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최대 피해자 “연예인들이 뿔났다”

<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국정원 민간인 댓글부대 의혹으로 시작한 검찰 수사가 MB 정권 전반으로 그 가지를 뻗어 가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피해 연예인들이 줄줄이 이명박 전 대통령 고소를 예고하면서 이 전 대통령 수사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국정원이 청와대와 합작해서 만든 이 블랙리스트에는 이명박 정부시절 문성근 김미화 김민선 등 82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MB정부는 이 문화예술인들을 대체 어떤 식으로 압박을 가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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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얼마나 억울했을까?” “국정원은 할 일이 그렇게도 없었나”

현재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국정원의 수사 의뢰에 따라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이다. 문성근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피해 연예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18일 검찰조사에 응해 당시 문화·연예계에서 받은 불이익 등에 대해 진술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적폐 청산 태스크포스(TF) 조사 결과, 국정원은 원세훈 전 원장 재직시기인 2009년부터 2011년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연예계 인사 82명을 선정해 방송출연 중단, 소속사 세무조사 추진, 비판여론 조성 등 퇴출 압박 활동을 했다.

블랙리스트 조사 시작됐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인사는 문성근을 포함한 명계남, 김민선 등 배우 8명, 김미화를 포함한 김제동, 김구라 등 방송인 8명, 이외수·진중권 등 문화계 인사 6명, 이창동·박찬욱·봉준호 등 영화 감독 52명, 윤도현·故신해철 등 가수 8명이다.

국정원은 ‘대통령에 대한 언어 테러로 명예를 실추’ ‘좌성향 영상물 제작으로 불신감 주입’ ‘촛불시위 참여를 통해 젊은 층 선동’ 등을 사유로 이들에 대한 압박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 개혁위원회에 따르면 좌파 연예인 대응 TF는 블랙리스트 인물들의 프로그램 폐지, 소속사 대상 세무 조사, 편성 관계자 인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동을 제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선 배우 문성근 씨는 당시 국정원 측이 어버이 연합 등 보수 시민 단체에 자금을 지원해, 자신을 규탄하는 이른바 ‘관제 데모’를 지시한 문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국정원은 최근 참고인 조사를 받은 문성근과 김여진의 이미지 실추를 위해 나체 합성 사진을 만들어 유포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방송인 김미화 씨 또한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당시 국정원이 방송 외적으로도 자신의 개인 행적을 살핀 흔적을 문건을 통해 확인했다며 충격적이라는 심경을 나타냈다.
비공개로 조사를 받은 배우 김여진 씨 또한 자신의 SNS를 통해 ‘설마’했던 심경이 무너져내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성근 씨는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故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명계남과 함께 ‘노사모’를 조직했다. 이에 연예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때문에 문성근은 당시 국가정보원에 의해 특수공작된 합성사진 유포로 곤욕을 겪었다.

게다가 조작된 사진에 함께 합성된 김여진 또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사 중 한 명. 그녀는 이미 과거 정치적 성향으로 인한 논란에 한 차례 휩싸인 바 있다.
방송인 김미화도 블랙리스트의 상단에 이름이 적혔다. 김미화는 2011년 4월 8년간 진행한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돌연 하차해 외압 논란이 일었다.

방송인 김제동 씨는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노제 사전 행사를 진행하고 2010년 서거 1주기 때 사회를 봤다는 이유에서 불이익을 당했다. 국정원 개혁위원회에 따르면 국정원의 지시에 따라 2009년 7월 MBC는 김제동이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 <환상의 짝꿍-사랑의 교실>을 폐지했다.

2010년 1주기 행사를 앞두고 김 씨는 실제 국정원 직원을 만났다고 한다. 그 직원은 “노제 때 사회를 봤으니 1주기 때는 안 가도 되지 않겠냐. 방송 계속 해야 하지 않느냐”고 회유했다. 김 씨가 버티자 그 직원은 “나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사람이다. VIP(이명박 전 대통령)가 김제동 씨 걱정을 많이 한다”며 압박했다.

