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n 여행 이야기] 가을, 그리스 섬에 빠지다
[Go-On 여행 이야기] 가을, 그리스 섬에 빠지다
  • 프리랜서 이희진 기자
  • 입력 2017-11-13 11:35
  • 승인 2017.11.13 11:35
  • 호수 1228
  • 6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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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시작되는 길목에 그리스를 만났다. ‘가을과 그리스’, 낭만과 선망을 가득 담은 이 두 단어의 조합만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이유가 충분하다. 천천히 그리고 느긋하게 걸으며 빠른 일상의 태엽을 풀어 버리게 만드는 그리스, 그곳에서 만난 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대부분 신화와 역사의 주인공들을 떠올리지만 그리스에는 숨겨둔 보석들이 놀랄 만큼 가득하다. 무엇보다 가장 빛나는 보석은 바로 그리스의 섬들. 무려 6000개에 가까운 섬이 있을 만큼 유럽에서도 많은 섬을 가진 나라 중 하나인데 우리의 그리스 섬에 대한 상상은 안타깝게도 산토리니에 멈춰 있을 뿐이다.

산토리니는 분명 아름답다. 어쩌면 신이 인간 다음으로 빚어 놓은 최고의 걸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환상적인 섬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섬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중해를 가득 채운 수많은 섬 하나하나가 그들만의 매력으로 그리스를 아름답게 빛낸다. 우리 인생의 쉼표가 필요할 때, 잠시 삶의 속도를 늦춰야 할 때 찾을  만한 안식처. 이제 떠나 가보자, 가을의 그리스 섬들과 사랑에 빠져 버리게.
 
      아르고사로니코 제도:
원데이 크루즈로 떠나는 그리스 섬 여행


그리스 지도를 펼쳐 보면 지중해 연안에 점점이 뿌려진 섬들이 가득하다. 그 많은 섬 가운데 어느 곳을 가야 할까. 가장 맛난 음식으로 가득한 레스토랑에서 최고의 메뉴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무엇보다 그리스 섬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무작정 배편을 잡아타고 떠나기에도 두려움이 앞선다.

한정된 휴가 일정으로 여러 그리스 섬을 돌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편하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테네 피레우스항에서 출발하는 원 데이 크루즈 여행이다. 하루 만에 아테네에서 가까운 아르고사로니코 제도의 에기나, 포로스, 이드라 섬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드라, 그리스의 파라다이스

새벽 일찍, 크루즈 여객선이 피레우스 항구에서 커다란 뱃고동을 울리며 출항을 시작한다. 크루즈는 새하얀 물살을 가로지르며 떠오르는 태양을 따라 서서히 움직인다. 첫 그리스 섬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크루즈에 온몸을 맡기고 푸르게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다본다.
     2층 맨 앞 뱃머리에 항해사처럼 자리 잡고 앉아 에게해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셔 본다. 짜디짠 바닷물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입술에 닿아도, 새벽 공기를 담은 차디찬 바람이 얼굴을 스쳐도 이 모든 것이 낯선 여행자에게는 그리스가 선물하는 환영의 표현 같다.

약 2시간의 항해 끝에 처음 만난 그리스 섬, 이드라에 도착했다. 이드라는 아테네 항구에서 남쪽으로 70km 떨어진 지점에 자리 잡은 길고 가는 예쁜 섬으로 세계의 수퍼리치들이 즐겨 찾는 그리스 섬 중 하나다.

그리스가 영화에 첫 등장했던 때가 1950년대부터인데 최초 그리스에서 제작한 영화가 이곳 이드라 섬을 배경으로 한 ‘해녀·Boy On a Dolphin, 1957’다.

그만큼 그리스 섬을 대표하는 아름다움이 가득한 매력적인 섬이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눈앞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이드라는 커다란 풍경화 속으로 나를 강렬하게 끌어당긴다.
     이드라가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섬으로 대표되는 이유는 항구를 따라 빼곡히 정박해 있는 각양각색의 요트들과 여행자를 기다리는 당나귀들, 길게 늘어선 노천카페와 상점들이 한편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여행자들로 북적이던 항구와는 달리 매우 한적하고 조용한 이드라가 기다린다. 자동차 없는 마을인 이드라는 도보나 자전거 여행이 더욱 즐거운 섬이다. 세상의 소리가 모두 꺼져 버린 듯 조용하고 아늑한 골목길을 따라 마을 곳곳을 누려본다.
     예술가의 섬이라는 별명답게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을 하며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가진 아늑한 섬이다. 바닷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 본다. 이드라의 최고 명소로 꼽고 싶은 선셋 포인트가 보인다.

