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장의 추석 연휴기간 동안 여야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주민들에게서 청취한 민심은 이구동성으로 ‘불안한 안보’와 ‘심각한 경제’에 대한 우려였다. 이낙연 총리도 ‘추석 민심’은 ‘안보’와 ‘민생 경제’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추석 연휴 첫 마디로 ‘민생’과 ‘적폐 청산’을 다시 거론했다. 문 대통령이 불안한 안보와 어려운 경제 속에서도 아직 ‘적폐 청산’에 갇혀 있음을 반영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국정과제 1호로 ‘적폐 청산’을 내세웠고 ‘촛불 혁명’ 민심을 받들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정부는 ‘적폐 청산’한다면서 전전(前前) 정부 뒷조사하기에 바쁘다. 청와대는 16개 부처와 국가보훈처 등 19개 정부 기관에 “적폐 청산을 위한 부처별 TFT(특별조사단) 구성 현황과 향후 운용계획을 (7월) 24일 까지 회신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적폐 청산’에 적극 나서라는 압박이다. 청와대는 이미 5.18 민주화운동 진압에 대해 4번째로 조사토록 지시했고 4대강 사업도 3번째 조사토록 했으며 세월호 참사도 재조사토록 했다. 정부기관들은 과거사 들춰내기에 여념이 없다. 정부는 ‘적페 청산’에 갇혀 앞으로 나가시 못하고 뒤로 가고 있다. 

야당들은 전전 정부 ‘적폐 청산’에 대해 정치적 탄압이라며 맞선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 가족의 640만 달러 뇌물 수수 혐의 등에 대한 조사를 다시 해야 한다며 맞대응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5억달러 불법 대북 송금에 대해서도 재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머지않아 터져 나올 것 같다. 문재인 정권은 과거사를 놓고 야권과 이전투구에 빠져 있다. 물론 과거 잘못은 문책되어야 한다. 하지만 ‘적폐 청산’이 정치 보복이고 야권을 무력화하기 위한 책동이며 차기 재집권을 위한 야권 죽이기로 의심된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국가적 불행이다.

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촛불 혁명 힘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며 ‘촛불 혁명” 민심을 받들겠다고 했다. 그는 촛불 시위를 절대선(善)으로 여긴 나머지 군중 시위를 ‘직접 민주주의’라고 곡해하기도 한다. 그는 “촛불 집회처럼 직접 촛불을 들어 정치적 표시를 하고, 댓글을 통해 직접 제안하는 등 직접 민주주의를 국민이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촛불을 들어 정치적 표시”를 하고 댓글을 쓰는 것은 참여자들의 원성과 항의 표출이지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런데도 ‘직접 민주주의’라고 찬양한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벗어난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이 마우쩌둥(毛澤東) 어록을 흔들면서 난동을 부렸던 것도 ‘직접 민주주의’에 해당하느냐고 묻고 싶다. 

문 대통령은 ‘촛불 혁명’의 참 뜻을 확대 해석한 듯싶다. 촛불 시위 민심은 ‘최순실 국정농단’처단과 ‘박근혜 탄핵’에 있었다. 그들의 범법 여부는 재판중이고 촛불 시위는 끝 난지 오래다. 평상시로 돌아갈 때 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촛불 혁명’을 되풀이 하면서 아직도 촛불 정서에 묶여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정책 결정에서도 ‘촛불 혁명’ 혁명군 같이 민주적 토론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일쑤다. 월성 원자로 5.6호기 건설 중단,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등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버렸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을 때 “분열의 시대와 단호히 결별하고 정의로운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는 ‘통합의 시대’ 대신 ‘촛불 혁명’과 ‘적폐 청산’에 갇혀 ‘분열의 시대’로 역행하고 있다. 촛불 시위는 끝났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백성은 등이 따습고 편안한 나라를 원한다. 국민은 ‘적폐 청산’구호에 피로감을 느낀다. 정부는 추석 민심에서 표출된 불안한 안보와 어려운 경제 수습을 위해 전력투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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