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시작일 뿐” 사드 수렁에서 “나~돌아갈래”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들이 잇달아 짐을 싸고 있다. 10월로 접어들면서 많은 기업들이 이삿짐 싸기에 분주하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인한 규제가 계속되면서 더 이상 중국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여기에 중국 인력시장이 국내 시장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 오히려 동남아로 눈길을 돌린다.

일부 기업은 중국 철수에 따른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지만 이를 감수하고서라도 철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다.

사드로 인한 우리나라 경제 손실 8조5000억 원 예상
많은 기업들 동남아로 눈 돌려…기회의 땅 찾자

15일 롯데그룹이 중국 내 최대 사업인 롯데마트를 매각하고 중국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재계는 “한때 ‘기회의 땅’이었던 중국이 이제 ‘재앙의 땅’으로 변했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롯데 측은 롯데마트가 중국 내 전체 매장 112곳의 매각을 추진 중인 가운데 롯데제과, 롯데칠성 등 중국에서 사업 중인 다른 롯데그룹 계열사들도 사업장 정리, 통합 등 구조조정을 검토 중이다. 롯데제과는 중국 현지 공장 3개를 운영 중이고 롯데칠성은 현지 법인 2개를 두고 있다. 중국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롯데제과가 7%, 롯데칠성이 2~3% 수준이다.

1997년 중국에 진출한 신세계도 진출 20년 만에 백기를 들었다.
신세계는 중국 내 이마트를 태국 대기업인 차로엔 폭펀드(CP)그룹에 모두 매각하고 연내 중국 사업을 모두 정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마트 관계자는 “중국 사업 철수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기존 점포를 (타사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철수할지는 확정되지는 않았다. 올해 안에 중국 시장에서 완전 나올 계획인 것은 맞다”고 말했다.

신세계 측은 올 초 사드 보복이 가시화되자 중국 시장에서 손을 털 것이라고 대외적으로 밝혀 왔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지난달 24일 스타필드 고양 개장식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에서는 철수 절차를 밟고 있고 연말이면 완벽하게 철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불안한 기색에 투자도 주춤

지난해 상반기 중국에서 54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던 농심은 올해 상반기에 28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농심에는 중국이 한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농심은 국내외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서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판매가 전년 대비 40% 급감한 현대·기아차도 현 상태로는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판매가 7만601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9% 줄어드는 등 사드 보복이 본격화된 이후 극심한 판매 감소를 겪고 있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누적 판매량은 57만6974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104만3496대)보다 44.7% 적다. 기아차 판매는 36만8686대에서 절반도 안 되는 17만2674대까지 떨어졌다.

중국에 신규 투자를 추진했던 기업들도 사드 사태가 길어지면서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은 중국에 에잇세컨즈 매장을 추가로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중국 법인인 ‘에잇세컨즈 상하이’와 ‘에잇세컨즈 상하이 트레이딩’이 작년에 각각 47억 원, 21억 원 등 총 68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하자 이를 포기했다. 두 법인은 올해 상반기에 총 43억 원의 순손실을 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중국 시장 상황을 고려해 당분간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 운영에만 집중할 방침이다.

SKC는 올해 3분기 중국 화둥(華東) 지역에 반도체 공정용 웨트 케미칼(Wet Chemical) 생산공장 건설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아직 세부 계획을 잡지 못하고 있다. SKC는 폴리에스터 필름, 반도체 소재 등을 만드는 회사이며 웨트 케미칼은 미세 이물질을 제거하는 소재다.

지난 4일 KOTRA와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중국에서 한국 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한 지역인 산둥성에서는 매년 철수하는 한국 법인이 새로 생기는 법인의 약 세 배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박용민 KOTRA 칭다오무역관장은 “최근 한국 기업이 산둥성에 연간 새로 설립하는 법인은 150개 정도인 반면 매각하거나 청산하는 법인은 500개가량 된다”고 말했다. 중국에 신규로 현지법인을 설립한 한국 기업은 2011년 827개, 2012년 722개, 2013년 816개에서 지난해에는 701개로 줄었다.

그래도 일각에서는 중국 철수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사드 문제가 발생시킬 우리나라의 예상 경제손실은 총 8조5000억 원으로, 지난해 우리나라 명목 GDP 대비 0.52%에 달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손실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가능성이 높다.

투자 혜택도 갈수록 줄어

재계 관계자는 “아무리 싫어도 중국은 우리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시장”이라며 “동남아 등 다른 시장으로의 진출 확대를 모색하더라도 향후 중국 시장에서의 수복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하게 사드 보복 때문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에서 오랜 기간 사업을 해 온 이들은 “규제가 강화되고 임금이 올라가는 등 중국의 변화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가기 버겁다”고 말한다.

현재 중국은 인건비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데다 투자혜택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말 각 지방자치단체에 외국 기업에 적용해온 세제 혜택을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지자체들은 주로 전통 제조업체들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세계 최대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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