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80년대 초 중국 베이징에 간 적이 있었다. 시가지 한 식당에 들어가 주문한 음식에 어째 밥이 안 보였다. 식당 종업원을 불러 밥을 달라고 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밥이 나오지 않아 다시 종업원을 불러 독촉했지만, 종업원은 식당 문 옆에 서서 다른 종업원과 수다만 떨 뿐 밥을 갖다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식당 주인을 불러 항의하자 그때서야 밥이 나오면서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종업원과 주인은 그저 시간만 때우면 됐고 열심히 일하든 안 하든 그들이 손에 거머쥐는 돈 부피는 같기 때문이었다. 그게 불과 40년 전 공산주의 중국의 모습이었다.
그랬던 중국이 ‘흑묘백묘론’을 기치로 자본주의를 도입한 등소평의 개방정책 덕에 지금은 미국을 위협하는 존재로까지 발전했다. 
지난 7일은 러시아 레닌이 이끄는 볼세비키가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킨 지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서구 자본주의의 모순을 타파한다며 동구 지역을 통타한 공산주의는 구소련의 붕괴와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실패로 끝나고 공산주의 신봉주의자였던 조지 오웰은 소설 ‘동물농장’을 통해 공산주의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기까지 했다. 
공산주의의 실패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터다. 공산주의자들은 사유재산에 대한 욕구를 지닌 인간의 태생적 본성을 망각한 채 막연한 이상주의를 동경했다. 모두가 평등한 이상주의를 꿈꾸다 오히려 자본주의보다 더한 부패상을 낳으면서 꿈은 이루어보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인류 역사의 발전사를 보더라도 공산주의는 환영(幻影)에 불과했다. 공산주의가 통했던 시기는 석기시대였다. 모든 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는, 모든 것이 공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동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사유재산의 개념과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것이 발전해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다시 말해 인류는 애초부터 공산주의와는 맞지 않았다. 공산주의자들이 아무리 이를 부정해도 공산주의의 실패는 필연적이었다.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교롭게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날 한국을 방문했다. 우리나라는 미국 등 서구사회가 지향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였기에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변화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럼에도 시장경제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반대하는 시위가 서울 도심에서 격렬하게 펼쳐졌다. 그들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맹비난했다. 자못 의기양양하기 까지해서 마치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핵 공갈을 해대는 북한을 대변하는 듯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시위대들은 ‘북한을 위협한 죄’를 물어 트럼프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겠다는 발상을 한 것 같이 보였다.
정권이 바뀌고 난 후 공산주의의 부활을 책동하는 일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부인하고 싶은 현상이다. 정부는 분배를 최우선시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마구 쏟아내고 있을 뿐 아니라 집권 여당 대표는 토지를 국유화해야 한다고까지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폐기된 공산주의 사화주의를 하자는 것인지, 볼셰비키 혁명 100주년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들이 도무지 염려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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