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 주연,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 조연 구도
“무리한 구조조정 사실상 방관, 파업 유도 초래한 책임 있다” 지적

 
검찰이 조폐공사 파업 유도 의혹사건 수사착수 8일 만인 1999년 7월 28일 파업 유도 발언의 장본인인 진형구(秦炯九) 전 대검공안부장을 사법처리함으로써 이 사건의 수사는 끝이 났다. 당시 검찰은 검찰 내의 특별검사격인 특별수사본부를 구성,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인 끝에 파업 유도는 실재했지만 검찰조직이 개입하지 않은 진 씨 개인의 ‘1인극’이라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전말
 
이 사건의 시작은 지난 1998년 9월 중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가 강도높은 공기업 구조조정 계획을 추진하던 와중에 임금삭감 문제로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던 강희복(姜熙復) 전 조폐공사 사장은 같은 달 1일 단행한 직장폐쇄 해제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고교 2년 선배로 평소 친목회를 통해 알고 지내던 진 씨를 찾았다.
 
임금삭감에 항의하는 노조의 산발적인 파업이 계속되던 당시까지만 해도 강 씨는 구조조정을 조기에 추진하기보다는 임금 50% 삭감으로 노동자 전체를 끌고가려는 복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강 씨의 이런 생각은 진 씨를 만나면서 바뀌게 된다.
 
진 씨가 당시 구조조정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노조반발을 해결해 줄 테니 옥천, 경산 조폐창의 조기 통폐합을 강행하라고 권한 것이다. 검찰은 당시 진 씨가 강 씨에게 “임금삭감안을 갖고 노조와 협상할 게 아니라 구조조정을 밀고 나가면 불법파업이 되니까 즉시 제압이 가능하다”며 “구조조정을 할테면 빨리 하라”는 식으로 여러 차례 독촉했다고 밝히고 있다.
 
강 씨는 당시 기획예산위가 2001년까지 조폐창 통폐합 일정을 이미 제시한 상태에서 ‘뒤를 봐 주겠다’는 진 씨의 언질에 따라 같은 해 10월 2일 느닷없이 옥천조폐창을 폐쇄하고 경산 조폐창으로 시설을 조기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강 씨는 이후 같은 해 10월 10일의 이사회에 조폐창 조기 통폐합안을 올리고 다음 달 18일 이 안에 대한 의결을 강행했다. 한편 진 씨는 당시 구조조정에 반발하는 조폐공사 노조의 파업에 대비한 대책보고서를 만들도록 이준보(李俊甫) 당시 대검 공안2과장 등에게 지시, 3차례의 수정을 거쳐 10월 13일 최종보고서를 완성했다.
 
파업도 일어나기 전에 사전 보고서를 만들도록 지시한 진 씨의 의도를 몰랐던 이 과장은 처음에는 노사분규와 관련된 일반적인 대책 위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가 구조조정 관련 대책에 초점을 맞추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진 씨는 보고서가 완성되자 당시 검찰총장이던 김태정(金泰政) 전 법무장관에게 보고했으나 김 전 장관은 별다른 의심 없이 ‘앞으로 있을 사태에 대비해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폐창 조기 통폐합안이 이사회 의결을 거친 후 1주일만인 지난 98년 11월 25일 노조는 마침내 구조조정에 반발하는 ‘불법파업’에 돌입했고, 진 씨는 강 씨에게 파업 지도부 35명을 즉각 고발토록 했다.
 
진 씨가 의도한 대로 검찰은 불법파업을 주도한 구충일 당시 노조위원장 등 노조간부 7명을 구속하고 사측은 별도로 파업가담자 7백30여명에게 파면(10명), 직위해제(84명), 정직(18명), 감봉(17명), 견책(3명), 경고(6백여명) 등의 징계조치를 취해 사실상 노조는 무력화되고 만다.
 
결국 진 씨의 조폐공사 파업 유도 발언은 불법파업을 촉발시켜 구조조정을 2년이나 앞당기고 노조를 무력화시킴으로써 공기업 구조조정의 모범적인 선례를 만들었다는 ‘취중진담’으로 드러난 셈이다.
 
범행동기
 
검찰은 진 씨와 강 씨가 고교 동문이라는 개인적 친분과 진 씨의 공명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당시 대검 공안부장이란 요직을 맡은 진 씨는 대내외적으로 자신이 뭔가 이뤄 냈다는 업적을 남기고 싶어 했고 이는 향후 인사와 자신의 입지 등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시 11회인 진 씨는 공안부장 자리에 이어 검찰내 최고 요직으로 꼽히는 서울지검장 입성을 노렸고 공공연하게 자신의 치적을 과시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노사문제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구조조정에 따른 파업사태를 조기 해결한 공안책임자로 기억되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98년 4월 조폐공사 사장에 취임한 강 씨가 공기업 구조조정을 조기에 성공시킨 인물로 인식되기를 희망한 것도 진 씨의 범행을 가능케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파장
 
검찰의 공안사령탑이 공기업 노조의 파업을 유도한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향후 대국민 신뢰는 물론 정치권, 노사관계, 검찰조직 등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우선 파업유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됐다.
 
검찰은 99년 6월 진 씨 발언 직후 “파업유도는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며 단순한 ‘취중실언’으로 치부했다. 당시 검찰 내부적으로도 선배 검사가 자신의 공명심 때문에 불법을 저지른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노동·시민단체들도 일제히 반발했다.
 
노동계는 파업 유도가 사실로 드러난 만큼 당시 검찰수뇌부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며 공작 의혹이 제기됐던 각종 파업사태에 대해서도 전면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단체들도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특별검사제를 도입해 사건을 원천적으로 재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파업 유도 사건의 강원일(姜原一) 특별검사는 99년 12월 17일 당시 2개월 동안 숨가쁘게 진행해 온 수사의 결실을 A4용지 70쪽 분량의 보고서로 내놓았다. 이날 김대중 대통령과 국회에 보내진 보고서는 ▲수사결론 ▲사건전말 ▲사법처리 내역 등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됐다.
 
특검팀은 우선 수사결론 부분에서 ‘조폐공사 파업을 유도했다’는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의 취중 발언이 실체에 근거한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즉,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이 경영실적을 높이기 위해 오는 2001년으로 예정됐던 조폐창 통폐합을 2년 앞당겨 추진, 파업을 유도했고 이 과정에서 진 전 부장을 끌어들여 파업을 진압했다는 것이다.
 
강 전사장이 주연, 진 전 부장이 조연이라는 구도다. 또한 진 전 부장이 자신의 의도를 부하 직원들에게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강 전 사장의 지원 요청을 받고 조폐공사 분규 대책보고서를 작성토록 하는 등 파업유도에 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검찰 등 다른 국가기관이 공작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특검팀은 “실체가 없다”고 적시했다.
 
다만 대전지검 공안부 검사 2명이 보고서 작성 등을 통해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에 간여할 수 없도록 한 노동관계법을 위반하면서 조폐공사 노사분규에 과도하게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보고서에는 일종의 관행으로 사측에 유리한 입장을 견지한 채 노사분규에 과잉 대응해 온 것으로 확인돼 검찰 공안기능의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담겨져 있다.
 
또 IMF 사태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이란 명분 아래 기획예산위, 노동부 등 각 기관이 조폐공사 측의 무리한 구조조정을 사실상 방관, 결과적으로 파업 유도를 초래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검의 수사결과에 대해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축소 수사라며 반발, 논란이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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