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승 전 대통령 제1부속실장 향응 접대 파문 ‘불똥’이 오히려 민정수석실로 옮겨 붙는 형국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자체조사 결과를 놓고 ‘봐주기식 수사은폐’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가장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것은 이른바 ‘왕수석’으로 지칭되던 문재인 민정수석. 1·2차 조사결과가 확연히 다르고 “수사무마 청탁은 없었다”며 “99% 확신한다”는 문수석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참여정부의 도덕성 논란까지 일고 있는 실정이다. 집권여당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차제에 민정수석실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후 모든 현안문제를 직접 챙길 정도로 그 ‘입김’이 상당했던 문수석은 집권여당에서 체제개편을 촉구할 정도로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때문에 청와대와 민주당 일각에서는 “8월말 개편때 민정수석실에 뭔가 변화가 있지 않겠냐”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차기 민정수석 후보 이름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 1·2차 조사결과 확연히 달라 ‘봐주기식 수사 은폐’ 의혹“정대철 대표 문제 등도 대응능력 미흡” 당안팎서 교체 목소리 "다른 곳은 타 기관이 감찰을 하는데 청와대만 자기(청와대)가 자기 사람을 조사하도록 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그래서 공직자 비리수사처를 두자고 하는 것 아니냐. 민정수석실 비서진이 나름대로 순수함을 갖고 있을지 모르나 통치는 순수함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민주당 함승희 의원이 최근 양길승 전실장의 향응 파문에 대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대처능력을 보고 한 말이다. 함의원 외에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번 기회에 민정수석실의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 점검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이미 몇 개월 전부터 민주당내에서 흘러 나왔다. 양전실장 사건이 계기가 돼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을 따름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대한 민주당내 불만 세력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이후 청와대와 집권여당이 ‘따로따로’가게 된 책임도 민정수석실 때문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올 정도다.

그래선지 최근 민주당 일각에서는 양전실장 파문이 민정수석실로 확산되고 있는 것을 오히려 ‘잘 된 일’로 지켜보는 분위기다. 내심 8월말 개편때 민정수석이 바뀌길 바라는 눈치가 역력하다. 민주당 사정에 밝은 한 핵심당직자는 “굿모닝시티 정대철 대표 사건만 봐도 그렇다. 민정수석실이 과연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집권여당 대표가 저 지경에까지 처하도록 방치하다니…. 국민의 정부때 민정수석실의 역할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 같다”며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문수석이 민주당에 대해 상당한 경계의식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문수석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민주당 전반에 걸쳐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왕수석’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문수석에 대한 집권여당내 평가는 듣기 민망할 정도로 냉소적이다.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가 20%대로 떨어진 것 등에 대한 책임까지도 문수석으로 모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이미 문수석은 여러 차례 곤혹스런 처지에 빠졌다. 양실장 사건 이전에는 노대통령 후원회장인 ‘이기명씨 용인 땅’사건 때 강금원 부산 창신섬유 회장이 언론을 통해 문수석의 사퇴를 직접 촉구하기도 했다.당시 강씨는 나라종금 사건 수사과정에서 구속직전 상황까지 갔던 안희정씨 문제와 관련, 노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문 수석이 안희정씨에 대한 검찰 수사를 잘못 처리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수석은 청와대내에서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깐깐하기로 평판이 나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문수석의 업무스타일에 대해 “철두철미하고 매우 꼼꼼한 편이다. 하지만 융통성이 좀 부족해서 타협이 어려운 상대”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초기부터 문수석은 모든 주요현안 문제해결에 있어 그 ‘중심’에 섰다. 화물연대 파업,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논란, 조흥은행 매각문제 등 굵직한 사회 갈등에 ‘본의 아니게’ 끼여들면서 여기저기서 노골적인 비판을 받았던 것도 사실. 민주당 소속의 한 초선의원은 “국민의 정부 박지원 실장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어느 날은 뉴스를 보다가 ‘또 문재인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고 말했다. 문수석의 업무스타일에 대한 청와대 안팎 평가는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평가는 ‘일단(一短)’쪽으로 기울고 있는 분위기다.

양실장 파문 이전 노대통령 형 노건평씨 부동산 논란때나 청와대 비서진 헬기사찰 파문때에도 민정수석실의 초기대응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제기됐다. 노대통령 재산논란 때에는 “문제가 없는데 무슨 해명이냐”며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았다. 청와대와 무관한 일이라며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가 의혹이 커질대로 커진 상황에서 해명에 나서는 등 늑장대응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청와대 비서진의 새만금 헬기시찰 파문 때도 처음에는 비서실장의 구두 및 서면 경고조치만 취했다가 언론보도로 일이 커지자 뒤늦게 비서관급 3명의 사표를 수리하기에 이르렀다. 양실장 향응 파문 사건도 이와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초 사건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별일 아니다”며 양 실장에 대해 구두 경고 조치만 내리는 등 소극적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사태가 더욱 확산됐고, 뒤늦게 밀리고 밀려서 사표를 수리하게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왜 처음부터 진상을 정확히 파악해 일벌백계로 다스리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1, 2차 조사 결과가 판이하게 다르게 나온 데 대해 “최초 양 전실장이 축소해서 말하는 바람에…”라고 한 문수석의 해명이 군색하다는 지적까지 일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민정수석실은 초동수사 부실에 이어 재조사 결과마저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신뢰도에 타격을 입게 됐다. 때문에 양실장 파문 이후 민주당과 청와대 안팎에서 ‘민정수석 교체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다음 민정수석 내정자가 누구라더라”는 말까지 들려오고 있다. 실제로 L모 검사장이 차기 민정수석 내정자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대통령의 문수석에 대한 신임이 워낙 두터운 까닭에 교체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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