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은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112년이 되는 날이었다. 을사조약은 체결 당시부터 일본의 일방적인 강요에 의한 불평등조약으로 무효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꼭 60년 지난 1965년 대한민국과 일본은 한일기본조약에서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확인했다.
당연했다.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하는 것은 역사를 통해 잘한 일은 이어받고 잘못한 일은 극복해 낼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민족은 과거의 잘한 일을 이어받지 못하고 잘못한 일은 금세 망각해서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최근 한·중 양국이 전격 발표한 이른바 ‘사드 협의문’이 좋은 예다. 협의문의 핵심내용을 보면 대한민국이 한반도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고 있지 않고, 미국 MD 불참 입장에도 변함이 없으며, 한·미·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협의문’에 우리 측 입장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고 마치 우리가 가해자인 듯해 보인다는 것이다. 사드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사드 배치를 빌미로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게 엄청난 경제 보복을 가했다. 이에 대한 중국의 사과 한 마디 없이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닌 명백한 불평등 ‘협의문’이다. 일각에서 이 ‘협의문’으로 우리의 주권마저 위협받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지경이다. 
군사 장비 배치는 한 국가의 고유한 군사 주권에 속하는 것이다. 미국 MD 불참 입장과 한·미·일 안보협력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미국 MD 불참과 한·미·일 안보협력 관련 문제를 중국에 약속해줄 필요가 어디에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중국은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도 우리에게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억지를 부릴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중국이 중요하고 ‘유커’들의 한국관광이 절실하다 해도 남의 잘못을 우리의 잘못이라며 굴복하는 자세는 열 번 생각해도 틀렸다는 느낌이다. 약소국의 설움 따위로 변명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번 한·중 ‘협의문’ 도출이 외교부가 아닌 청와대 국가 안보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할 노릇이다. 외교부는 뭘 하고 있었나 싶다. 청와대의 ‘외교부 패싱’ 인가도 싶고 국방부도 이 내용을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내각은 안 보이고 단지 청와대만 보인다. 국민들은 청와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기획되고 있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사람들은 혹시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했으니 다음은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획기적인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는 것 같다.
그 같은 생각을 하는 데는 정부의 저자세 외교가 대북 협상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트럼프 미 대통령 방문 시 좌파 단체의 섬뜩한 반미 구호와 성조기까지 불태우는 장면을 만감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지켜본 국민들이다. 입만 열면 불바다를 공언하는 김정은이 아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위협’한다고 물통, 쓰레기를 던지고 야광봉을 휘두르는 시위대에 속수무책인 모습도 국민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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