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는 ‘함박웃음’…학부모들은 ‘끙끙’

[일요서울 | 박아름 기자]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롱패딩’ 덕분에 패션업계가 함박웃음이다. 업계가 내세운 이른바 ‘아이돌 마케팅’이 적중하며 10대 시장 공략에 대성공, 롱패딩(구스롱다운점퍼)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업계는 현재까지 200~300만장의 롱패딩이 공급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는 약 5000억 원대 규모의 시장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예상된다. 2011년 ‘노스페이스 대란’ 때와 마찬가지로 유행이 끝나면 재고 처리의 부담을 업체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지나친 유행 편승으로 소비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도 커져 ‘신(新)등골브레이커’로 등극했단 말도 돌고 있다.

10대에서 시작된 ‘롱패딩 열풍’ 3050세대까지 ‘포섭’
“부담스럽다”면서도 “아이 기죽을까 봐” 지갑 열어


그야말로 ‘롱패딩 대란’이다. 청소년에서 시작된 롱패딩 열풍이 유아와 성인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패션그룹형지는 전국 800여 매장의 올겨울 여성복 판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롱패딩 판매율이 전년 대비 40% 증가했다고 지난 24일 밝혔다. 여성 전문 아웃도어 ‘와일드로즈’도 전년 대비 607%의 판매 증가율을 기록했다.

‘키즈 롱패딩’도 급부상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같은 기간 유아동 전문기업 제로투세븐의 패션 브랜드 포래즈와 알로앤루의 롱패딩이 출시 한 달 만에 전체 물량의 62%가 판매됐다. 

업계는 올 겨울 다운재킷이 1000만장 이상 공급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중 롱패딩 제품 비중은 20~30%로, 약 5000억 규모의 시장이다. 현재도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시장 규모가 더욱 확장될 전망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른 한파와 평창 롱패딩 특수로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많아졌다”며 “전 연령층에서 유행하다 보니 ‘패밀리룩’을 연출하기 위해 가족 단위로 롱패딩을 찾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고가 브랜드 인기에 편승…부작용도

롱패딩 열풍은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시작됐다. 서울 강남의 A고등학교 교사에 따르면 한 학급 학생수의 80% 이상이 롱패딩을 착용할 정도로 ‘필수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브랜드 제품들은 원하는 제품의 사이즈와 색상을 구하지 못해 예약 주문을 해야 하는 상황도 빈번하다.

중·고등학생 사이의 유행이 초등학생까지 번졌다. 경기도의 C초등학교 교사는 “서울만큼은 아니겠지만 롱패딩을 입는 아이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며 “아이들이 벌써부터 유행에 매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중학교 1학년 딸을 둔 주부 박미애(서울 은평구·44)씨는 “(딸이) 길에서 고등학생 언니들이 롱패딩 입은 게 예뻐 보였던지 사달라고 하더라고요. 지난해에 털패딩이 유행이라기에 30만 원도 넘는 걸 사줬는데 이제 거들떠보지도 않아요”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지난 22일 서울 잠실 롯데백화점을 찾은 주모(45)씨는 “아이가 롱패딩이 갖고 싶다기에 저렴한 ‘평창 롱패딩’을 사려고 아침 7시부터 왔지만 못 샀다”며 “할 수 없이 브랜드 매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너무 비싸 엄두가 안 난다”고 씁쓸해 했다. 한 인터넷 카페에서도 학부모들이 “하도 졸라 롱패딩을 사줬더니 지난해 사준 구스다운은 내 차지가 됐다” “10만 원짜리 사줬는데 눈치 보인다”고 하는 등의 볼멘소리도 들리는 상황이다.
학부모들은 친구들이 다 입는다는데 안 사주기도 마음에 걸리고, 사주자니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올해는 비교적 저렴한 브랜드로 사줬지만, 내년이 벌써 걱정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롱패딩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경기도의 D고등학교 J교사는 “교복이 추워서 고가의 롱패딩을 입는다고는 하는데 유행 때문이라 생각된다. 추위 때문이라면 저렴한 점퍼 등 다른 방법도 많다”면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과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어 롱패딩을 못 입게 했다”고 밝혔다.

과잉 공급과 재고 부담 피해 지적도

롱패딩 열풍은 ‘스타 마케팅’이 원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광고 모델로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과 3050세대에게 인기 있는 모델을 선정해 소비자들의 심리를 간파했다는 것. 이를 증명하듯 22일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을 찾은 B고등학교 임모(17)양도 “좋아하는 가수가 입은 걸 보니 예쁜 것 같아서 엄마한테 사달라고 했다”고 롱패딩을 사러온 이유를 밝혔다.    
일각에서는 패션업체들이 지나치게 유행에 편승해 소비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업체가 올해 롱패딩 생산량을 전년대비 5배에서 많게는 20배까지 끌어올렸다. 또한 과잉 공급으로 추후 발생할 재고 부담을 업체가 고스란히 떠안게 될 수 있다는 부작용도 우려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롱패딩 시장에 뛰어든 업체만 50곳이 넘는다.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뿐 아니라 스파(SPA) 브랜드까지 가세한 상황”이라면서 “패션업계의 불황을 유행 아이템에 편승해 타개하려는 것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헤비다운과 마찬가지로 유행이 끝나면 재고를 처리하는 업체들에게 부담이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 있는 롱패딩 브랜드는 대부분 30만 원부터 가격을 책정한다. 100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도 있다. 한 브랜드의 매장 직원에 따르면 ‘비교적’ 저렴한 제품이 30~40만 원대라고 하니 학부모들의 부담 수준이 상당해 보인다.
이 때문에 2011년 노스페이스 패딩 열풍으로 탄생한 신조어 ‘등골브레이커’의 계보를 잇는 ‘신(新)등골브레이커’란 말이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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