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창환 기자] 록 뮤지컬 <헤드윅>이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오는 11월 5일까지 공연된다. ‘The orgin of love’와 ‘Wig in a box’ 등 어떤 뮤지컬도 넘보지 못하는 킬링 넘버를 보유한 <헤드윅>은 이념과 예술을 절묘하게 충돌시킨 ‘Tear me down’으로 시작해 열광의 앙코르 무대까지 2017년의 역사를 새로 쓰는 중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헤드윅은 2002년 소규모 개봉했다가 음악 영화의 전설로 부상한 존 카메론 미첼 감독의 것이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영화 전개를 대체로 따르지 않는 이번 <헤드윅>은 (공연과 영화 사이의 원작 여부에 상관없이) 영화의 스핀오프 정도로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의 천재적이고 선동적인 서사는 주인공의 수다로 대체, 뮤지션의 팬 미팅 혹은 슬랩스틱 색깔을 가미한 콘서트라는 인상도 준다. 하지만 뮤지컬 <헤드윅>은 이 같은 구성이 헤드윅의 소외, 상처, 외로움, 사랑을 더 내밀하고 개인적으로 표현할 수 있음을 결국 보여준다.

뮤지컬 <헤드윅>의 배경은 작고 허름한 공연장이다. 공연장이라는 설정은 실제 무대와 일치해 헤드윅이 관객에게 건네는 수다는 직접적인 것이 되고, 간접을 표방한 직접적인 것이 되며, 각자 해석에 따라 갈리는 알레고리로 작용 되기도 한다. 배우가 배우를 연기할 때나 무대에 무대를 세울 때만이 누릴 수 있는 일체적 즐거움이다. 헤드윅은 이 같은 설정에 깊이 몰입해 관객과 수다를 이어가고, 그렇게 쉬지 않고 수다를 떤 이유가 슬프고 외롭기 때문임을 고백한다.
    이 고백은 뮤지컬 <헤드윅>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즉흥적 애드리브를 포함 아무 의미 없이 떠든 말에 가치를 부여하는 이 잠깐의 고백은 헤드윅이 사랑 때문에 고통스러우며, 여전히 ‘반쪽’을 갈구한다는 것을 뮤지컬의 방식으로 알리는 순간이다. 모든 서사와 대사가 함축적이며 세련돼야 하는 그래서 하나의 기록물을 남겨야 하는 영화와 달리 뮤지컬에서는 작품 밖으로 한 사람이 빠져나와 스스로를 자조한다.
 
뮤지컬 <헤드윅>은 작품 속에서 대사를 평가하는 관점을 일시적으로나마 바꾸게 했다. 헤드윅에 대한 개인적 추억 때문에 긴 수다에 관대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진 못하지만, “모든 장면이 다 완벽하면 영화가 지루해진다”는 영화 트럼보 속 대사처럼 깊이도 의미도 재미도 없는 말이 누군가의 불안과 공허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이 같은 모험은 <헤드윅>처럼 배우의 동선까지 파악하는 재관람 팬층을 많이 확보한 작품에서나 시도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