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신인 제우스 신은 자신의 뜻을 거역하고 인간에게 불을 사용할 능력을 준 프로메테우스를 산에 매어놓은 뒤 독수리가 매일 생성되는 그의 간을 파먹게 했다. 또 인간에게는 복수를 하기 위해 최초의 여자인 판도라를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상자와 함께 주어 판도라가 그 상자를 열어서 인간의 불행을 가져올 모든 것들이 밖으로 튀어나오게 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판도라 상자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자고 나면 또 다른 판도라 상자가 열리고 그 내용이 가히 충격적인 만큼 결과도 무시무시하다. 
박근혜 정부의 판도라 상자는 온 나라를 탄핵이라는 블랙홀에 빠뜨리면서 대통령을 파면하는 위력을 발휘했고, 국정원 댓글이라는 판도라 상자는 박 정권은 물론이고 MB 정권 핵심 인사를 관통해 MB까지를 정조준하고 있다. 그러자 MB 측이 강력 반발해 자신들은 노무현 정권의 판도라 상자를 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공개된 국정원 특활비 판도라 상자는 입법부와 사법부를 망라해 관련자들의 줄소환과 구속을 예고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 정치사는 정권만 바뀌면 집권세력이 옳고 그름을 떠나 ‘과거청산’이니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판도라 상자를 연 ‘정치보복’으로 점철되어 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물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국가의 미래가 열린다. 그러나 그것이 상대 진영의 복수심을 일으키는 것이어서는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판도라 상자 도미노 현상이 크게 우려를 사고 있다. 더욱이 전·전전 정권의 안보·정보 수장들의 잇단 구속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죄를 덧씌우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 시점에 나는 대한민국 최초의 진보 진영 정권을 탄생시킨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떠올린다. 그는 정치 보복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납치, 투옥, 가택연금 등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정치적 탄압을 받은 대표적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는 대통령이 된 후 큰 틀에서 자신을 그토록 탄압했던 세력들에게 보복하지 않고 화해와 상생의 손을 내밀었다. 자신을 괴롭힌 자들에 대한 보복을 권하는 참모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무보복 노선을 견지해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판도라 상자를 열기는커녕 되레 박정희 기념관을 건립하도록 했다.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전두환 세력에게도 특별한 보복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국가발전세력과 민주화세력 간의 화해를 도모한 결과 우리나라는 단결된 에너지로 빠른 시일에 IMF를 극복하고 남남갈등을 줄여갈 수 있었으며 남북한의 화해도 이끌어 냈다. 그 덕에 진보 재집권의 길을 열 수 있었다.
이후 9년 만에 다시 권력을 쥔 현 집권세력은 DJ와 많이 다른 것 같다. 이들은 스스로 DJ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했지만 그렇지가 않아 보여 안타깝다. 
보수와 진보의 화해를 통해 다시 한 번 뭉쳐진 에너지로 지금의 경제·안보 위기를 극복하고 골 깊어진 남남갈등을 줄여가야만 남북한의 화해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진실로 용기 있는 사람은 먼저 용서하고 먼저 화해할 줄 아는 사람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