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라도 빨리 경제적, 정신적 헬조선 벗어날 수 있기를”

이명신 갑질빠개기 대표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한 사회의 언어는 태어나고 번성하다 사멸하면서 구성원들의 삶을 반영한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갑(甲)질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계급적 폭력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갑질’이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상대적 약자인 을에게 온갖 부당 행위를 일삼는 행태를 일컫는다. 특히 민족 대명절인 추석이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들려오는 갑질 소식들은 씁쓸함을 일으킨다. 일요서울은 추석 연휴에도 웃지 못하는 을들을 위로하기 위해 ‘갑의 횡포에 대응하는 을들의 활발한 연대-갑질빠개기’ 대표 이명신씨와의 인터뷰를 마련했다.

갑질빠개기는 갑의 횡포에 대응하는 을들의 활발한 연대
불평등한 구조에 경종 울리고 균열 만드는 온라인신문고


갑질빠개기(이하 갑빠)는 갑의 횡포와 을의 피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억울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문고 역할을 하고 있다. 사이트는 ▲ 갑질고발 ▲ 불매운동 ▲ 사기조심 ▲ 임금체불 및 해고 ▲ 억울합니다 ▲ 칭찬합니다 등으로 구성됐다.

또 사이트에는 취준생과 직장인, 소상공인 등이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생생한 갑질 정보가 올라와 있다. 억울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회원들의 조언을 볼 수 있으며 변호사·노무사와의 상담도 가능하다.

다음은 갑빠 대표 이명신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갑질빠개기 사이트를 직접 소개한다면.

▲ 한국 사회의 갑을관계에서 일어나는 갑의 무차별적인 횡포에 대응하기 위한 을의 연대를 이끌어 내려는 사이트다. 또 온라인 신문고 형태의 운영을 통해 문턱을 낮춤으로써 자유로운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각자 경험한 사회생활의 부당한 사례를 공유하고 온라인커뮤니티를 통해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노무사와 변호사의 조언이나 상담도 받을 수 있다. 단순히 개인의 불만제기나 푸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갑질 횡포에 맞서 함께 해결 방안을 찾는 온라인 연대체로 자리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갑질빠개기 사이트 운영을 시작하게된 배경은.

▲ 2015년 1월초 백화점 서비스 직원을 무릎 꿇게 만든 사건을 보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약자에게 강요되는 부당함의 정도가 상식을 넘어섰고, 이해를 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는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것이 출발점이다. 나는 어릴 적 넉넉하진 않았지만 다소 엄격하고 독립적이신 부모님의 교육 아래 공부를 통한 노력의 산물로 꿈의 실현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 결과물도 실제 어느 정도 얻었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직장인이라는 본업 외 사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 활동을 해온 것도 이런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제자들이 사회구조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모습을 목도하게 되었고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너무나 무기력해지는 자신에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다 백화점 사건을 계기로 개인인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고민하다가 만든 것이 갑질빠개기 사이트이다.

- 갑질 문제가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데.

▲ 사회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갑질의 형태는 이미 너무 많아서 나열하기도 힘들다. 수많은 행정 권력층부터 소시민들의 생활터전인 재래시장까지 말이다. 이전부터 조직은 서열화된 계급이 존재해 왔고 일상생활에선 자본의 논리로 갑을 관계가 당연시 되어 왔다. 최근 들어선 불균형적인 힘의 구조가 고착화됨에 따라 아주 기형적인 형태로까지 확대된 사안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상식의 수준을 벗어난 갑질의 폐해가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가고, 단순한 경제적 불이익을 넘어 인격 살인의 형태로까지 자행되는 현실이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공정하지 않은 사회 시스템과 교육 등 기본 복지 사각지대를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나름대로 더욱 심각하게 보는 것은 대다수 피해자의 시각이 울분을 토로하는 것에 그치거나 심지어 극복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지 않고, 공적 분야에 힘을 쓰는 이유.

▲ 우리는 모두 사회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하나의 섬과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개인의 능력이나 전문교육의 정도, 소속 계층의 영향력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다를 뿐 개개인 모두 사회에 필요한 일원이다. 그런 개인이 모여 유기체로서의 사회가 구성되는 것이다. 이때 개인의 노력과 노동의 성실함이 대가로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공정하지 않은 시스템과 불평등한 과정마저 당연시된다면 누구라도 언제라도 을의 입장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기이한 갑을 간극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사회는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나 역시 그 사회의 일원이므로 개인으로서 여건이 허락하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할 뿐이다.

- 갑질 빠개기를 운영하면서 느끼는 점은.

▲ 2년 전 조직적인 회사 생활의 불합리한 구조에 염증이 나서 심리적 한계에 봉착하게 됐다. 퇴사한 후 대형화물차 운전에 도전하기도 했다. 현재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본업으로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다행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지인들을 통해 갑질빠개기 취지에 적극 공감하고 뜻을 같이해 줄 변호사나 노무사 등의 전문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갑질빠개기에 올라온 갑질들은 경우에 따라 유료 소송을 통해 해결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법률적 조언이나 적법한 신고를 통해 해결되는 사례가 많다. 무엇보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적극적으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연대감과 공동체의식을 다지는데 나 역시 많은 위로를 받는다.

- 향후 바람은.

▲ 우리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에 경종을 울리고 하나씩 균열을 내려는 개인의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살 만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키워 나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초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불편한 광고스폰서는 지양하고 어려울 때마다 지인으로부터 조건 없는 지원을 받아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개인적 바람은 대다수의 많은 청년들이 경제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헬조선의 늪으로부터 벗어나는 사회가 하루빨리 앞당겨지길 바란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우선 나의 가치를 잡아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세상을 함께 바꿔 보자고 힘을 보태준 홍영균 변호사, 이상목 변호사, 이관수 인권노무사, 김승현 노무사에게 감사를 전한다. 늘 함께 일해 준 대학생 제자들과 여러 가지 형태로 마음을 써주는 친구들, 그리고 와이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내가 힘들 때마다 일으켜 세워준 사려 깊은 친구 박순정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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