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보다 능력 우선…국내 기업들 ‘진땀’

<뉴시스>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사진)의 후계자로 그렉 아벨 에너지 사업부문 대표가 유력하다는 예측이 나오면서 국내 재벌가에 경종이 울리고 있다.

기업의 후계에서 한국은 핏줄이 우선한다면 외국은 능력이 먼저라는 것이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는 국내 재벌의 형태에 대해 상대적 비판이 쏟아진다. 이 같은 외신이 향후 국내 재벌기업들의 행보에 어떤 작용을 할지 이목이 쏠린다.

 소유와 경영 분리된 대표적 사례로 평가
“버핏, 정기적으로 칭찬”…국내 증시에도 영향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JP모건체이스 은행의 버크셔헤서웨이 담당 애널리스트인 세라 드윗은 이날 보고서에서 “(버핏 회장을 이을) 가장 유력한 후계자는 버핏이 높이 평가해 온 그렉 아벨”이라고 예상했다.

캐나다에서 학교를 다닌 아벨은 회계사 출신으로 1992년 프라이스 워터하우스를 떠나 소콜이 운영하던 칼에너지를 통해 유틸리티 업계에 발을 내디뎠다.

칼에너지는 1996년 영국의 유틸리티 업체 노던 일렉트릭을 인수했는데 아벨은 당시 소콜의 요청으로 영국 뉴캐슬로 가족과 함께 이사해 노던 일렉트릭 인수를 맡을 정도로 일에 열성적이었다.

일 위해선 이사도 서슴지
않는 열성적 인물

버크셔 해서웨이의 임원이자 미드아메리칸의 주주인 월터 스콧은 “당시 그렉 아벨의 일 처리는 인상적이었다”며 “그렉은 어떤 일을 맡겨도 그 일을 해 낸다”고 말했다.

이후 칼에너지가 1998년 40억달러에 미드아메리칸을 인수한 이후 소콜은 다시 아벨을 미국으로 불러들였고 소콜이 2008년 버크셔에 합류하면서 아벨은 미드아메리칸의 CEO로 올라섰다. 

아벨은 버크셔 헤서웨이에 합류하기 전 미국의 전기회사들이 출자한 에디슨 전기협회(Edison Electric Institute), 보험회사인 이지스 (AEGIS) 보험 서비스 등을 거쳤다.
그의 명성은 2011년도 초 유력 언론 매체를 통해서도 익히 알려졌다. 포춘은 그의 활약이 후계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 기사를 내놓았다.

당시 내용을 인용하면 포춘은 ‘미드아메리칸의 CEO에 오른 아벨은 2008년 컨스털레이션에너지 인수와 관련 금융위기 사태로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버핏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포춘은 아벨 CEO의 나이가 48세인 점을 감안할 때 버크셔의 회장 자리를 맡는 것은 이를 수 있지만 바로 이점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82세를 맞은 버핏이 아직 은퇴 계획을 밝히지 않아 아벨이 후계자로 올라섰을 때 상대적으로 적절한 연령대가 될 수 있다고 포춘은 설명했다.

버크셔헤서웨이 그룹의 후계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데는 버핏 회장의 고령 때문이다. 그는 동반자인 찰스 멍거 부회장과 더불어 50여 년째 그룹을 이끌며 보험, 에너지 등 60여 개에 달하는 계열사로 구성된 제국을 세웠지만, 지난달 87세 생일을 맞았다.

하지만 업계는 여전히 그의 왕성한 활동을 기대하며 그의 건강이 후계자 경쟁에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벨과 후계자 자리를 다투는 또 다른 후보로는 그동안 그룹의 성장 동력인 재보험 부문을 이끌어온 아지트 자인(67)이 꼽혀 왔다. 그는 인도 출신으로 지난 1986년 버핏 회장에 발탁된 뒤 뛰어난 경영능력을 입증해 왔다.

가족 경영이 다 나쁜 건 아니다

이 소식이 전해진 직후 국내 재벌 기업들의 후계 구도가 조명받고 있다. 다만 칭찬보다 걱정과 우려가 많다. 국내 기업들의 최근 후계구도를 보면 능력보다 핏줄이 우선시 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족 경영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외국 기업 중에는 가족 경영으로 수대째 역사와 전통을 살리며 성장한 기업도 꽤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전체 기업의 72%가 가족 기업이다. 다만 소유와 경영이 함께하면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고, 실질적 주인은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대주주다.

대주주는 경영권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가진다. 사실 기업의 진짜 힘은 소유권이 아닌 경영권에서 나온다. 경영에 간섭할 수 없는 소액주주는 그래서 힘이 없다. 
한국 대기업 대다수는 철저히 자녀에게 소유권과 경영권을 동시에 물려준다. 기업을 경영할 후계자가 당연하게 ‘핏줄’로 결정된다는 의미다.

그 결과 일부 기업에서 잡음을 노출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아버지의 창업정신이 무색할 만한 투자가 이어지거나 불미스러운 일로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기업 이미지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도 외국 기업들처럼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매체를 통해 “최순실 국정 농단 과정에서 벌어진 정경유착의 배경에는 소유와 경영이 한데 묶인 한국 특유의 재벌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면서 “한국 대기업들도 이젠 전문경영인이 주도하는 체제로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100여년 전 미국 대기업들도 록펠러, 카네기, 벤더빌트 등 설립자 가문이 경영까지 맡는 구조였지만 점차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면서 “점차 자본금 규모가 커지면서 설립자 가문 지분율이 희석되는 과정에서 소유와 경영이 자연스럽게 분리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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