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과 전문의, 병원 50%‧의원 90% 없어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치과에서 충치 치료를 받던 30개월 여아가 수면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숨지는 등 마취사고 안전 불감증이 심각하다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치과에서 마취 받다 3세 여아 숨져···의식 불명 사례도
지식‧경험 필요하지만 현행법상 비전문가 마취 불법 아냐


최근 한 어린이전문치과에서 30개월 여자아이가 수면마취 후 갑자기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충남 천안시의 한 어린이치과에서 충치 치료를 받던 A(3)양이 갑자기 맥박이 빨라지고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는 증세를 보였다. 병원 측은 인근 다른 병원에서 마취과 의사를 불러 응급처치를 했으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119구급대를 불러 순천향대학병원으로 A양을 옮겼다. 그러나 2시간 40분 만에 A양은 숨졌다.

지난 6월에는 한 20대 남성이 대형 종합병원에서 사마귀를 빼기 위해 마취연고를 발랐다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이 남성은 온 몸에 마취연고를 바른 지 40여분 만에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성형수술을 위한 마취 과정의 부주의로 환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성형외과 원장이 법원으로부터 5억여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

마취는 수술 시 환자의 통증과 공포를 없애기 위한 방법의 하나다. 의학적으로는 환자가 고통을 느끼는 수술과정을 무의식의 가사상태로 만들어 고통을 알지 못하게 하는 시술이다.

신생아에서 90세 이상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동반질환의 특성과 관련된 생리학, 병리학, 통증관리, 호흡관리에 관한 고도의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병·의원을 방문한 수술환자들의 2명 중 1명은 마취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비전문가 마취
비일비재

 
최근 의료계에 따르면 마취사고는 대형병원보다 미용·성형 개원가를 중심으로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마취 전문의가 상주하는 기관은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로 한 해 마취 사고로 사망하는 환자가 15명에 달하고 국내 마취과 전문의는 현재 5700여 명, 마취과 전문의가 없는 병원은 50%, 의원급은 9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승희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프로포폴을 취급한 전체 1836개 의료기관 중 마취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는 병원급 의료기관은 946개(51.5%)였고 종합병원인데도 전속 전문의가 없는 곳이 4곳(1.45%)이나 됐다.

따라서 병원은 수술 시 출장마취과의사(프리랜서)에 의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마취를 해야 할 때에는 마취과 전문의를 초빙해야 하는데 의사 본인이 직접 마취를 하거나 마취 전문 간호사 등 비전문가가 마취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을 방문한 환자들은 마취 주체가 누군지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환자는 마취료를 내고도 마취하는 사람이 전문의인지, 일반의인지, 간호사인지, 의료기사인지를 확인할 길이 없는 것이다.

특히 마취를 하는 도중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미숙한 응급처치로 환자를 위독한 상황이나 사망까지 이르게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실제 수술 횟수가 적은 개인 병원인 경우 하루 1, 2번 마취를 위해 마취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것이 병원 경영의 손실로 작용해 마치과 전문의를 초빙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벼운 미용 수술의 경우 수면마취(부분마취)를 하면 위험성이 덜하다고 생각하고 쉽게 시술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황규삼 대한마취통증의학회 홍보이사는 “성형외과 등에서 수면마취를 간단하게 생각하고 수술을 하는데 사고 위험성을 갖고 있다”며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수면과 마취 경계는 모호하다. 수면이 깊으면 마취가 되고 마취가 되면 숨을 안 쉰다. 아무리 외과의사라도 수면과 마취의 경계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고도의 훈련을 받지 않으면 사고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마취과 전문의
초빙 요청해야

 
현행 의료법상 비마취과 전문의의 마취시술은 불법은 아니다. 의사 면허를 가진 의사라면 누구나 마취를 할 수 있다. 따라서 개원가에서는 의사가 직접 부분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고 고도의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의사들이 응급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환자들을 혼수상태에 빠지게 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마취 의료사고가 발생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마취과 전문의를 초빙하면 수가를 인정해 주고 있다. 출장마취비용은 보통 2시간에 30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개원가들은 병원 경영과 재정상태를 고려해 마취과 전문의를 초빙하지 않고 직접 마취에 나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황 이사는 “마취는 큰 마취 작은 마취가 없다. 대수술, 소수술은 있지만 마취는 똑같다. 병원의 50%가 전문의가 없는데 간단한 수면마취라고 해도 사고 위험성을 갖고 있다”면서 “보건당국에서 마취과 전문의 초빙료를 신청하면 주고 있는데 제도를 잘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환자들은 수술이나 치료를 받을 병원을 찾는 경우 안전한 마취를 시행하는 병원인지 알아보고 진료를 받기 전에 마취과 전문의가 상주하고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수술 시 발생할 수 있는 응급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안전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또 마취 사고를 피하기 위해서는 환자 스스로 수술 전 금연, 금주와 수술 당일에는 화장과 매니큐어 등을 안 하는 등 마취 전 주의사항을 숙지해야 한다.

황 이사는 “의료기관에 방문했을 때 환자 본인이나 보호자가 먼저 의사에게 마취과 전문의가 있는지 없는지 질문을 하고 전문의가 없으면 초빙해서 수술을 해주는 지를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한다”며 “마취과 전문의가 없으면 초빙해 달라고 꼭 요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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