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맹국도 속내 알기 어려운 ‘트럼프 스타일’
- 굳건한 한미동맹 틀 안에서 對美 협상력 높여야


지난 수십 년간 이런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 태도의 불확실성을 겁내는 상황 말이다. 한동안 한 달에 두세 번씩 미사일을 쏴대며 긴장을 고조시키던 북한이 지난 한 달간 침묵하고 있다.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일단 더 이상 미국을 자극하지 않고 추이를 지켜보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종잡을 수 없다. 도덕적 평가와 별개로 이러한 협상 스타일은 상대편에서 대처하기가 까다롭다. 얼마 전 논란이 된 뉴욕타임즈에 실린 소설가 한강 기고문에서도 알 수 있듯, 상당수 남한 사람들조차 혹시나 그가 전쟁을 선택할까 겁낸다. 남한 정부 당국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그의 속내를 북한이 알 수는 없다.

정말로 전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인지, 북핵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지지율 제고를 위한 일종의 ‘정치적 쇼’를 벌이는지조차 불명확하다.

역설적으로 동맹국조차 속일 수 있는 그의 협상 스타일이 북한을 협상장으로 이끌어낼 수도 있다. “시간은 북한 편이다”라는 문정인 특보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 미국은 가만히 있어도 된다. 미국이 보기에 북한은 중동에 있는 몇몇 테러단체처럼 ‘실제로 미친 놈’이 아니라 ‘미친 척하며 협상의 이득을 취하려는 놈’이다.

북한 체제는 이미 북한인과 남한인과 일본인의 목숨을 인질로 잡고 있다. 그것만으로는 미국을 압박하기가 충분하지 않아서 ICBM과 핵무기를 가지려고 한다. 북한의 체제보장을 해줄 수 있는 이는 미국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속내는 미국도 알고 있다. 김정은은 삼십대 중반의 젊은이이며 사실상 자기 왕국의 모든 것을 거머쥔 부유한 이다. 북한은 빈곤하지만, 김정은 개인은 부유하다. 그는 잃을 게 많은 사람이다. 죽음을 불사할 이가 아니다. 오래 살고자 이 모든 일을 벌이는 중이다.

그런 그가 ICBM과 핵무기를 손에 쥔다고 한들 혹시나 미사일 버튼을 누를까 벌벌 떨 이유는 없다. 만일 북한이 미국 본토를 선제공격하는 순간이 온다면, 북한 전역이 지도에서 확실히 지워질 것이다. 김정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국도 알고 북한도 안다. 그러니 미국이 절절 매야 할 이유는 없다.

이 상황에서 북한이 처한 고약한 딜레마는, 미국의 이러한 ‘합리적 판단’을 교란하기 위해 ‘미친 척’ 연기를 더 심오하게 해야 하는데, 이 연기가 통하면 정말로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일 게다.

미국은 남한인과 일본인의 목숨에조차 심각한 이해관계는 없지만, 남한과 일본의 경제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남한과 일본의 경제가 붕괴할 가능성을 따져보면 한반도 전쟁의 대가는 종잡을 수 없을 수준으로 커진다.

그러나 그 대가가 아무리 크다 한들 북한이 실제로 미국 본토에 핵미사일을 날릴 수 있다고 여긴다면 감내할만하다. 따라서 북한은 결국 미국의 ‘합리적 판단’을 교란하면서도, 그가 ‘대가를 덜 지불할 합리적 판단’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해야 한다. 모순적 기대다.

더구나 예측불허의 트럼프 대통령을 협상 상대편으로 맞이하게 되면 딜레마의 위험이 더 커진다. 북한은 전면전을 원하지 않는다. 굳이 미국을 타격하지 않더라도 한반도 전면전의 결말은 북한에게 뻔하기 때문이다.

미중 관계에서의
위치 잡기가 중요하다


따라서 다음달 초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남한도 북한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미국이 강경하고 남한은 다소 이를 말리려는 듯한 모양새다. 이에 대해 보수 진영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훼손한다고 비난한다.

방한 일정이 1박2일인 것도 일본이 2박3일인 데 비해 우려스럽고, 트럼프와 이견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우려스럽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고 현실적으로 해결할 힘도 없다”며 무력감을 토로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도 역설이 있다. 정말로 한국이 그렇게 무력하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조치가 큰 의미가 없다. 그렇게 볼 경우, 그가 상황을 더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게 아니라면 남한의 다소 유화적인 태도가 군사 위협을 느꼈지만 자존심을 내세울 북한이 협상장에 등장할 핑계가 될 수도 있다. 경찰 두 명이 범죄자 앞에서 벌이는 일종의 ‘좋은 놈, 나쁜 놈’ 게임과도 비슷한 상황이다.

미국 대통령에겐 남한 정부보단 더 많은 선택지가 있다. ‘협상이냐, 전쟁이냐’가 전부가 아니다. 가령 중국에게 북한을 압박하라고 일방적으로 명령할 수는 없지만, 협조하지 않는 중국을 미국이 직접 압박할 수단은 많다.

이 경우엔 남한의 태도도 문제가 될 것이다. 과거 참여정부는 동북아균형자론을 내세워 미국과 중국에 대해 등거리 외교를 하려고 했으나, 한국의 현실적인 국력으론 어려운 일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는 그보다 더하게 대일관계보다 대중관계를 중히 여기는 외교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그런다고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주지도 않았고 훗날엔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돌아왔다.

남한 정부의 북한에 대한 다소 유화적인 태도가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미중관계에서 남한의 발걸음이 누구에게 쏠릴 것으로 기대되느냐의 문제는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물론 쉬운 선택은 아니지만, 오히려 중국의 ‘사드 보복’이 훌륭한 명분을 줬다. 울고 싶은 때 뺨 때려준 격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 미국의 신망을 얻지 못한다면, 향후 한국은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보복당하는 처량한 신세가 될 수 있다.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미국에 대한 발언권을 높이려는 태도가 절실한 시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그것을 보여줄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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