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한 정권의 전직 국정원장 3명이 모두 사법 처리 대상이 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남재준·이병호·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청와대에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뇌물로 상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중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17일 결국 구속됐다. 이병호 전 원장은 구속 문턱에서 살아남았으나 검찰이 영장 재청구 방안을 검토 중인 상황이다.
 
국정원은 그간 수차례 이름과 원(부)훈을 바꾸며 변화를 꾀했지만 권력과의 유착 관계를 끊지 못한 탓에 사법 처리를 받은 역대 수장들이 수두룩하다. 역대 국정원장 33명(現 서훈 원장 제외) 중 비리 사건으로 구속돼 처벌을 받았거나 실종, 사형당한 사람이 14명(42.4%)에 달한다. 10명 중 4명꼴로 법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4년간 직을 지키며 역대 국정원장 중 가장 장수한 ‘MB맨’ 원세훈 전 원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댓글을 통한 여론공작 혐의로 지난 8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도 불법 도청 사건으로 2005년 동시에 구속됐다. 불법 도·감청 조직인 ‘미림팀’을 운영해 주요 인사 1800여 명을 불법 감청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임 전 원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햇볕정책을 총지휘하며 ‘DJ의 키신저’란 별명을 얻었지만, 결국 불법 도청 사건으로 구속됐다. 김대중 정부는 ‘안전기획부’를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안기부장인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정권 초기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해체한 일등공신이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뒤 구속 수감됐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당시 야당 후보 낙선을 위해 이른바 ‘북풍 공작’ 사건을 벌인 혐의 때문이었다. 권 전 부장은 이 사건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전두환 정권 안기부장들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 12·12 사태와 부정축재 등의 혐의로 줄줄이 법정에 섰다. 전두환 정권 실세였던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12·12 사태 가담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장 전 안기부장은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공작을 벌인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야당인 통일민주당 발족식에 수억 원을 들여 조직폭력배를 난입시킨 사실이 1993년 밝혀져 유죄 선고를 받았다. 이에 앞서 전두환 정권 첫 안기부장을 지낸 유학성 전 부장도 12·12 가담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그는 상고심 재판 도중 병으로 사망했다.
 
국정원의 모태인 ‘중앙정보부’의 4번째 수장으로 취임한 김형욱 전 중정부장은 6년3개월의 임기를 누리며 각종 시국사건을 기획했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눈 밖에 나 권력 중심에서 밀려나자 망명해 유신 정권의 비리를 폭로했다. 그는 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5년 제8대 중정부장에 오른 김재규 부장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해 이듬해 5월 사형당했다. 박정희 정권의 2인자로 불렸던 이후락 전 중정부장은 대통령의 신임을 잃고 권력에서 멀어지자 해외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귀국해 칩거 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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