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n 여행 이야기] 불현듯 가을이 보고플 때, 하루 간의 영주 여행
[Go-On 여행 이야기] 불현듯 가을이 보고플 때, 하루 간의 영주 여행
  •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 입력 2017-11-13 11:18
  • 승인 2017.11.13 11:18
  • 호수 1227
  • 6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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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하루, 오늘을 알리는 달력의 숫자가 또 다른 계절의 문턱을 넘고 있었다. 가을이 시작된 풍경이 보고 싶어져 홀연히 찾아간 영주. 그리고 아직은 이르던, 붉게 영근 가을이 못내 그리워졌던 그날.
 
       경상북도 영주, 왠지 1박은 반드시 해야 할 것 같지만 서울에서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하루쯤 부지런을 떤다면 당일치기 여행도 충분히 괜찮은 곳. 가을이면 영주의 곳곳은 저마다 가을 옷을 차려 입은 풍경으로 그득하게 빛을 낸다.

가을의 색 빨강이 사과밭에 주렁주렁 매달리고 오래된 산사로 오르는 길은 단풍으로 꽃터널을 이룬다. 외딴 섬 무섬마을에서는 한들한들 코스모스가 가을향기를 피워내고, 소수서원과 선비촌에는 푸른 하늘 아래 옛 마을의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드디어 수확을 시작한 풍기의 인삼이 건강한 가을나들이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가을 산사의 정석, 부석사

‘영주’의 이름을 가장 먼저 알린 것은 부석사였다. 1500년 가까운 세월이 소백산 자락에 고스란히 묻어있는 산사를 처음 찾아 오르던 오래전 그날, 사과밭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의 풍경 때문이었을까. 다시 찾은 영주에서 부석사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햇빛에 가장 가까운 잎새 몇 장만이 이제 겨우 살짝 붉은빛을 머금은 단풍의 아쉬움은 당간지주와 천왕문을 지나 층층이 배치된 부석사의 전경이 드러나면서 휙 하니 사라졌다. 빛바랜 나무 건물이 전하는 켜켜이 쌓인 세월의 이야기는 가을을 만나 왠지 더욱 깊고 풍요롭게 들려왔고, 선선한 아침 바람이 한가한 경내에 상쾌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다.
     석등 뒤로 모습을 드러낸 무량수전은 지 난 몇 년간의 무관심에도 변함없이 고색창연한, 무량수전만의 가을 빛깔을 그대로 간직한 채 여행자를 맞이했다. 간결과 절제라는 두 단어, 그리고 크고 작은 나무 하나하나에 입혀진 묵은 때가 하나가 돼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과 함께. 뒤를 돌아보니 또 다른 가을이 펼쳐졌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부석사 경내의 기와지붕들과 사이사이 얼굴을 내민 분홍꽃잎들,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산맥의 장엄한 물결이 또 다른 영주를 기다리게 했다. 하늘색 설렘이 시작됐다.
 
     알고 보면 더 좋은 부석사의 보물

▲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국보 제17호.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팔각 석등이다. 바닥돌의 옆면에는 꽃모양의 안상이, 아래받침돌에는 연꽃잎과 귀꽃 봉오리 장식, 윗받침돌에는 연꽃잎 장식, 불을 밝히는 화창 사이에는 세련된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 부석사 무량수전
국보 제18호로 지정된 부석사의 본당으로 극락정토의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다.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간결하지만 규모나 완성도 면에서 그 깊이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 부석사 조사당과 선비화
부석사 조사당은 국보 제19호로 지정돼 있으며,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처음 세우고 수도하던 자리로 여겨진다. 전각 앞에 있는 선비화는 의상대사가 중생을 위하여 짚고 다니던 지팡이로, 처마 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고 잎이 피었는데 1300년 이상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서도 지금까지 푸르게 자란다고 전한다.

▲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국보 제45호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진흙으로 만든 소조불상으로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여느 사찰과는 달리 법당 중앙의 정면이 아닌 무량수전의 서쪽 불단 위에 모셔져 있다. 여러 기록상, 아미타불로 추정된다.

▲ 부석사 삼층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로 부석사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옛 절터에 남아 있던 두 개의 탑이다. 1966년 지금의 부석사로 옮겨왔으며 높이는 동탑이 360cm, 서탑이 377cm로 두 탑의 양식이 같다.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고 정제된 모습으로 통일신라시대 후기 양식을 잘 보여준다.

▲ 부석
바위가 공중에 떠 있다는 의미로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위 아래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줄을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든다’고 기록돼 있다. 부석에는 의상대사와 대사를 연모했던 선묘라는 여인 사이의 전설이 전해진다. 의상대사를 위해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된 선묘신룡의 도움으로 부석사를 창건할 수 있었고 선묘신룡은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 무량수전 뜰아래 묻혔다고 전한다.

