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소수종족 로힝야족의 대거 탈출

불교국가 미얀마에서 무슬림으로 수백 년 살아 와
차별정책에 반발해 폭동 일으켰다 대형 보복 불러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노벨 평화상 수상자 10명과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2명이 지난 9월 1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로힝야족(族) 사태 개입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미얀마 이슬람 소수종족인 로힝야족은 지난달 25일 촉발된 폭력사태로 수 백 명이 사망하고, 약 37만 명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를 가리켜 ‘인종청소'의 교과서적 사례라고 묘사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서한에서 “로힝야족에 대한 폭력사태를 끝내기 위해서는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담한 변화가 필요하다"며 “미얀마 정부는 미얀마에 대한 국제적 지원과 재정 지원이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의 정책에 좌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서한에 참여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데스먼드 투투 주교는 앞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모든 국민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는 평화로운 나라가 아니며, 자유국가가 아니다"라며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다시 용감해지길 바란다"며 수지 고문에게 로힝야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에둘러 촉구했다. 

파키스탄 인권운동가이자 이번 서한에 동참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그녀의 트위터를 통해 “미얀마는 로힝야족이 몇 세대에 걸쳐 살았던 곳이다. 미얀마가 그들의 나라가 아니라면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라며 “지난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이러한 비극과 수치를 비난해 왔다. 나는 여전히 나의 노벨평화상 동료인 수지가 나와 같이 행동하길 바란다. 세계가 기다리고, 로힝야족이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안보리에 편지를 발송한 바로 그날 유엔 안보리는 미얀마의 로힝야족 탄압을 규탄하는 언론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미얀마 로힝야 위기가 ‘재앙적' 상황이 되고 있다면서,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라고 촉구했다.

불교도가 국민의 절대 다수인 미얀마에서 국가 없이 사는 로힝야족은 수십 년간 박해를 받아 왔다. 로힝야 무장세력은 2016년 10월 9일과 2017년 8월 25일 미얀마 국가 보안군을 공격했다. 그때마다 즉각 군사적 보복이 가해져 살인, 고문, 무고한 민간인의 대량 이주가 발생했다. 8월 25일 이래 37만 여 명의 로힝야족과 여타 마을 주민들이 미얀마 서쪽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외신에 따르면, 맨발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여러 날에 걸쳐 도망간 사람 가운데는 총상을 입거나 방화 공격으로 인한 상처를 지닌 사람이 많았다. 미얀마 군대가 국경을 따라 지뢰를 매설하기 시작했으며, 도망칠 낌새만 보이면 비무장 민간인들에게 군인들이 사격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최근의 탈출은 지난 40년에 걸친 집단 이주 물결의 최신판에 불과하다. 최근 충격으로 죽은 사람의 수를 미얀마 정부는 300명이라고, 방글라데시 정부는 3000명이라고 각각 주장한다. 방글라데시의 임시 천막에서 사는 로힝야족의 수는 이번에 대거 불어나 70만 명에 도달했다. 로힝야족이 전체적으로 몇 명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미얀마를 벗어난 사람들이 미얀마 거주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로힝야족 110만 명의 3분의 1 이상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로힝야족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슬람을 믿는 그들은 미얀마 서부 국경지대인 라킨주에 대부분 거주한다. 이 주의 다수 주민은 불교도이며 로힝야족은 이 주의 북쪽 세 지역에서 다수를 이룬다. 이들 회교도는 미얀마에서 수백 년 간 살아왔다. 미얀마 불교도들이 보기에 이들은 이웃나라 방글라데시에서 건너온 불법 이민자다. 로힝야족의 사회·정치적 권리는 1900년대 중반 이래 불교 민족주의 기세 아래 꾸준히 침식돼 왔으며, 1982년 당시 군사정권에 의해 국적법이 통과되면서 로힝야족 대부분이 무국적자가 됐다.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그들은 현재 세계 최대 무국적 종족이며, 미얀마에서뿐만 아니라 방글데시와 인도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다.

미얀마 북부의 무슬림은 한때 불교도, 힌두교도와 잘 지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에 걸쳐 그들은 종종 위험한 침입자로 매도되었다. 몇 차례 불어닥친 난폭한 이주 바람에 밀려 많은 무슬림이 도망갔고, 미얀마 정부 정책에 따라 불교도 집단이 과거 무슬림이 살던 마을에 새로 정착했다. 학교, 가게, 병원이 점점 분리되면서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대우가 점차 강화되었다. 유엔을 비롯한 인권기구들은 이런 차별이 수십 년간 누적되면서 탄압에 이르렀다고 본다. 2012년 라킨주의 주도 시트웨에서 발생한 폭동으로 수백 명이 죽고 10만 명 이상이 쫓겨났다. 이후 해당 지역 당국은 보안상 이유로 로힝야족의 이동 자유를 제한했다. 그 바람에 병원에도 못 가고 학교에도 못 가는 사태마저 벌어졌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탈출을 촉발했다. 인간 밀수꾼들의 도움을 받아 배를 타고 미얀마를 빠져나간 사람들 가운데 2014년 이주 위기 때 수천 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후반에 모습을 드러낸 ‘아라칸 로힝야 단결 군대(ARSA)’는 8월 25일 주 보안초소 약 30곳을 공격해 보안군 수 십 명을 죽였다. ARSA의 기습은 이 주에 엄청난 수의 미얀마 군대가 배치되고 있다는 보고에 뒤이어 발생했다. 이미 보복 태세가 돼 있던 미얀마 군, 경찰, 보안 세력은 무자비하게 폭동에 대응했다. 며칠 사이 로힝야족 수천 명이 미얀마 군대가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다며 방글라데시로 밀려들어갔다. 미얀마 정부는 폭동 진압 과정에서 어떤 가혹행위도 없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미얀마 실권자 아웅산 수지는 폭력을 막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가혹한 비난을 받고 있다. 미얀마 관리들은 정작 로힝야 군대가 민간인 학살에 책임이 있으며, 로힝야족들이 그들의 집에 스스로 불을 질렀다고 주장한다. 

자이드 유엔인권대표는 지난 9월 11일 미얀마 정부쪽의 이런 주장을 부정했다. 방글라데시 외무장관은 같은 날 “점진적이고 몹시 괴롭히는 과정을 통해 그들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내는 정책”을 썼다며 미얀마 정부를 비난했다. 미국과 유엔은 로힝야족을 물리치지 않고 임시로라도 받아준 방글라데시 정부를 칭송하면서 방글라데시에 계속 국경을 개방할 것을 촉구하고 국제사회에 난민 지원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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