그곳에 서서 끝도 알 수 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붉게 물든 석양으로 빛날 이드라를 상상해 본다. 고개를 돌려 이드라 항구를 바라본다.

절벽 끝자락에 지어진 카페에서는 에게해를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이, 해변 바위 절벽에서는 ‘첨벙첨벙’ 뜨거운 햇살 아래 다이빙을 즐기는 여행자들로 분주하다. 이드라의 가을은 아직 여름을 붙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포로스, 단풍색 지붕이 아름다운 섬마을

뱃머리를 돌려 다시 항해가 시작됐다. 약 1시간 남짓 흘러갔을까, 저 멀리 시계탑이 보인다. 크루즈 여행으로 떠나는 3개의 섬 중에 가장 작지만 또 가장 그리스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섬, 포로스다.
    섬의 총 인구수가 5000명을 넘지 않는다고 하니, 섬마을의 규모를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포로스 타운 입구를 지나면 여행객들을 자석에 이끌 듯 끌어당기는 곳이 있다.

포로스의 랜드마크인 시계탑 전망대다. 경사로를 따라 15분가량 천천히 오르자 정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 국기를 당당히 꽂아둔 새하얀 탑.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포로스 파노라마는 ‘지금 백만 가지가 넘는 매력을 가진 그리스 섬에 와 있다’는 사실을 한순간에 일깨워준다.
    포로스 맞은편에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갈라타스 마을이 매우 가깝게 보인다. 포로스와 이 마을을 오고 가는 수상택시는 부지런히 승객들을 실어 나르는데, 마치 그림 속 귀여운 장난감들이 파란 바다에 떠 있는 것 같다.

섬을 가득 메운 한결같은 오렌지색 지붕은 포로스를 단풍으로 물들인 듯 눈부시다. 태양이 비추는 빛이 강할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포로스의 섬 풍경이 아름답다.
    여유롭게 자리한 포구의 단출한 집들, 크고 작은 배들이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포로스를 소개한다. 시계탑을 내려오며 포로스 마을 골목길을 천천히 거닐어 본다. 골목 사이사이로 보이는 언덕의 마을 풍경은 파란 하늘 배경에 주황색 레고 블록을 끼워 넣은 듯 더욱 아기자기하다.
    집집마다 꽃들로 예쁘게 단장된 골목길을 지날 때면 평온하고 정겨운 사람의 향기가 묻어 나온다. 마을 계단을 오르내리며 들리는 나지막한 발걸음 소리, 한낮의 빛과 그늘, 바다 내음과 풀내, 순간의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느끼며 가슴에 포로스를 생생하게 담아둔다.

에기나, 수천 년 그리스의 흔적

크루즈 여행의 마지막 섬이자 가장 규모가 큰 섬, 에기나에 도착했다. 아테네에서 약 40분 거리지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떠나온 듯 신비로운 곳이다.
   에기나는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고대 도시국가 중 하나로 그리스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지이다. 그래서 일까. 에기나는 다른 그리스 섬처럼 화려하거나 아기자기한 곳이라기보다는 섬 전체가 하나의 오래된 보물 유적지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때는 지리적 이점으로 아테네의 맞수이자 번성했던 무역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그 영광을 뒤로하고 피스타치오의 주요 생산지로 더 잘 알려져 있을 만큼 그저 오래되고 소박한 섬이 돼 있다.
   항구를 따라 마을로 걸어가다 보면 낡은 건축물이 눈길을 끈다. 오랜 전통과 역사라는 옷을 투박하게 걸쳐 입은 건물들은 고대 도시국가로서 번성했을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그때의 번영과 화려함이 지금은 빛바랜 세월의 흔적으로 그늘져 보이지만 여행자인 나에게는 상상 속에만 있던 고대 도시국가의 옛 모습이 생생하게 발현된 소중한 섬이다. 바다내음 물씬 나는 해변을 걷다 골목으로 들어서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눈부시게 아름답다거나 화려한 맛 없이, 그저 조용하고 평온한 섬일 뿐이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 온 에기나는 바쁘게 달려온 내게 삶의 속도와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키클라데스 제도

에게해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제도로 세계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그리스 섬들이 한데 모여 있다. 그리스의 신화와 역사,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로 꼽히는 델로스 섬을 중심으로 섬들이 원형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리스 섬의 진짜 매력은 지금부터다.
 
