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추석 연휴를 맞아 지난 6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TK(대구·경북) 지역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징비록(懲毖錄)>에 대해 “류성룡(柳成龍) 선생이 ‘징비’ 정신을 남기셨는데 불과 몇 십 년 만에 병자호란을 겪고 결국은 일제 식민지가 되기도 했다. (이후) 6·25전쟁도 겪고 지금에 이르게 됐다”며 “우리가 얼마나 진짜 징비하고 있는지 새겨봤으면 한다”고 했으며, 방명록에 ‘재조 산하와 징비의 정신을 되새깁니다’라고 썼다.

문 대통령이 추석 연휴에 던진 화두인 ‘재조 산하(再造山河,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뜻)와 징비(懲毖)’에 대해 일부 언론은 국가개조와 적폐청산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임기 초반의 대통령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언론의 입장에서는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는 옛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징비록>은 서애(西厓)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겪은 피와 땀과 눈물의 기록이다. 징비(懲毖)는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하다’라는 뜻이다.

<시경(詩經)>의 송(頌)편에 ‘소비(小毖)’라는 제목의 시가 있는데, 첫 구절에 ‘내가 지금 깨우치고 경계하는 건 후환에 대비하기 위함이라네(여기징予其懲, 이비후환而毖後患)’라는 말이 나온다. 류성룡은 여기에서 징(懲), 비(毖) 두 글자를 따온 것이며, 이 ‘징비’라는 말을 평생 동안 가슴에 새기면서 살았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징비’는 일부 언론에서 과잉 해석한 ‘잘못과 비리를 경계해 삼간다’는 뜻보다는 ‘깨우쳐 경계해 후환에 대비한다’는 뜻에 가깝다 할 것이다. 현 정부가 적폐청산을 밀어부치고 있으니까 일부 언론에서 덩달아 춤을 추고 있는 격이라 하겠다.

목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둘러싸고 벌이지고 있는 미·중의 패권경쟁이 마치 360년 전 명·청 교체기를 연상케 하고 있다. 인조반정(反正) 세력과 현 집권세력은 닮은꼴이 의외로 많다.

반정세력은 임진왜란에서 재조지은(再造之恩)의 원병(援兵)을 한 명과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론(이념)에 눈멀어 중원의 패권이 바뀌는 국제정세 변화를 거부했다. 인조는 ‘반정의 명분(폐모살제廢母殺弟: 어머니를 유폐시키고 동생을 죽임, 궁궐중수, 명나라에 대한 배은망덕)’ 때문에 척화파의 주장을 거절하지 못했다. 마치 촛불로 정권을 잡은 현 정권이 촛불세력의 눈치를 보느라 국토수호를 위해선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결기를 보이지 못하는 것과 흡사하다.

또한 인조는 반정 뒤 민심수습과 민생안정은 뒤로 하고 광해군 추종세력인 북인을 탄압해서 국론분열을 자초했다. 마치 현 정권이 ‘징비’를 위해 안보와 외교에 박차를 가하기보다는 경제 포퓰리즘으로 경제난을 가중시키고, 정치보복을 위한 ‘적폐청산’에 몰두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임진왜란 발발 한 해 전인 1591년. 류성룡은 이순신과 함께 권율도 천거했다. 류성룡의 미래지향적인 통찰력으로 나라의 큰 환란에 대비할 수 있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징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하회마을에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실의에 빠져 있던 류성룡에게 적어준 글귀인 ‘재조산하’를 언급하면서 “류선생처럼 국난에 미리 대비하고 극복하고 나아가서는 재조산하,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전 과정에 탁월한 역할을 하신 분이 다시없다” 했다.

이제부터라도 문 대통령은 진정한 ‘징비’를 위해 몇 가지 시급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먼저 “한미동맹을 깨더라도 전쟁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대통령외교안보특보나 “북의 핵무장은 적화통일을 획책하고 있는 김정은 세습왕조 때문이 아니라 미국 등 강대국의 압박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는 청와대 참모들을 내쳐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류성룡 선생처럼 국난극복을 위한 구국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들을 여야 정파를 초월하여 발탁해야 한다.

1695년에 일본에서 <징비록>이 국책사업으로 출간되었다. 일본판 서문은 가이바라 엣켄이 썼다. 그는 서문에서 “비록 나라가 커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한다. 비록 천하가 평안해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험하다. 전쟁을 좋아하고 잊는 두 가지를 어찌 경계하지 않겠는가? 조선은 전쟁을 잊었기 때문에 거의 망할 뻔하였다”고 적고 있다. ‘인무원려 필유근우(人無遠慮 必有近憂)’, ‘사람이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가까운 날에 근심을 겪게 된다’는 <논어>의 가르침도 같은 뜻일 것이다.

<징비록>에는 류성룡의 ‘이기는 전략’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천 마디 말이나 만 가지 계략이 다 필요 없고 오직 뛰어난 장수 한 사람이 중요하다. 거기에 조조(曹操)의 3가지 요소(지형이용, 군사기강, 우수한 병기)가 누락되지 않고 더해진다면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다” 류성룡은 인재무시와 군사방략이 미비한 전략은 무의미함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우리 지도층은 과연 지금 ‘징비’하고 있는가?

우종철 자하문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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