TV조선 <강적들>에 1년 넘게 고정패널로 자리 잡고 있다. <강적들>은 그 전에도 여러 변호사들이 패널로 거쳐 간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방송에 그다지 많이 비춰지지 않았던 강민구 변호사가 롱런할 수 있는 것은 무슨 비결 때문일까? 주위에서는 그의 날카로운 법리 해석과 유머 감각 때문이라고 말한다.


강 변호사는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서 특히 검찰 관련 이슈에 아주 현실적인 분석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수사 경험을 토대로 재밌는 일화나 애환 등 검찰의 현실과 민낯을 여과 없이 질타하기도 하고, 때로는 검찰의 편에서 과도한 오해에 해명도 한다. 검찰을 비판만 하는 사람들에 비해 그의 분석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그런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는 현실적 설명 때문일 것이다.

강 변호사는 경제 면에도 강하다는 평이 있다. 과거 한미약품의 늑장공시 사건이나,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사기사건 등에서 그의 해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오해와 진실을 정확하게 구분해 주었다는 평판을 얻었던 것.

여론에 좌우되지 않아

그는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주관에 따라 돌직구를 날린다. 아무리 여론이 다른 방향이라고 해도 자신만의 철저한 분석을 통해 냉철한 진단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예스와 노우를 명확하게 하며 회색빛 논리를 펼치지 않고 결론을 낸다. 설사 그 답이 그의 주관적인 견해라고 해도, 보는 이들의 속을 시원하게 뻥 뚫어 주는 것은 강 변호사의 줏대있는 태도가 한 몫 한다.

최근 정부는 부동산 투기로 인한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해 ‘8.2.부동산 대책’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고 강적들에서도 이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강 변호사는 방송 출연에 앞서 부동산 전문가들을 만나 열띤 토론을 한 뒤 출연했다. 그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움이 담겼다. 결코 정부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편협된 사고에 빠져들지 않았다. 실제로 강 변호사는 <강적들> 외에도 <SBS생활경제> 안의 ‘부동산 따라잡기’ 코너에서 부동산 관련 정보를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부동산전문 변호사이기도 하다.

강 변호사에게는 요즘 팬들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물론 강 변호사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욕도 많이 먹는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는 겸손하게 반응했다.

“저에 대한 욕도 관심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욕을 먹을 때마다 저 자신을 돌이켜 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제가 정말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잖아요.”

작금의 우리나라는 좌우가 극렬하게 대립해 저마다 자신의 주장만이 옳고 남들은 모두 다 적폐세력이라고 상호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강 변호사의 합리적이고 근거 있는 분석과 다소 중립적(?)인 태도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저에 대해서는 진보인지 보수인지 헷갈린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물론 제가 검사 출신이라 다소 보수적인 면이 있는 건 맞지만, 타고난 흙수저 출신이라 진보적인 면도 내면에는 있습니다.”

강 변호사를 만난 기자는 그가 부잣집 도련님 출신으로 늘 양지에서만 있었다는 선입관을 버리게 됐다.

“어린 시절 서울 변두리에서 부모님은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공무원들과 동네 깡패들이 자주 와서 공짜밥을 먹고 돈까지 뜯어가는 것을 보면서 나중에 검사가 되어 그 사람들을 혼내주겠다고 결심했죠.”

강 변호사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얘기할 때는 분위기가 다소 무겁게 느껴졌다. 강 변호사의 아버지는 직업군인 출신이었는데 중위로 예편하여 식당을 열었다고 한다.

그런 어린 시절의 영향 때문일까? 강 변호사는 안보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면이 강하고, 재벌의 부정부패에는 진보적인 면이 강한 편이다. 그는 지난 번 갑질의 대명사였던 미스터 피자 정우현 회장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부드러운 친화력이 장점

강민구 변호사는 시사에 유머라는 양념을 주는 패널로 통하고 있다. 그는 북한이 계속 남한에게 위협을 하지만 대부분 실체가 없다는 점을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에 비유를 하려고 하다가 그만 ‘늑대소년’으로 잘못 말해 폭소를 유발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도 늑대소년이 송중기란 것을 안다면서 멋쩍은 웃음으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검사라는 딱딱하고 빈틈없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강 변호사의 약간은 어눌한 듯한 말투 역시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예전에 <강적들>의 MC였던 박종진 앵커와 강 변호사는 ‘덤앤 덤머(Dumb and Dumbe r)’를 연상하는 재미를 주기도 했다.

