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재력을 가진 세계챔피언”

최현미 선수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 18일 오후 인천시 계양체육관에서 복싱 슈퍼페더급 세계타이틀 5차 방어전이 치러졌다. 현재 남녀를 통틀어 한국 복싱의 유일한 세계 챔피언인 ‘탈북 복서’ 최현미 선수는 5차 방어전에서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일요서울은 탈북민에서 세계여자복싱챔피언까지 등극한 최 선수의 인생사를 들여다봤다.

북한서 11살에 복싱 입문···14살 어린나이에 가족과 함께 탈북
스폰서 없어 타이틀 박탈 위기도···“통합챔피언 욕심난다”


기자는 지난 22일 오전 최현미 선수를 만나기 위해 인천에 위치한 인천순복음교회로 향했다. 그곳에서 최 선수와 함께 최 선수의 아버지, 최 선수를 지원하는 성산청소년효재단의 최성규 이사장(인천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을 만났다.

최 선수는 방어전을 치른 지 얼마 안 된 탓에 얼굴이 다소 부어 있었다. 그동안 후원사(스폰서)가 없어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또 스폰서 문제 때문에 경기에 제대로 나서지 못해 하마터면 타이틀을 박탈당할 뻔했으나 최 목사의 후원으로 5차 방어전을 치러 승리의 기쁨을 거머쥐게 됐다.

한국 여자 복싱 1세대이자 세계복싱협회(WBA) 슈퍼페더급 챔피언인 최 선수는 어마어마한 이력과는 다르게 이른바 ‘소녀감성’을 가진 영락없는 20대 소녀였다. 탈북민에서 세계복싱챔피언으로 등극한 최 선수. 다음은 최 선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최근 여자 슈퍼페더급 챔피언 타이틀 5차 방어전에서 제시카 곤잘레스 선수와 싸워 이겼는데 경기 소감은?

- 상대 선수가 전략을 잘 짜고 나왔다. 상대 선수의 스타일은 외부에 알려진 비디오에서 ‘아웃복서’로 분석됐으나 링 위에 올라오니 갑자기 ‘인파이터’로 변해 머리부터 들어왔다. 결국 6라운드에 버팅(선수 머리끼리 부딪침)으로 인한 판정승으로 끝났다. 나는 화끈하고 파워풀한 경기를 치르고 싶었다. 모든 라운드에서 K.O를 노렸다. 이 때문에 준비한 것에 비해 모든 것을 보여주지 못한 찝찝한 경기였다. 그렇지만 ‘운’도 나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세계챔피언으로써 방어만 급급한 것이 아닌 팬들에게 화끈한 경기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크다. ‘잠재력을 가진 세계챔피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 탈북 이야기를 들려 달라.

- 14살 때 탈북을 했다. 당시 아버지가 여행을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섰다가 중국으로 향했다. 이후 베트남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탈북 기간은 6개월 정도다. 아버지는 베트남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으로 향했다. 탈북을 하면서 가장 힘든 시기를 꼽으라면 베트남에서 지낼 때다. 베트남에서 하루아침에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는 한국행, 어머니는 내가 나이가 어려서 같은 호텔에 묵었다. 오빠는 다른 호텔에서 묵었다. 공안에게 잡히면 한 명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숙소는 말이 호텔이지 일반 가정집이나 다름없었다. 베트남에 있던 4개월 동안 아버지가 한국에 잘 도착했는지 오빠는 살아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가족과 하루아침에 생이별을 한 그때가 탈북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 복싱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 현재 나는 17년차 복서다. 복싱은 11살 때 처음 시작했다. 그때 학교 체육선생님은 내가 운동을 잘해서 예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선생님의 친구가 학교에 놀러왔다가 내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게 됐고 복싱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나는 곧바로 거절했다. 남자들에게도 거친 스포츠이기 때문이었다. 또 북한은 남자가 하늘이고 여자가 땅이라는 생각이 조선시대처럼 뿌리 깊게 남아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더욱이 ‘여자가 무슨 복싱이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체육선생님의 친구는 나의 아버지와도 만났다. 그 남성은 아버지에게 “현미가 운동에 재능이 있어 보인다. 김정일 장군에게 기쁨을 줘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나는 그래도 거절했다. 그러나 그 남성이 “복싱을 안 해도 상관없으니 체육관에 와서 한 번만 구경해봐라”라고 한 마지막 말이 복싱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이후 나는 체육관으로 향했고 문을 여는 순간 속된 말로 ‘뿅’ 가버렸다. 여자아이들이 스포츠머리를 한 모습, 창문에서 햇빛이 들어오는데 땀이 튕기는 모습, 샌드백을 치는 소리 등 모든 것들이 예뻐 보였던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그 아이들보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것들이 나를 복싱에 발을 들이게 했다.
 
▲ 운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 스폰서 문제다. 나는 10년 동안 세계챔피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챔피언 내내 스폰서 문제로 고생을 했다. 아버지가 여기저기 찾아가 ‘우리 현미 좀 도와주십시오’라면서 고개를 숙일 때 가장 힘들었다. 아버지는 운동하는 딸 하나 둔 죄밖에 없었다. 게다가 세계챔피언의 아버지가 스폰서 문제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일 때 문득 ‘이렇게까지 운동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성산청소년효재단의 최성규 목사가 5차 방어전을 개최해 주지 않았다면 링에도 올라가지 못하고 타이틀을 뺏길 뻔했다.
 
▲ 남‧북 스포츠 생활의 차이점은?

- 북한은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것이 핵밖에 없지 않느냐. 따라서 스포츠를 선전활동의 도구로 이용한다. 북한에서는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온 가족의 신분 상승은 물론이고 평양에도 들어설 수 있다. 이른바 ‘졸부’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또 생존의 문제도 있다. 시합 전 스파링(연습경기)을 하는데 승패 여부에 따라 월급과 쌀의 배급에 차등이 생긴다.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북한에서는 새벽 운동을 할 경우 남들이 깰까 봐 몰래 나가서 뛴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면 자신이 이길 수 있다는 이유다. 누가 깨워주지 않는다. 선‧후배 관계도 없다. 모두가 라이벌이다. 한국에 와서는 자유롭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 운동 외 일상은?

- 솔직히 운동 외에도 운동이다. 여름에는 물에 살고 겨울에는 눈에 산다. 취미도 운동이다. 취미로 하는 운동 중 한 가지를 꼽으라면 스킨스쿠버다이빙을 하고 있다. 어떤 스포츠에 매료되면 끝을 보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다만 대학원에서 사회체육지도 석사과정을 밟고 있기 때문에 평소 논문을 쓰거나 공부를 한다. 이 밖에 예능 프로 등 방송에도 나가고 있다.
 
▲ 향후 목표나 포부는?

- 프로에서는 힘이 닿는 데까지 방어전을 해 나갈 것이고 WBC(세계복싱평의회)나 다른 기구에서도 통합 챔피언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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