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개정에 대한 여권의 의지가 두드러져 보인다. 지금의 헌법으로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권력구조 변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담아내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민들도 이제는 30년 된 ‘구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동안 정치권은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꾸려 30여 차례 회의를 실시한 데 이어 국민들의 의견을 개헌 논의에 반영하기 위해 ‘헌법 개정 국민대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정치권은 이번에야말로 꼭 개헌을 하겠다고 벼르며 특히 권력구조는 반드시 개편할 모양새다.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거나 이원집정부제 또는 내각제로 변경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좀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녕 현행 대통령제 때문에 정치가 혼란스럽고 퇴행했는지를 말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를 엄격히 분리시켜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삼권분립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현행 대통령제의 부작용과 폐해를 제도 탓으로 돌려서는 곤란하다. 

설사 개헌을 통해 4년 중임제가 채택됐다고 치자. 그리 된다고 정치적 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안정된다는 보장은 없다. 단임제인 지금도 포퓰리즘이 난무하고 있는데 중임제도가 되면 가뜩이나 적대적 대립이 극심한 우리 정치 현실에서 포퓰리즘이 더욱 극성스러워질 수 있다. 다른 권력구조 역시 혼란스럽기는 매 한가지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누가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제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무능한 사람에게 권력이 쥐어지면 법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는 것을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왕조 시대에도 누가 권력을 가지느냐에 따라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좌우됐다.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조선시대 왕들 중 대표적으로 연산군은 자신에게 주어진 무소불위의 권력을 무도하게 사용하는 바람에 천하의 폭군이 된 반면 세종은 재임기간 같은 권력으로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린 성군으로 칭송받는다. 

지금 이 나라에는 제도에 대한 과신에 빠져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 보인다. 제도로 인간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매우 위험스럽고 불합리한 발상이다. 대통령 단임이라는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단임을 운영하는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지금의 헌법이 나빠서 정치가 이 모양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 모르겠다. 작금에 실시되고 있는 개헌 논의가 권력 운영의 편의만을 염두에 둔 채 권력 논리에 의한 개헌론이라는 의구심이 짙다.

정치권도 국민들도 개헌에 대해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자고로 선진국치고 개헌을 자주 한 나라는 별로 없다. 미국이 그렇고 또 가까운 일본이 그렇다. 미국은 우리보다 민주주의 역사가 긴데도 불구하고 헌법을 쉽게 개정하지 않았다. 일본 역시 내각제를 수십 년간 고수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아홉 번이나 개헌을 했으나 성공적이지를 못했다. 제도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다. 아직도 정치 후진국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도를 바꾸고 개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제도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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