선비의 가을 풍취, 소수서원과 선비촌

흔히들 영주를 ‘선비의 고장’이라고 한다. 옆 동네 안동의 명성에 가려진 탓에 조금은 빛이 바랜 것도 같지만 영주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있고 선조들의 전통 생활공간을 재현해놓은 선비촌도 있다.

부석사를 빠져나와 약 30분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에서 가장 먼저 여행자에게 손을 흔든 것은 선비촌 입구를 지키고 선 ‘영주 선비상’이었다.

듬직한 풍채와 청빈해 보이는 얼굴이 영주 선비의 첫 인상.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함께 관람할 수 있는 통합입장권을 끊고 먼저 소수서원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적송나무 수백 그루가 서원 주변을 뒤덮고 있다는 학자수림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내부 보수공사 중.

안타까운 마음을 위로해준 것은 서원을 감싸고 자연스레 풍류를 떠오르게 하는 풍경들이었다. 고풍스러운 서원의 건물들 사이로 물이 흐르고 오솔길이 이어지며 어떤 영감이 머리를 스칠 때쯤, 취한대에 닿았다.
   퇴계 이황 선생이 푸른 산기운과 죽계의 시원한 물빛에 취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는 정자. 그곳에 앉아있어도, 죽계를 건너 맞은편에서 취한대를 바라봐도 가슴은 가을 풍취에 흠뻑 젖어들 뿐이다.
   서원을 나와 선비촌으로 들어서니 또 다른 선비의 세상이 나타났다. 비록 이곳에서 과거의 모습을 지켜가며 살아가는 이들은 없지만, 조선시대 ‘노블맨(Nobleman)’들이 품었던 진지한 바람들이 남아 선비들의 희망 가득한 이야기들을 전해왔다. 조금은 멀찍이서 바라봐야 제대로 보일 것 같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이야기들.

<info> 소수박물관
오래 전부터 한국인들의 정신세계에 깊이 새겨진 유교를 주제로 한 한국 유일의 유교 종합박물관이다. 소수서원과 유교를 주제로 영주의 귀중한 유물과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 및 전시하여 지역 문화의 활성화와 생동감 있는 역사 체험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info> 선비촌의 공간 구성
영주 선비의 다양한 모습들을 주제별로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선비로서 지켜야 할 덕목들과 나아갈 길들을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다.

▲ 우도불우빈(憂道不憂貧)
도를 닦지 못한 것을 근심할 일이지 가난을 근심하지는 말라는 말로 가난함 속에서도 청빈한 삶을 중히 여기며 생활을 이어나갔던 선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 수신제가(修身齊家)
자신을 수양하고 집을 올바르게 가꾼다는 뜻으로 선비들은 수신을 위해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공부하고 바르게 실천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수신제가의 공간에서 자기수양을 위해 노력했던 영주 선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 거무구안(居無求安)
사는 데 있어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 선비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풍류를 즐기는 것을 인격수양의 길로 생각했다. 이 공간에서는 명상과 풍류를 즐기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지 않고 현실의 잘잘못을 비판한 영주 선비의 굳은 기개를 엿볼 수 있다.

▲ 입신양명(立身揚名)
사회에 진출하여 이름을 드높인다는 뜻으로 옛 선비들에게 과거시험을 통한 관료의 길은 수신제가 후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얻는 일이었다. 이곳에서는 중앙관직에 진출해 다양한 활동을 했던 영주 선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쓸쓸한 수묵화에 더해진 가을 채색,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물 위의 섬’. 무섬마을을 이야기하는 수식어들은 하나같이 쓸쓸하다. 그래서 가을이면 더 생각날 것 같은 무섬마을은 특유의 분위기를 담은 사진 한 장만으로도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잡아끄는 이기적인 매력을 지녔다.

육지와 무섬마을 사이는 마을을 동그랗게 돌아 흐르는 내성천이 가로막았다. 마을과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두 개의 다리. 먼저 차량이 지나다니는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마을에 닿았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겨 한참을 앉아서 지켜보던 것은 나무로 만든 외나무다리. 마치 연꽃이 물에 떠 있는 모습의 무섬마을은 풍수적으로 뛰어나지만, 오랜 시간 오로지 외나무다리 하나에만 의존하여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라졌던 외나무다리가 복원된 후, 다시 세상에 마을을 알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 때문인지 그토록 고귀해 보일 수가 없다. ‘외나무다리에서의 한판 승부’는 온데간데없고 화목한 가족과 사랑하는 연인과 친구들의 미소만이 환하게 다리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빨강 가을색이 짙게 칠해져 있었다.
  <사진제공=여행매거진 G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