  미코노스, 힐링의 아리아가 울리는 섬

온통 눈부신 흰빛으로 물든 순백색 집들, 이와는 대비되는 파란 하늘과 바다, 그리고 섬을 휘감아 불어대는 바닷바람과 어울리는 언덕 위 하얀 풍차들, 곳곳을 수놓은 아름다운 해변들까지, 그림이다.

마음으로 꿈꿔 왔던 상상 속 그림 한 점이 눈앞에 펼쳐진다. 낭만이 가득한 에게해의 낙원, 미코노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곳에서 3년을 머물며 ‘상실의 시대’를 집필한 이유를 섬에 도착하는 순간 알아버렸다.

미코노스는 나에게 낭만적인 지루함의 매력이 무엇인지, 진정한 여유와 힐링이 무엇인지 속삭인다.
  미코노스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휴양지이자 그리스의 발코니라 불리는 섬으로, 직접 방문해야만 알 수 있는 진한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알기라도 하듯, 미코노스는 조급하지도, 서두르지도 않고 천천히 여행자의 마음으로 다가간다.

미코노스의 항구 주변 해안가 산책으로 여정을 시작했다. 어촌마을 주민들의 건강한 웃음과 바닷새들의 날갯짓, 눈부시게 반짝이는 바다 빛까지 모두가 나를 즐겁게 한다.

구 항구를 지나 해변 끝 모퉁이를 돌아서니 미코노스를 소개하는 엽서의 주인공이 나를 반긴다. 온통 하얀색으로 물들어 에게해의 파란 바다와 함께 그리스의 상징적인 컬러의 하모니를 표현하고 있는 파라포르티아니 교회다. 독특한 그리스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이 교회는 미코노스 최초의 교회로 400개가 넘는 미코노스 교회들 중 가장 대표되는 곳이다.
  1475년부터 짓기 시작해 지금도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지만 이 교회가 주는 신비로움은 위대하다. 미코노스의 테라스라 불리는 리틀베니스는 베네치아 양식의 집들이 늘어서 있어 그렇게 불린다고 한다.

이곳은 알록달록 컬러풀한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고, 각양각색의 테라스는 작은 장난감 나라를 연상케 한다. 속이 훤히 비치는 바다와 눈부신 하늘, 그리고 이 무지개색 건축물의 조화는 미코노스의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즐길 수 있어 여행자들을 강하게 유혹한다.

리틀베니스가 미코노스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유명한 이유는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 멀리 미코노스의 상징인 풍차언덕이 있는 카토밀리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5개의 풍차가 나란히 에게해를 바라보고 서 있는 이 언덕은 미코노스가 왜 바람의 섬이라는 별명을 가졌는지를 보여준다. 힘차게 돌았을 풍차는 옛 영광을 뒤로하고 지금은 오랜 시간 멈춰버렸지만, 전 세계 수많은 여행자들을 끌어당기는 명물이 됐다.

구불구불 하얀 미로 같은 골목으로 이어진 미코노스의 메인 타운, 호라 마을은 유명한 이온음료 TV광고를 찍었던 곳이다. 광고 배경이 산토리니로 알려져 있지만, 주인공이 신나게 뛰어다녔던 곳은 바로 미코노스 골목 타운. 1.5km에 불과하지만,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골목은 길을 잃어도 좋을 만큼 다채로운 모습으로 여행자들 을 맞이한다.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분위기 있는 레스토 랑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예쁘게 지어진 그리스 전통 가옥과 아름다운 교회는 여행자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다. 상상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던 미코노스의 풍경은 일상으로 돌아온 나를 한없는 그리움에 사무치게 한다.
 
  <사진제공=여행매거진 G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