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대통령 암살 수사 관련 비밀문서 공개 막후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JKF·재임 1961년 1월 20일~1963년 11월 22일)의 암살에 관한 기록이 오랜 세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비공개로 보관돼 오다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 밤 공개됐다. 하지만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의 호소에 굴복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기록 가운데 수백 건의 공개를 일시 보류시켰다. 현 시점에서 모든 기록을 공개하도록 그가 허용하면 국가 안보에 “잠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위해”가 있을 수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나로서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메모에서 말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비밀이 해제되도록 한 법률에 따라 문서 2800건이 공개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보류시킨 문서들은 앞으로 6개월간 검토된다. 
공개가 승인된 문서들은 케네디 암살이 있었던 1963년 11월 22일 이후 연방수사관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 전 세계를 미친 듯이 훑고 다녔던 기록을 담고 있다. 수사관들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더라도 정보, 소문, 단서를 끝까지 추적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들에는 ‘비밀’이라는 도장이 찍힌 전문(電文), 메모, 보고서 등이 포함됐다. 당시는 쿠바인들과 공산주의자들을 의식해 웬만큼 보안이 요구되는 문서에는 이렇듯 ‘비밀’ 도장을 찍었다. 그것들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비밀공작과 같은 케네디 정부의 다양한 활동을 폭넓게 보여준다. 역사가들에게 이번 문서 공개는 오래 끌어온 질문들에 답을 하고, 일부 근거 없는 음모 이론들을 잠재우며, 다른 이론들에 생명을 불어넣을 좋은 기회다. 25년 전 날짜가 정해진 이번 공개를 위해 여러 달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결정은 정보기관들과의 최종 막판 토론 과정에서 내려졌다. 대통령이 정보기관들과 논쟁하다 정보기관들에 문서의 추가 검토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논쟁을 연장한 모양새가 됐다.
이 같은 일부 문서의 공개 보류는 정보기관들 사이에서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을, 그리고 트럼프가 모든 기록을 공개했어야 했다는 불평을 촉발했다. 암살에 관한 이론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고 한때 트럼프의 고문이었던 로저 스톤은 트럼프에게 정부 기관들이 지금도 보류하고 싶어 하는 문서가 있다면 그것을 트럼프가 직접 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스톤은 성명에서 정부기관들이 “범죄가 되는 반항 행위에 발을 담그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광범한 편집이 가해진 문서들을 대상으로 트럼프가 최소한 “불시 점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공개 문서들에 대해 트럼프는 연방기관들에 “단지 극도로 드문 경우들에 있어서만 6개월 검토 기간 후 JFK 파일들이 계속 보안에 붙일것을 명심시킬 것이라고 관리들이 말한 것”으로 미국 언론은 보도했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의외의 새 사실들을 찾아 엄청나게 많은 세부사항들과 숱한 엉성한 실마리들을 샅샅이 검토하게 된다. JFK 암살범으로 지목된 리 하비 오스왈드는 사건 발생 이틀 뒤인 11월 24일 체포된 후 다른 교도소로 호송되던 중 나이트클럽 주인인 잭 루비에게 암살되었다. 이후 잭 루비도 교도소에서 사망하여 오스월드가 왜 JFK를 죽였는지, 그 뒤에 배후가 있는지 불분명하다. 오스왈드가 죽은 뒤 당시 FBI 국장 에드가 후버는 이번에 비밀에서 풀린 파일에서 좌절감을 토로하고 있다. 후버의 발언을 담은 해당 파일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가 죽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오스왈드 사건에 어떤 진척도 없다” 하지만 오스왈드가 죽은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오스왈드를 되돌아보면서 후버는 단독 암살범보다 더 광범한 음모에 관한 이론들이 형성될 것임을 이미 직감했다.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은, 그리고 (법무차관) 카첸바흐 씨도 마찬가지이지만, 오스왈드가 진짜 암살범이라는 것을 우리가 대중에게 납득시킬 수 있도록 뭔가를 발표하는 것이다”라고 후버는 말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지난밤 우리는 어떤 남자가 전화를 걸어와 차분한 음성으로 그가 오스왈드를 죽이기 위해 조직된 위원회의 위원이라고 말하더라는 전화를 우리의 댈러스 사무소로부터 받았다” 후버는 그 경고를 댈러스 경찰에 전달했으며 오스왈드를 충분히 보호하겠다는 경찰의 다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오스왈드는 그 다음 날 잭 루비의 총을 맞고 죽었다. 
1975년 작성된 한 문서는 케네디 대통령 시절 CIA 차장이었으며 뒤에 CIA 국장이 된 리처드 헬름즈가 CIA의 국내 문제에 대한 월권행위를 조사하고 있었던 록펠러위원회에서 한 증언의 일부를 담고 있다. 위원회 소속 법률가들은 어떤 외국 지도자들이 CIA에 의한 또는 CIA를 위한 암살의 표적일 수 있었는지에 관한 정보를 찾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한 법률가는 헬름즈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떤 점에서는 리 하비 오스왈드가 CIA 요원이거나 요원임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연관된 어떤 정보라도 있는가?” 여기서 그 문서가 끝났으며 당연히 답변은 수록돼 있지 않다.
400쪽이 넘는 한 문서는 케네디와 그의 후임자인 린든 B. 존슨(JFK의 부통령이었으며 제37대 대통령)에 대한 잠재적인 위험인물들을 감시한 기록이다. 관리들은 위험인물 한 사람을 이렇게 묘사했다. “감시 대상자는 1961년 JFK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 게릴라 전술과 파괴활동 훈련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 의해 매우 위험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무장했으며 위험한 것으로 간주된다” 한 문서는 존슨 대통령에게 1963년 12월 보낸 편지에서 “당신은 운이 다했다”라고 말한 어떤 사람을 묘사한다. 그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964년 1월 12일 (당사자를) 면담했다. 앞에서 언급한 편지는 (조사해 보니) 농담이었다. 위험하지 않다. 5학년 학생이었다.” 이번에 공개 문서들에 어떤 세부사항이 담겨 있든 상관없이 그 문서들이 지금도 일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의문에 명확한 답을 줄 것 같지는 않다. 그 의문은 “오스왈드 말고 다른 누군가가 암살에 관여했는가?”이다. 워런위원회(정식 명칭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관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1964년 오스왈드가 단독범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1979년 또 다른 의회 조사는 CIA가 연루됐다는 이론을 뒷받침할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해석들, 더 창의적인 해석들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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