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이미 충청도를 태어나게 했던 한 축, 청주. 고을 이름에 맑을 청(淸)자가 붙었으니 당연하게도 청주는 무척 깨끗하고 맑게 느껴진다. 맑은 것이 곧 욕심이 없다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게 이해된다면 그건 아마도 현재의 청주에 대한 정확한 표현.
 
청주는 흔히 교육의 도시로 일컬어진다. 그 근거로 우선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이 있다. 직지는 이곳, 바로 청주 땅에서 만들어져 세계문화유산으로 자라났다.

경상, 전라, 충청 등 삼남 제일의 향교였던 청주향교는 오랫동안 청주지방의 인재를 책임져 왔으며 영남학파와 함께 조선시대 성리학을 양분했던 기호학파 역시 이이를 중심으로 청주에서 세력을 키워 나갔다.
       하지만 청주를 교육의 도시로만 이해하는 것은 청주에 대한 작은 오해. 청주를 가만히 걷다 보면 교육이라는 이미지 말고도 곳곳에서 어떤 소소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단순한 거리지만 왠지 따뜻하게 느껴지는 온도, 평범한 시설이지만 분명 배려가 깃든 시설들 그리고 이곳에 살고 있는 청주 사람. 크게 화려하지 않고 많이 드러내지 않으며 덤덤하되 조심스러운 그런 느낌, 바로 청주의 진짜 정서인 ‘청주스러움’ 말이다.
 
      직지의 탄생, 고인쇄박물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 직지심체요절’을 비롯한 금속활자에 관한 모든 것을 전시해 놓은 고인쇄박물관. 이토록 위대한 금속활자를 발명한 민족이었기에 작금의 세계 미디어 최대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었을 것이다.
      청주에서 탄생한 금속활자는 세계의 여러 경로를 통해 가장 위대한 발명이자 인류 문화 발달에 매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되곤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타임지에 지난 천 년간 세계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된 것. 당연히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박물관 내부에는 직지활자판을 비롯해 직지영인본 등이 전시돼 있으며 흥덕사 스님들이 직지를 인쇄해 책으로 엮는 모습을 재현해 놓아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직지의 최초 태동지인 바로 옆 흥덕사에서 출토된 금구와 소종, 기와 등 또한 고인쇄박물관의 주요 포인트. 맞은편에 근현대 인쇄 전시관이 있으며 또 다른 자매시설인 금속활자전수관에서는 매주 금요일 1일 3회 금속활자 주조 과정 시연이 열린다. 마음껏 자랑스러워 해도 좋을 곳.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
 
     남쪽의 파란 기와집, 청남대

1983년부터 우리나라 대통령의 공식 별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청남대. 처음에는 ‘영춘재’라 불렸지만 1986년 7월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의 청남대로 개칭됐다.

현재는 일반에 개방돼 대한민국 국민 모두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국민과의 소통은 이런 곳에서 출발한다.
     먼저 청남대로 향하는 길에 우선 감상해야 하는 중요 포인트가 있다. 굽이굽이 대청호를 곁에 두고 달리는 호젓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하고 홀가분하다.

백합나무 430여 그루와 다양한 수종이 가지런히 도열한 이 길은 2005년 일찌감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바 있을 정도. 내부의 184만4000㎡의 부지에는 청남대 본관과 대통령기념관, 하늘정원과 전망대 등의 시설들이 있으며 역대 대통령 열 분의 동상과 각 대통령의 이름을 딴 대통령길도 조성돼 있다.
     잘 정돈된 잔디광장에는 은빛의 봉황 조형물이 놓여 있어 적절한 무게감을 더하고 수천의 연잎이 초록 바다를 이루는 양어장도 청남대에서 꼭 들러봐야 할 곳.

청남대를 빼곡하게 채우는 11만6000여 그루의 조경수와 야생화 35만여 본도 이곳의 싱그러움을 꾸미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소재들이다. 넉넉하게 시간을 잡는다면 거의 하루를 할애해도 모자랄 정도로 풍부한 관람 포인트를 갖추고 있는 청남대. 원래 대통령 별장이지만 절대 무겁거나 엄숙할 필요는 없다.
     그러려고 국민에게 개방 하지는 않았을 터, 그저 뒷짐 한 번 지고 천천히 걸으면 그뿐. 최근에 청와대 앞길도 개방됐으니 우리는 이제 나랏님하고 더욱 가까운 국민이 됐다. 사전 예약은 필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청남대길 646.
 
    청주의 과거와 현재를 담다, 문의문화재단지

청주의 남쪽 문의지역은 금강의 본류가 흘러 물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해 오래전 한반도의 먼 조상들부터 살아 온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문의문화재단지는 이런 바탕 위에 세워진 종합 역사 시설로 대청호가 두 눈 가득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한다. 특히 대청호반이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한 까닭에 그 맑은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청남대에서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었다면 단추 하나쯤 풀고 여유롭게 다녀도 좋은 이곳. 단지 내에 선사유적과 민속자료 전시관, 양반가옥과 전통가옥 그리고 주막집이나 토담집 등을 조성해 문의지역을 넘어 청주 전반의 옛 전통문화를 제대로 구현해 내고 있으며,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시묘살이하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여막은 요즘 접하기 어려운 특별한 전시물이다.
    이 외에도 양성산 기슭까지 지역 민가와 조선중기 지방 관아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을 나타내는 문산관 등이 이어진다. 청주의 전반적인 역사와 풍습을 한 번에 이해하기에 좋은 곳. 단지 가장 끝 부분에 위치한 웅장한 외관의 대청호미술관은 2004년 개관한 미술관으로 2층으로 이루어진 전통 양식이다.
    3개의 전시실에서 다양한 초대전과 각종 기획전, 대관전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야외 조각공원의 전시물들도 수준이 높다. 호수와 역사가 만들어 놓은 자리에 예술이 살포시 들어앉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구성이 어디 있을까. 문의문화재단지는 와서 보고, 느끼며, 체험하고 또 기억하는 공간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대청호반로 721.
 
