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큰 압박 피했지만…“지뢰 깔아놓고 갔다”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이견이 좁혀졌으나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국내외 외교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번 국빈 방한을 이와 같이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확실히 언동을 자제했다. 양국 정상은 한·미 동맹과 대북 해법, 안보 현안에서 이견을 노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건너뛰는 일은 없다”며 국내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을 불식시켜 주기까지 했다. 청와대가 “한·미 관계가 오랜 동맹국이 아닌 그 이상의 위대한 동맹임을 재확인했다”고 자평할 정도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호의에는 대가가 따랐다. 그는 ‘동맹’을 강조하면서 문 정부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대신 그 ‘반대급부’로 실익을 챙겨갔다. 방위비 분담·한미자유무역협정(FTA)·미국 무기 도입 등 경제 문제에 대해서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해 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청구서가 남았다. ‘위대한 동맹’이라는 현란한 수사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라는 지적이다.
 
<사진공동취재단>
   - ‘동맹은 동맹이고 실익은 실익’, 안보 우산 대가로 경제적 반대급부 챙겨
- 트럼프, 反美 시위에 역주행 봉변… 전문가 “경호의 기본도 못 지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8일 국회연설 등 1박 2일의 국빈방문 일정을 마치고 중국으로 떠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우려와 달리 순조롭게 마무리됐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양국 정상은 한·미 동맹과 대북 정책에 대해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기상 악화로 무산되긴 했지만 양국 대통령은 비무장지대(DMZ) 동반 방문도 시도했다.
 
한미 血盟 재확인…
“코리아 패싱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7일 한·미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코리아 패싱’ 논란을 “한국을 건너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한 데 이어 8일 국회 연설에서도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국전쟁 이후 경제성장 등 한국에 대한 이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국에 대해 성공적인 국가, 지구상 가장 부강한 나라라고 인정했으며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2세라는 점과 한국의 작가들이 연간 4만 권의 책을 출간한다는 것, 국가가 IMF 위기에 처했을 때 전 국민이 동참해 금 모으기로 나라를 구했다는 이야기까지 언급했다. 한국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러한 이해가 한국을 신뢰하고 동맹국으로 여길 수 있도록 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과의 대북 정책 ‘엇박자’로 ‘코리아 패싱’ 논란을 자초했던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확고한 한미 동맹의 신뢰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북핵 정국에서 우리가 미국·중국·일본의 파워 게임에 밀려 있다는 ‘코리아 패싱’·‘문재인 패싱’ 논란에 직면해 왔다.
 
때문에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 정부가 확보한 최대의 성과라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북핵 위기에 직면해 있는 우리 국민으로서도 가장 중요한 약속을 확인받은 셈이다. 게다가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 완전 폐지는 당초 우리의 기대를 넘어서는 결과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국회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역사까지 언급하며 한국 국민의 정서적 부분을 터치했다”고 말했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도 “미국의 안보 공약을 받아냈다”고 해석했다.
 
청와대 역시 8일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포괄적 동맹을 뛰어넘어 위대한 동맹임을 재확인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에서 “(이번 회담에서)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순환배치를 비롯해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 해제, 최첨단 군사 자산 획득 등에 합의하면서 한·미가 포괄적 동맹을 뛰어넘어 위대한 동맹임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청구서’…
무기·방위비·FTA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호의’는 거기까지였다. 예의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식’으로 그 대가를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미국 무기 도입과 방위비 분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수정협상 등 경제문제에 대해서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무기 구입을 크게 늘려 무역적자가 감소될 것이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한·미 FTA는 현재 협정이 성공적이지 못했고, 미국에 좋은 협상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경제 문제 등 자국민의 ‘실익’을 위해서라면 그동안과 차원이 다른 압박을 가할 것을 예고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청구서인 ‘무기 구매’에 지불할 비용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주장하는 대 한국 무역적자는 277억 달러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기 구매로 무역적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그만큼 상당량의 비용이 무기 구매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미국 측이 대가로 요구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및 재협상과 관련해서도 문 대통령이 협정의 호혜성을 재차 강조하며 설득했으나 먹히지 않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것”이라는 ‘트럼프식’ 협상 전략에 말릴 경우 자칫 ‘퍼주기’만 하고 얻는 것은 없다는 국민의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나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의 경우도 여전히 숙제다. 큰 틀에선 우리 측이 미국으로부터 상당량의 전략무기를 구매 혹은 재배치하는 선에서 의견 접근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만 실무 협상을 통해 우리 측이 풀어야 할 과제임은 틀림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일 한·미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 동맹은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보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발언한 데 주목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은 ‘아시아·태평양’을 대체하는 용어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8월 처음 제시했다. 미국과 일본, 호주가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를 끌어들인다는 함의가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일 군사동맹을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미 동맹이 인도·태평양의 안보를 위해 중요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이 결국 군사 협력 강화의 길로 가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과의 군사동맹에 확실하게 선을 그은 상태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했을 때 열린 한·미·일 정상 업무 오찬 때 아베 총리의 면전에서 “일본은 우리의 동맹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동맹을 넘어 일본이 요구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는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미국·중국과의 ‘균형 외교’ 정책에 반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자 전문가들은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가 중국에 한국의 가치를 높이는 ‘지렛대 효과’가 될 수도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중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한·미·일 안보 협력과 한중 관계 개선이 ‘제로섬 게임’이란 사고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미·일 협력에 제일 약한 고리가 한국이라는 것을 중국은 잘 알고 있다”며 “우리 역시 정책적 모호성이 필요할 때는 우리 카드를 3No처럼 보여줘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물병·쓰레기 쏟아지는데,
집회 자유 위해 경호 뒷전

 
한편 이번 트럼프 대통령 방한에서 우리 정부의 국빈 경호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7일 밤 트럼프 대통령이 청와대 만찬 후 숙소로 돌아가던 중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있던 반미 시위대가 던진 쓰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차량은 반대 차선으로 역주행해야만 했다.
 
최고 경계 수위인 ‘갑호 비상’이 떨어진 경찰이 시위대의 쓰레기 투척을 막기 위해 꺼내 든 것은 불과 높이 2.5m 폭 10m의 그물망이 전부였다. 시위대는 그 그물 위로 가볍게 전단 뭉치 등을 던졌다.
 
시위 참가자에 대한 검문검색도 없었다. 서울시는 반미 집회로 변질될 수 있는 성격의 행사를 광화문 광장에 허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장은 “시위대가 사제 폭탄이나 화염병을 던졌으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며 “트럼프 대통령 동선 주변에 반미 시위를 허용한 것부터 문제”라고 지적했다.
 
행사 허가를 내준 서울시 관계자는 “반미 시위가 아닌 민주항쟁 행사였다”며 “민주항쟁 행사는 ‘6월 민주 항쟁 30년 사업 추진위원회’가 올해 초 신청을 해 허가를 내줬던 것이며, 그땐 트럼프 대통령 방한이 결정되기 전이었다”고 해명했다.
 
물론 트럼프 방한 일정이 확정된 후, 서울시는 이 행사를 취소할 수 있었지만 이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위대가 합류해 반미 활동을 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행사 신청서에는 촛불 시위 등 민주주의 관련 영상 등을 튼다고만 기재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반미 시위대가 ‘민주항쟁 행사’ 참석을 공언했던 만큼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더욱이 이날 반미 집회를 주도한 ‘No 트럼프 공동행동’ 중에는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조국통일범민족엽합’ 등 국가보안법에 따라 이적단체 판정을 받은 단체가 약 10곳이다. 이번 경찰의 시위 대응이 ‘가능한 모든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호의 기본 원칙에 어긋났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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