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가졌던 조선시대 왕들도 두려워 한 게 있었다. 바로 자신의 사후(死後)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 한 것이다. 재위 시절 온갖 폭정을 일삼았던 ‘폭군’ 연산군도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역사뿐(人君所畏者史而已)”이라는 말을 남겼다. 아무리 악독한 군주라도 역사의 평가만은 뒤가 저렸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지도자급에 있는 인물들 역시 역사의 평가에 촉각을 세운다. 훌륭한 인물로 기록되고 싶어서다. 그래서 재임 기간 치적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때로는 의욕이 지나치거나 정치적 무능과 오만 등으로 무리수를 두다 역풍을 맞기도 한다. 우리 국민들은 그런 지도자들을 참으로 많이 경험한 터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재임 시절 그는“경제 활성화를 이루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잘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했다. 이에 대한 평가는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이라는 사실 하나로 박 전 대통령의 전체를 실패로 규정할 수 있다.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박 전 대통령이 그렇게 맥없이 탄핵당할 줄 몰랐다고 허탈해 한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일반인의 생활양식과 동떨어져 권위적인데다 포용력이 부족한 면은 있지만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다.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사리사욕도 없어 보였고, 국민에 대한 촌철살인(寸鐵殺人)같은 읍소로 다 죽었던 당을 살려내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서 보수층의 믿음이 각별했다. 
대북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이념의 원칙을 분명히 했다. 개성공단의 문을 확실히 닫아건 채 세계적 범죄 집단인 북한에 대한 대결의식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켰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그는 누구도 하지 못한 공무원연금을 개혁했을 뿐 아니라 노동개혁을 하려고 노력한 유일한 대통령기도 하다. 
이렇듯 적지 않은 업적을 이룩했음에도 박 전 대통령이 한순간에 보수층으로부터도 외면을 받은 것은 탄핵 정국에서 보여준 일련의 실망스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어서다. 정치적 문제였던 탄핵을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도 박 전 대통령은 시종 수동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자 ‘들켰다’는 당혹감에만 사로잡혀 조직적 저항을 하지 못했다. 적극적인 반론보다는 총론적인 사과만 하는 정치적 미숙함을 보이고 보수의 분열을 통합하기는커녕 방치했다. 
비록 보수의 분열이 그의 대통령 취임 훨씬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해도 대통령으로의 모든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보수가 하나 되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않았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한 보수층은 언젠가는 그 다운 정치력을 발휘할 것으로 믿고 바랐다.
재판과정에도 문제는 자신이 다 안고 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박 전 대통령은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며 마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문제를 부하들에게 전가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모습에 보수는 또 한 번 절망하고 말았다. 그가 전의를 상실해 어찌 할 바를 모르는 채 쓰러져 있는 보수의 ‘지팡이’라도 되어줄 줄 알았으나 그런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경제 활성화를 이루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잘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었던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무능함과 오만으로 끝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보수의 회한(悔恨)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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