   문화가 일상이 되다, 동부창고

동부창고는 예전에 청주 안덕벌 일대에 있었던 청주연초 제조창의 창고였다. 한때는 3000명이 넘는 근로자들이 있었으나 현재는 청주시가 200여억 원을 투자해 7개동을 리모델링하면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소통의 공간으로 재조성하고 있다.
   빈티지하면서 아날로그한 감성이 공존하지만 모던하고 예술적인 느낌도 강해 조금씩 새로운 입소문을 타고 있다.

청주대학교 앞에 위치해 젊은 에너지가 넘치며 창고 특유의 분위기로 영화 촬영 장소로도 자주 이용되는 편. 수시로 공연이나 전시회 등도 열리고 목공예나 프랑스 자수, 팝아트 초상화 클래스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어 청주시민들의 복합 문화예술 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동부창고를 상징하는 간판과 정문은 자체에서 꾸린 동부창고 8경 중 제1경이며 전체적으로 대만의 남부 도시 가오슝의 보얼예술특구와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외형만 그럴 뿐 동부창고가 갈 길은 명확히 다르다. 아직 모든 프로젝트가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곧 오픈해 청주의 문화와 예술을 전방위에서 이끌 동부창고. 문화가 살고 예술이 자라나려면 이런 공간은 소중히 가꿔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청주 여행의 새로운 시작점이 될 곳이라는 것. 청주의 문화지도는 이곳에서 출발한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314.
 
  가장 너른 힐링, 상당산성

그다지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가 의외로 산성국가라는 것이다. 산이 많은 나라답게 전국 어디를 가도 산성을 만날 수 있으며 대부분 보존이 잘돼 있어 문화재적 가치 또한 높다.
  청주의 상당산성 역시 전국의 유명 산성들 중 명품으로 인식되는 대표적인 산성.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백제시대부터 있었던 토성이 차츰 증·개축돼 온 것으로 역사가 깊다.

산성이 위치한 망산은 우암산과 함께 백두대간 속리산 천왕봉에서 서북쪽으로 갈라져 나와 청주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산이다. 이곳을 기점으로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의 경계를 이루었기에 이곳에는 필연적으로 산성이 위치할 수밖에 없었다.
  단양의 온달산성과 보은의 삼년산성도 같은 맥락. 산성의 둘레는 4.2㎞정도이며 성벽 높이는 최대 5m를 넘는다.

안쪽의 오목한 분지를 감싸 안는 형태로 포목식 산성이라고 불린다. 현재는 산성 외벽을 비롯해 남문인 공남문과 동문인 진동문, 서문인 미호문이 복원돼 있다.

산성 자체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주변을 돌아 나오는 가벼운 트레킹에도 적합해 여러 모로 청주시민들이 아끼고 사랑해 청주시민이 선정한 청주의 자랑 10선에 올랐을 정도. 남문의 성루에 올라 감상하는 잘 조성된 잔디와 나무가 드넓게 펼쳐지는 장면은 청주 제1경으로 삼아도 모자랄 듯하다.
  이곳이 과거 군사시설이었음을 잠시 잊게 만드는 풍경.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는 힐링은 바로 이런 것이고 또 이런 곳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용담·명암·산성동.

스스로 바보가 된 화가, 운보의 집

한국 화단의 거인이라고 불렸으며 스스로 바보산수의 화풍을 개척한 운보(雲甫) 김기창. 운보의 집은 그가 말년을 보내고 작고할 때까지 실제로 생활했던 곳이다.
 운보의 집이 위치한 청원군은 원래 그의 어머니 고향집으로 어릴 때 장티푸스 고열로 청각을 잃어버린 운보는 언제나 그를 묵묵히 지켜주었던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간 셈이다. 과거 친일 행적과는 별개로 그의 화풍은 충분히 독자적이며 독보적이었고 월등히 독창적이었다.

운보의 집은 놀랄 만큼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정성을 들인 잘 정돈된 조경, 아담한 정자와 연못 그리고 조각공원과 수석 공원, 분재공원 등은 중심부에 위치한 본채와 더불어 운보의 집을 참 풍성하고도 그의 풍채를 닮아 여유롭게 꾸며준다.
 뒤편에 위치한 미술관 내부에는 그의 대표작 50여 점과 도자기, 판화 등 유품 그리고 그의 평생의 동반자이자 화단의 동지였던 부인 박래현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운보가 직접 살았던 본채의 지하 전시실에는 운보 화백의 깊은 신앙심을 느낄 수 있는 예수의 생애를 그린 성화가 전시돼 있는데, 한국 성화의 최고작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운보는 원래 기독교도였으나 추후에 천주교로 개종했다.
 운보의 집은 곳곳마다 고즈넉함과 아늑함이 공존한다. 아직 크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안타까우면서도 그래서 오히려 다행스럽기까지 한 운보의 집. 행랑채의 툇마루에 앉아 가만히 그의 예술혼을 되짚어 본다면 청주 여행은 실로, 완성이다.

현 우리나라 만 원권의 주인공인 세종대왕을 그린 이가 바로 운보라는 설명이면 충분치 않은가.

<사진제공=여행매거진 G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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