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검찰 발 여의도 칼바람이 매섭다. 사정의 칼날은 여야 국회의원은 물론 재계까지 겨눈다.

정경유착의 혐의가 짙어지는 대목이다. 정경유착은 경제계와 정치권이 부정을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현상을 일컫는데 최근의 일들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20일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같은 날 최경환 의원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원유철·이우현 의원도 특정 기업에서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는다.

‘제3자 뇌물’ 관여 여부가 관건…자금 세탁도
 檢, 압수물 분석 후 관련 의원들 재소환 방침


전병헌 전 수석과 관련 검찰이 파악한 혐의 액수가 3억 원대에 달하는 만큼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전 전 수석은 지난 20일 검찰 출두 직전 기자들을 만나 “다시 한번 과거 국회의원 시절 전직 비서들의 일탈에 대해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무엇보다도 청와대에 많은 누가 된 것 같아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면서도 자신은 “그 어떤 불법에도 관여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전 전 수석의 혐의는 ▲2015년 사업 재승인을 받아야 했던 롯데홈쇼핑이 e스포츠협회에 3억 원의 후원금을 내도록 하고(제3자 뇌물수수) ▲협회 자금 1억1000만 원을 빼돌려 사적으로 사용한 것 등 크게 두 가지다.

검찰은 전직 비서관이었던 윤 씨가 후원금을 받아낸 과정에 주목하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윤 씨가 e스포츠협회 직위나 직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전 전 수석이 국회의원 시절인 2013~2014년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돈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구속된 전 전 수석의 측근 3명 중 윤 씨에게만 제3자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됐다.
롯데홈쇼핑 측 역시 후원금의 대가성을 인정한다면 ‘뇌물공여자’로 처벌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조사에 협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 수석은 롯데홈쇼핑 측이 후원금을 낸 시기가 2015년 4월 재승인 심사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이라는 점을 들어 혐의를 부인해 왔다.

다만 전 전 수석이 e스포츠협회 회장과 명예회장 등을 역임하며 사실상 단체를 지배해 왔다는 점, 지난해 롯데그룹 수사 당시 확보한 롯데홈쇼핑 측 로비 정황증거 등을 근거로 범행 개입 여부가 입증될 가능성도 있다.

하루 전인 19일에도 정경유착을 의심할 만한 일이 발생했다.
19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는 최근 자유한국당 이우현 의원이 여러 명의 건설업자로부터 수억 원대의 금품을 받은 단서를 확보해 전달 경위와 배경 등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해당 건설업자들을 소환 조사해 이 의원 측에 금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과 간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이 금품에 대가성이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앞서 한 인테리어 업자와의 금품거래 정황도 드러나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검찰은 다단계 업체 IDS홀딩스 측의 로비 자금을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전달한 혐의로 구속된 이 의원의 전 보좌관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서울 강서구 소재 인테리어 업체 대표가 이 의원과 돈거래를 한 정황을 포착해 경위를 살펴보고 있다. 

대가성? 후원금…공방

오간 돈의 대가성 여부와 명목, 사용처 등을 파악하기 위해 조만간 검찰은 이 의원을 불러 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인테리어 업체 대표에게 받은 돈에 대해 “딸 결혼식으로 7000만 원을 빌렸다가 이자까지 더해 갚은 것이 전부”라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앞서도 한 매체를 통해 검찰이 원유철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수억 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본격 수사에 들어간 사실이 알려졌다.

16일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김종오)는 전날 경기 평택시에 있는 원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과 회계 담당자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원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기업인으로부터 수억 원대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해당 자금에 대가성이 있는지 조사,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원 의원을 소환할 방침이다.

검찰은 앞서 지난 9월 경기 평택에 있는 레저·스포츠업체인 G사 사무실과 대표 한모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한 씨는 원 의원의 전 보좌관인 권모씨에게 수천만 원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권 씨가 법원 공탁금으로 쓸 목적으로 한 씨에게서 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세 건 모두 단일사건이지만 공교롭게도 국회의원과 기업인이 연결돼 있어 정경유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검찰의 수사만이 해당 사건들의 잘못을 지적하겠지만 연루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국회의원은 물론 기업들도 뒷말을 낳고 있다. 

여야, 검찰 예의 주시

한편 여의도 정가는 물론 재계는 청와대와 여야를 구분하지 않는 검찰의 움직임에 숨을 죽였다.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사의를 표명했고, 같은 날 친박계 좌장인 최 의원과 원내대표까지 지낸 중진인 원 의원까지 검찰의 수사를 받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전 수석에 대한 수사는 국정원 댓글 수사 은폐 혐의로 수사를 받던 변창훈 검사의 투신 사망 사건과 맞물리며 더욱 정치권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 등 과거 사정기관을 상대로 한 여권의 적폐청산 드라이브에 검찰이 동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권 관계자는 “전 수석과 관련해 이미 알려진 의혹을 검찰이 굳이 이 시점에 수사하는 이유가 뭐겠냐”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검찰이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 ‘정권이 바뀌니 그쪽에 붙어서 칼춤을 춘다’는 말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야권은 전 정권 인사와 소속 의원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뾰족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재계 또한 검찰의 최근 행보를 예의 주시하면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경유착 사례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고 적발됐다 하면 총수의 실형은 물론 기업이미지에도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태로 검찰의 기업 옥죄기가 심화된 상황에서 이번에는 정경유착 꼬리표를 붙인 수사가 이어지면서 기업하기 힘든 세상이 됐다”며 검찰 수사가 경영 악화로 이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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