“국격 떨어뜨려… MB 수사해야”

문성근과 김미화는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논의 중이다. 문성근은 지금까지 약 5~6명 정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면서 “이번 달까지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다음 달에 고발할 것”이라고 했다. 김미화도 “변호사와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해 소송 대상의 범위를 논의하고 있는 단계이며 민ㆍ형사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씨는 지난 18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취재진에게 “국정원이 음란물을 제조, 유포한 것에서 이명박 정권의 수준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국정원에서 그 블랙리스트 부분에 대해 블랙리스트가 여러 경로를 통해서 내려지고 실행됐고, 영화와 문화예술계에, KBS, MBC 같은 공영방송과 SBS, CJ, 영화계 같은 민간계까지 내려가서 실행됐다”고 밝혔다.

이어 “국정원이 이 블랙리스트 부분에 대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고를 했다는 게 확인이 됐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전모를 밝혀 내면서 동시에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직접 소환할 필요도 있지 않은가, 그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의견을 밝혔다.

또한 함께 블랙리스트 명단에 이름이 오른 후배 배우 김규리(김민선)를 언급하면서 “이 안에 최대 피해자는 김민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감독이 상업 영화가 막히면 저예산 독립 영화를 만들면 된다. 가수와 개그맨은 방송 출연이 막히면 콘서트를 하면 된다. 그런데 배우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배우의 일생을 보면 20대, 30대에 연기력을 키우고 이름을 알려 입지를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김민선 배우는 집중적으로 배제됐다.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며 김민선을 비롯한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에 대한 악성 댓글을 멈춰줄 것을 당부했다.

더불어 “나는 5공 때부터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익숙하다. 그런데 이번 블랙리스트가 충격적인 것은 민주정부 들어서며 없어졌던 블랙리스트가 다시 복원됐다”며 “만든 사람, 지시한 사람, 따른 사람 모두 이게 불법행위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략) 큰 저항 없이 실행됐다는 부분이 큰 충격으로 느껴진다. ‘국가 압력에 어쩔 수 없었다’는 양해는 민주주의 이전에는 말이 된다. 인간적,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분명히 역사적으로 기록해야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문성근에 이어 19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게 된 김미화는 “왜 나냐고 한탄 중이다. 악몽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며 이날 자신의 SNS에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취재진들과의 만남을 가진 자리에서도 그는 “요즘 젊은 사람 말대로 실화냐? 대통령이 국민을 적으로 돌리고 이렇게 사찰을 하면 어느 국민이 대통령을 믿느냐?”고 했다. 그는 이 블랙리스트 배후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는 걸 명백히 했다. 그리고 민형사 고소를 할 것이라고 했다. 

MB 블랙리스트 수사 본격화에 네티즌은 “블랙리스트 연예인들은 그동안 얼마나 숨죽이고 살았을지 아픔이 느껴졌다”, “국정원 할 일이 그렇게도 없었나? 연예인 꽁무니 쫓으며 블랙리스트나 만들고”, “그동안 얼마나 억울했을까”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MB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조사 확대를 시사했다. 도 장관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업무보고에서  “내일부터 검찰의 파견을 받아 조사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관련 의혹이 문화부에 25건이 접수됐고 부산국제영화제 외압 의혹과 서울연극제 대관 문제 등 6건을 직권조사했다”며 “조사를 확대해 더 내실 있고 깊이 있는 진상규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정원에 이어 문화부까지 진상 조사에 가세한 형국이다. 문화부의 추가 조사 결과 발표 가능성도 예상된다.

국정원 개혁위원회도 MB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지난 14일 원세훈 전 원장과 김주성 전 기획조정실장을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검찰은 국정원 자료를 넘겨받아 곧바로 검토에 착수했다. 이제 관심은 검찰의 칼이 이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할지에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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