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속한 정치적 결정, 위기대처 속도 보여줘
- 대응만으론 ‘부족’ … 정치적 과제 무시 말아야

 
지난 15일 오후 2시 30분경, 사람들은 동시에 울리는 재난문자를 수신했다. 수도권 사람들 기준에서는 진동을 느끼기 직전에 문자를 받았다. 경상북도 포항시 인근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초기 대처에 미진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기상청 긴급브리핑이 오후 4시 30분경에야 이루어졌다. 한국보다 지진 등 자연재해를 더 많이 겪는 일본의 사례와 비교해 보건대, 매뉴얼을 중심으로 이보다 빨리 긴급브리핑을 간략하게 한 후 이후 대처에 관해선 추가 브리핑을 하는 것이 옳다는 지적이 있었다. 향후 한국도 이런 종류의 매뉴얼을 만들어 갈 일이다.
 
오후엔 느렸으나,
저녁엔 신속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의 신속한 대응은 저녁시간에 드러났다. 오후 8시를 약간 넘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직접 등장하여 수능을 1주일 연기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후 알려진 바에 의하면 청와대는 당초 회의에서 수능을 연기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모았지만 경상북도를 시찰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그리고 김상곤 부총리의 건의를 수용하여 수능을 연기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청와대의 당초 결정이 정치인 출신 관료들의 과단성 있는 결단으로 뒤집힌 것이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상식적인 상황이다.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전임 정부의 청와대가 비상식적으로 운영된 상황이 이런 정도의 행보조차 탁월한 것으로 느끼게 하는 맥락이 됐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행운이겠으나, 한국 사회의 입장에서는 기본에 해당하는 것을 다시 구성해 가야 하는 상황이 되겠다.
 
물론 수능 1주일 연기에 불만을 가지는 이들도 많다. 극단적으로 운이 없다면 1주일 뒤로 연기된 그 날짜에도 여진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영역이다. 조목조목 따져본다면 연기 결정은 잘한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안전의 문제가 있다. 포항 등 경상북도 지역의 고사장들이 훼손된 상황에서 수능을 강행하기 어려웠다. 이삼일의 말미라도 있다면 최선을 다해 수습해 보는 것도 대안이 됐겠지만 이 상황에선 거의 불가능했다.
 
다음으로 형평성 문제가 있다. 본진이 됐든 여진이 됐든 지진은 진원지와의 거리에 따라 영향이 다르다. 다음날 여진이 오는 가운데 수능이 진행됐다면 수능의 형평성 자체가 심각하게 붕괴됐을 것이다. 한국 사회처럼 대입에 사회 구성원 상당수가 목을 매는 사회에서 그랬다면 정말이지 감당이 안 될 결과가 왔을 것이다. 비록 상당수 수험생과 학부모가 컨디션 조절 문제로 투덜대고, 일주일 연기되어도 포항 등 경상북도 지역 학생들은 형평성이 붕괴되었다고 울상일 수 있지만, 그나마 이것이 차선책이었다.
 
‘위기 관리 대응’
이상의 것들
 

결과적으로 여섯 시간도 안 되어 내려진 전격적인 결정은 옳았다. 일단 연기 방침을 정하고, 부수효과에 대한 대처는 이후 발표한 것도 적절했다. 수능 연기가 발표되기 전까지, 대학에 종사하는 상당수 사람들은 연기가 어려운 일이라 여겼다.
 
연기할 경우 대학에서도 조정해야 할 일정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연기가 현실이 되자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일들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이 조치의 적절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체감될 것 같고, 결과적으로 정부에 대한 안정적 지지가 한동안 더 이어지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이 역시 문재인 정부의 행운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행운에 안주할 시국은 아니다. ‘적폐청산’이란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름 하에 너무 많은 의제들이 테이블에 올라와 있고, 너무 많은 권력기관들이 청산 내지는 개혁의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다. 수술을 하려면 메스가 있어야 하고, 청소를 하려 해도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사실상 정부가 도구로 사용할 모든 권력기관을 수술 및 청소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런 경우 과연 가시적인 성과가 가능할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보수 정치 세력의 바람과는 달리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사건, 2016년의 국민적 촛불 시위의 염원을 받고 탄생한 정부이므로 임기 초기에 큰 틀의 미래를 그리는 청사진을 논할 필요는 있었다.

그렇더라도 5년 단임제 정부라면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하고 로드맵을 짰어야 했는데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참여정부 당시 헤맸던 경험을 활용하여 청와대가 직접 챙겨야 할 부분은 확실히 챙긴다는 느낌은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개혁을 청와대의 힘으로 할 수는 없다.
 
개혁 성패 여부는
실무 능력
 

현 정부에 비판적이라고 모조리 개혁 반대 세력은 아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보면 현 정부 인사 중 칭찬받는 이는 수능 연기 결정을 주도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실무 경험 및 감각을 토대로 개혁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를 토대로 담당 부처 공무원의 신망을 등에 업고 일처리를 해 나간다.
 
뒤집어 말하면 다른 이들은 그런 점에서 다소 미진해 보인다는 얘기도 된다. 현장과 실무를 잘 아는 이가 개혁을 말할 경우, 이해 당사자들은 이해득실 여부와 별개로 긴장하게 된다. 지침이 명확할 경우 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압박도 커진다. 반면 우왕좌왕할 경우 이해 당사자와 관료의 비토를 이겨낼 수 없다.
 
이런 경우 개혁은 개혁 반대 세력, 기득권 세력의 반대에 의해 좌초했다고만은 볼 수 없다. 문재인 정부엔 행운이 겹치고 있다. 마침 경기도 전에 비해 나쁘지 않고, 지지율도 높다. 그러나 이런 호기에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그 뒤에 올 것은 실망의 역풍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