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는 우리에게 해가 저무는 바다이고, 그들에게는 해가 떠오르는 바다다. 인천에서 지는 해를 보고 출발한 페리는 밤바다를 유유히 가로질러 지나온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는 풍경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위해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산동성의 닭 울음소리가 인천까지 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위해시가 속한 산동성과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다. 서해 백령도에서 위해까지의 거리는 200km가 채 되지 않는데 이는 서울에서 강릉까지의 거리보다도 짧다.

하늘길이 아닌 뱃길을 따라 위해로 떠난 이유는 오랜 세월 바다가 품어온 이야기들을 천천히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이전부터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과 진귀한 물건 그리고 끝이 없는 사연들이 이 바다를 건넜다. 한때는 해상왕 장보고가 이 바다를 호령했고, 한때는 청나라와 일본 그리고 서양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기도 했던 바다.

해 질 녘 출발한 페리는 고요한 항해를 마치고 정오 즈음 위해에 도착했다. 낮은 산들과 빨간 지붕의 집들 그리고 모래 해변. 항구에 들어서며 보이는 풍경에서 낯섦과 익숙함을 동시에 느끼며 위해에 발을 내디뎠다.
 
      위해의 문을 열다, 행복문
 
배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바로 위해의 랜드마크, 행복문이다. 꽃으로 만든 배 모양의 조형물을 지나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45미터 높이의 행복문과 마주한다. 좋지 않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위해의 대표 명소답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현대화된 위해를 상징하는 이 건축물은 유리로 마감 돼 있는 점이 특이한데 밤이 되면 형형색색으로 불을 밝혀 주위를 환하게 꾸민다. 행복문 뒤에는 복을 기원하는 서로 다른 한자들이 빼곡하게 새겨진 만복도라는 이름의 청동 조형물이 묵직한 느낌으로 자리하고 있다.
      너도나도 이 반원형 조형물 위에 서서 행복문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긴다. 차례를 기다려 위로 올라가 보니 위해를 중심으로 중국과 세계 주요 도시들의 방향과 거리가 표시돼 있다. 금방 찾아낸 서울이라는 두 글자에 괜스레 반가운 마음이 든다.
      조개껍데기로 만든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좌판과 아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기구들, 곳곳에 세워진 조형물들이 볼거리를 더한다. 떠들썩한 단체여행객들, 바다를 바라보며 속삭이는 연인들, 바람을 쐬러 나온 위해 사람들과 여행객들이 뒤섞여 빚어내는, 친근하면서도 설레는 풍경 속을 오가며 여행에 행운이 따르길 바라본다.
 
     해안을 수놓다, 위해의 공원들
 
긴 해안선을 따라 행복문이 있는 해빈공원부터 남쪽으로 행복공원과 위해공원, 열해공원 그리고 해상공원이 이어진다. 갖가지 풀과 나무 그리고 동서양 위인들의 조형물들로 짜임새 있게 꾸며진 해빈공원과 행복공원을 지나면 위해공원으로 이어진다.
     공터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이, 자전거를 타는 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 이들의 평화로운 장면들을 눈에 담는다. 다양한 편의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고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공원을 거닐다 눈길을 사로잡는 커다란 조형물의 등장에 걸음을 멈췄다. ‘위해의 창’ 또는 ‘화중화’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거대한 액자 조형물 앞에도 행복문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멀리서 바라봐도 멋있지만 가까이서 보는 주름 하나하나의 디테일도 놀랍다. 포항 앞바다에 세워진 상생의 손 조형물과 닮았다. 등대와 해 초방이 있는 열해공원을 지나 해상공원에 닿으면 드넓은 해변이 펼쳐진다.
     모래사장과 갯벌이 함께 있어서 조개를 줍는 가족 여행객들과 해변에서 낭만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 한 길로 이어진 해안길이지만 품고 있는 매력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도심 주변에 이토록 다양한 해안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공원들을 누릴 수 있는 위해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info> 해초방
약 3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해초방은 위해만의 독창적인 가옥 형태로 위해시 연해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짝 말린 해초는 부드러우면서도 질겨지는데 이러한 해초를 사용해 지붕 위를 두껍게 덮으면 벌레와 곰팡이를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
 
    천년 요새, 유공도
 
위해시 앞바다에 떠 있는 유공도는 위해 대표 여행지 중 하나로 위해가 평범한 시골 어촌에서 인구 300만의 대도시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곳이다. 해안과 가깝고 주변 지역을 관찰하기 좋은 지리적인 이 점을 갖고 있는 곳으로 해적을 막고 영국과 일본제국의 지배와 국공내전 등에서 군사요새의 역할을 하며 위해가 성장하는 데 발판을 마련해왔다.
    지금은 더없이 평화로운 여행지이지만 그 역사를 들춰보면 이 섬에는 끊임없는 수모와 지배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행복문 근처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유공도로 향한다. 품고 있는 아픈 역사에 반해 섬의 경관은 아름답기만 하다.
    부두에 도착하니 갑오전쟁박물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청나라 때 조직됐다는 북양 해군함선을 상징하는 건물과 북양해군장교의 인물상이 하나 된 느낌으로 우뚝 솟아있다. 우리와도 관련이 깊은 갑오전쟁박물관은 북양함대사령관이 쓰던 사무실을 개조해 조성했으며 유공도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사진과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명예롭지 않은 역사를 숨기지 않고 기억해 미래를 위한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가 잘 느껴지는 이곳은 우리나라의 독립기념관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곳곳에 우리나라와 관련된 내용들이 등장하는데, 알고 있던 내용과 중국의 시선으로 바라본 해석을 비교하며 살펴보는 과정이 흥미로우며 대부분의 설명에 한국어가 함께 표기돼 있어 이해를 돕는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망해루. 당나라 시기 이 지역의 장관이 순시를 나온 측천무후를 환영하기 위해 지은 누각으로 내부에는 측천무후 일행의 모습을 새긴 목판과 다양한 공예품들이 전시돼 있다.
    망해루에서 내려와서 조금만 걸어가면 영국도 시기한 물건들과 당시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게끔 조성된 박물관이 나타난다. 그때의 풍경이 다양한 형태로 전시돼 있는데 특히 밀랍 인형들의 모습이 매우 사실감 있게 표현돼 있다.
    고래박물관 등을 가볍게 둘러보고 팬다와 꽃사슴이 있는 작은 동물원으로 향한다. 중국 최초로 ‘해상국가삼림공원’으로 지정된 곳답게 동물원으로 가는 길에는 갖가지 나무들이 무성하다. 무더운 날씨에 사람들은 길가에 드리워진 그늘 아래를 걷고 팬 다들은 나무 밑으로 몸을 피해 휴식을 취한다.
    이곳의 꽃사슴들은 중국과 대만이 여전히 우호 관계에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타이완에서 보내온 것. 아픈 역사를 돌아보며 평화를 기원하고 희망이 피어나는 현장을 확인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다.
 
