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이 죽을 권리” vs “법 악용·윤리 역행 우려”

지난 23일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의 시행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이른바 ‘존엄사’로 불리는 ‘죽을 권리’를 환자에게 보장해주는 법이다. 내년 2월 본격 시행에 앞서 한시적(1월 15일까지)으로 진행된다.
 
이런 가운데 이 법에 대한 우려와 함께 찬반 논란이 뜨겁게 불거지고 있다. 법을 악용할 수 있다는 지적은 물론, 생명윤리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잇따른다. 반면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지 않을 권리가 주어졌다’는 찬성 의견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연명의료는 의학적 시술로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사실상 임종을 연장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내년 2월부터 심폐소생술과 혈액 투석, 항암제, 인공호흡기 착용 등 4가지의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을 결정 할 수 있다. 이 경우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으로부터 임종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
 
시범사업이 실시된 이튿날인 지난 24일 처음으로 존엄사를 선택한 환자가 나왔다. 병원계에 따르면 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 중인 한 여성 환자가 이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국가 연명의료관리기관인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에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환자는 말기에 가까운 암 환자로, 의료진은 이 환자가 향후 임종기에 들어설 때 계획서에 따라 연명의료 행위를 시행하지 않게 된다.
 
연명의료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건강할 때 기록해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시범사업 실시 이틀 만에 37명이 작성했다.
 
향후 이 의향서를 작성하는 환자는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존엄사 허용이 시대적인 요구와 추세는 맞지만, 그에 따른 윤리적 논란과 부작용을 효율적으로 없애야 한다는 과제도 동시에 안았다.
 
존엄사가 허용되면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뿐 아니라 환자의 뜻과 관계없이 치료를 중단하는 등 악용의 소지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는 가족 합의를 거쳐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가족의 일방적인 의사 결정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환자의 의식이 있을 때 연명 치료 거부 사전 의향서를 작성해 법정 의료기관에 제출해 두는 것이지만, 이 역시 가족의 강압에 의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은 우려의 대상이다.
 
의료계의 지적도 있다. 연명 치료 중단의 근거가 되는 법정 서식이 선진국에 비해 과도한 데다, 연명 의료 중단 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의료인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조항에 문제가 있다고 의료계는 지적한다.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인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 이동익 신부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칫 생명경시현상을 부추길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며 “초안에는 환자의 뜻이 명시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형태로 작성됐었다가 마지막에 누락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의 의사를 추정해 가족들이 이것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나라 문화권 안에서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윤리적 논란은 남겠지만 고통 없이 죽을 권리도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심한 병에 걸려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은 데다, 정신적 고통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것은 ‘이중고’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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