“이상하게 제가 말하면 다들 빵 터져요. 같은 말도 제가 하면 웃긴다고 해요.”

그는 타고난 유머감각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라 한다. 그러한 부드러움이 친화력으로 작용해 그의 장점으로 돋보이고 있다.

반면 강 변호사는 시사용어를 몇 개 유행시킬 정도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날카로움도 갖추고 있다. 지난 대선 때 강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우리도 미국처럼 6개월 정도는 야당이나 언론 등이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그 기간을 허니문 기간 (Honeymoon Period)>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그 말은 미국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정치용어지만 당시 한국의 상황에 재치 있게 적용한 것이다. 그 후 ‘허니문 기간’이라는 말은 종종 뉴스나 시사프로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됐다.

최근에는 북한이 미국 괌제도에 미사일을 발사할 것처럼 으름장을 놓고, 이에 대해 미국에서도 북한을 응징하겠다고 서로 맞대응을 했다. 이때 강 변호사는 “지금 북한과 미국은 ‘치킨게임(chicken gam e)’을 하고 있는 겁니다. 치킨게임에서는 항상 작은 차가 먼저 피하기 마련이죠”라고 말하면서 결국에는 힘이 약한 북한이 양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그의 예견은 정말로 현실화되었고 얼마 후 북한은 슬쩍 미국을 향한 공격 의사를 철회했다. 그 후 각종 언론 매체에서 “치킨게임의 승자는 누구일까?”라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강 변호사가 방송에서 던진 말들이 이렇게 힘을 얻는 이유는 비록 그 말들이 그가 만든 신조어는 아니지만 시대상황에 맞춤형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방송계의 분석이다.

대중 위한 법률 전도사 자청

강 변호사는 방송작가들이나 기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그들은 기사나 대본을 쓰다가 법적으로 막히는 게 있으면 강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하거나 때로는 강 변호사의 사무실에 찾아가 간단한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그것은 강 변호사가 본지 <생활속 법률톡톡>에 매주 칼럼을 기고할 정도로 다방면에 걸쳐 법적 지식이 해박하기 때문이다.

강 변호사를 만난 방송작가들에 따르면 강민구 변호사는 어느 분야든지 질문을 하면 즉답이 나온다. 검토할 시간을 요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

“어떤 분들은 제가 방송에 자주 출연하니 변호사 업무를 제대로 못 보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주말에 강적들 녹화하는 것 빼고는 변호사로서 바쁘게 지냅니다.”

강 변호사는 월∼금요일까지는 각종 사건들 때문에 정신없이 지낸다. 그 때문에 주중에는 방송에 거의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한다.

강 변호사가 실무에 강한 변호사라는 것은 그가 저술한 <핵심부동산분쟁>과 <성범죄, 성매매, 성희롱>이란 책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책들은 현재 대학가에서 교제로도 사용된다.

그는 지금도 새로운 책을 집필하고 있다.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핵심적인 내용만을 추려서 생활법률 책을 내려고 합니다. 이것만 읽어도 어지간한 변호사 못지않은 법 지식을 갖추게 될 겁니다.”

그는 법률전도사를 자청하고 있었다. 자신의 노하우와 필살기를 아낌없이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한다. 법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없는 사회! 강 변호사는 그런 사회를 꿈꾸는 듯했다.

강민구 변호사의 이력은 약간 특이하다. 사법연수원(21기)을 수료하고 난 뒤 검찰로 임관할 수 있음에도 법무법인(유) 태평양에서 1년간 기업 전담 변호사로 재직 후 다른 동기들보다 1년 늦게 검찰에 임관했다.

대형 로펌의 기업 전담 변호사로서 일한 덕분인지 검찰로서의 데뷔도 화려했다. 검찰에 임관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주요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하는 굵직한 사건을 터뜨린 것이다.

특히 강민구 변호사는 검사시절 ‘면도날 검사’라고 불렸다. 11년간 검사생활 중 대부분을 특수부 검사로서 지내면서 특유의 날카로움과 치밀함으로 수사를 진행한 모습에서 얻은 별명이었다. 이런 치밀함은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복잡한 사건이라도 수천 페이지의 기록을 검토하면서 중요한 쟁점을 남보다 빨리 포착하고 예리하게 분석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그 모든 것들은 강 변호사의 타고난 감각에다, 입증을 위해 불철주야 연구 노력하는 집념,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성실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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