    <info> 유공도 배편
유공도로 향하는 배편은 성수기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약 8분 간격으로, 비수기에는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약 15분 간격으로 운항되며, 편도 20분 정도 소요된다. 왕복 승선권과 유공도 내의 주요 명소 입장권이 포함된 패키지 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가격은 138위안이다. 섬 안에서의 교통과 유람선 투어 등을 추가하면 별도 비용이 추가되지만 왕복 승선권만 구입해서 다녀오는 것이 합리적인 여행.
 
   위해 속 작은 한국, 한락방
 
신라시대 산동 반도에 신라인들이 모여 살았던 신라방이 있었다면 지금의 위해에는 한락방이 있다. 한락방은 위해의 주요 상업지역에 위치해 있는 코리아타운으로 거리 군데군데 자리한 가마행렬, 풍물놀이, 장승, 돌하르방 등 우리의 민속조형물들이 한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야시장이 열리는 중앙 광장의 상점에는 중국식 홍등 대신 한국의 청사초롱이 걸려 있고 지붕에는 한국식 기와가 올려 있어 익숙하고 반갑다. 건물마다 내걸린 한글 간판들의 모습에서 이곳이 한국인가 중국인가 싶을 정도.
   한락방은 중국인들에게는 한국 음식을 맛보고 한국 상품을 구입하고 한국의 문화를 만날 수 있는 다채로운 문화 공간이며 한국인에게도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장소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처럼 위해의 대표 여행지 중 하나로 자리 잡기를 바라본다.
 
  옥 조각에 스며든 마음, 선고정
 
선고정은 과거 옥선이 내려와 잠깐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을 빌고자 할 때 찾아온다. 해발 380여m에 자리한 옥선의 사당 주위로 산봉우리들이 솟아있어 위엄을 자아낸다. 3년 전의 큰불로 인해 풍경이 삭막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초록을 되찾아가고 있는 모습이 다행스럽다.
  입구부터 정상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계 단을 따라 옮기는 눈길마다 옥 조각들이 수놓아져 있다. 저마다 그 모양이 다르고 표정이 나 질감의 묘사가 생생하여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에 계단을 오르는 수고스러움은 자연히 잊게 된다.
  이쯤이면 대규모 야외 옥 박물관으로 불려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푸른 기와가 올려진 옥선의 사당이 가까워질수록 옥 예술도 절정으로 치닫는다. 마지막 구간에 올라서니 마침내 높이 8.8m, 무게 약 300톤에 달하는 옥선의 조각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옥선을 이루고 있는 부드러운 곡선들 덕분에 조각상은 엄청난 중량에도 불구하고 자애로운 인상을 풍긴다. 짧은 소원을 빌고 다시 사당 밖으로 나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그 풍경 또한 보물이다. 산의 형세를 닮은 계단의 굴곡이 유려하게 자연과 어우러지는 풍경에 가슴이 후련하고 유쾌한 기분마저 든다.
 
  중국 10대 공연, 신유화하
 
위해에 밤이 찾아오면 중국 10대 공연 중 하나로 손꼽히는 ‘신유화하’를 감상할 차례. 공연이 펼쳐지는 곳은 위해 서부에 위치한 화하성.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는 입구를 지나면 잉어 떼가 헤엄치는 연못이 나타나고 돌계단을 오르면 아담한 기와집들과 정원이 조화를 이루는 소담한 산책길이 이어진다.
 뒤이어 색색으로 불을 밝힌 터널이 등장 하고 이를 지나면 공연이 펼쳐지는 너른 호수가 나타난다. 중국 10대 공연 중 하나라는 명성에 걸맞게 호수 위에 마련된 배 모양의 관람석은 사람들로 빼곡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하얀 달이 떠오르자 깊은 산과 호수를 배경으로 공연이 시작된다.
 관람석이 360도로 회전하며 극의 흐름에 따라 서로 다른 야외무대를 향하도록 한 연출이 이색적이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300여 명이 하나 돼 펼치는 군무와 기예 그리고 화려한 조명은 아쉬운 부분들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하다.
 야외이기에 가능한 웅장한 특수효과가 펼쳐지는 지점에서는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만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극의 분위기는 고조되고 화합을 상징하는 군무로 공연이 마무리된다. 어둠 속에 반짝이는 화하성의 밤풍경은 해 질 녘과는 또 다른 운치를 선사하며 위해의 밤을 아름답게 꾸민다.

<사진제공=여행매거진 G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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