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빙자’ ‘기관사칭’에 ‘속수무책’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보이스피싱 범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동안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은 범죄 예방책 등의 정보를 잘 모르는 노인들을 범행 표적으로 삼았으나 이제는 20~30대를 속이기 위해 분주하다. 일요서울은 대출빙자부터 검찰‧경찰‧금융감독원 등 기관사칭까지 갈수록 치밀하고 대범해지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현주소를 진단해봤다.

예방책 모르면 낭패···공공기관은 돈 요구하는 일 없어
끊임없는 수법 변모···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


지난 13일 오후 경기 수원시에 있는 직장인 A(32)씨는 의문의 전화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소속 금융범죄 수사관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A씨에게 “당신 명의의 통장이 4000만 원대 사기범죄에 이용되고 있다”라며 말을 시작했다.

이어 A씨의 실제 주거래 금융기관을 언급하며 “지난 9월 개설된 당신 명의 통장이 피해자가 100여 명에 이르는 물품 사기에 이용되고 있어 공범이 아닌 것을 법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면서 “서울중앙지검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라”고 요구했다.

이 남성은 숫자로 이뤄진 인터넷 주소(IP주소) ‘125.230.xxx.xxx’를 불러줬으며 A씨는 해당 주소로 접속했다. 이 주소로 접속한 인터넷 사이트는 실제 서울중앙지검 홈페이지와 유사했다.

게시물을 클릭하면 실제 서울중앙지검 홈페이지 게시물로 자동 연동되는 등 치밀하게 위장됐으나 실제 주소가 잘못 표기되는 등의 허점도 존재했다.

이를 알아채지 못한 A씨는 남성의 지시에 따라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 사건을 조회했고 문무일 검찰총장 직인‧서명이 찍힌 사건 내용이 나타나자 보이스피싱으로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 남성이 “현재 A씨의 계좌에 보관 중인 금액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불러주는 계좌에 입금하라”라며 수상한 지시를 내리면서 범행은 들통났다.

보이스피싱으로 판단한 A씨가 남성에게 “직접 검찰청으로 출두해 검사님을 찾아뵙겠다”라고 말하자 수상한 남성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이는 실제 홈페이지와 유사한 가짜 홈페이지, 일반인 입장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법적 용어를 섞어가며 설명하는 보이스피싱에 돈을 잃을 뻔한 사례다. A씨는 평소 언론보도 등을 통해 보이스피싱을 인지하고 있던 터라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범죄에 대한 예방책 등 정보를 잘 모르는 노인들은 평소 범행 표적이 돼 돈을 잃기 십상이다.

지난달 말 성남시에 사는 70~80대 노인 5명은 중국 보이스피싱에 속아 집에 현금을 보관했다가 모두 2억1000여만 원을 도난당했다.

경기 분당경찰서는 보이스피싱 일당의 지시에 따라 이들의 돈을 훔친 일당과 중국으로 송금해 준 환전상 등 총 3명을 구속했다.

지난 19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주춤했던 보이스피싱 범죄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기남부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지난 2015년 3175건에 피해액은 293억 원에서 지난해 2407건 발생에 피해액 219억 원으로 줄었지만 올해 들어 지난달 말일까지 3185건 발생, 피해액은 306억 원에 달했다.

지난 13일에는 중국과 필리핀에서 보이스피싱 콜센터 조직을 운영하면서 9억 원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B씨 등 25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C씨 등 8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중국‧필리핀 등지에서 전화로 D씨 등 133명으로부터 모두 9억 원을 송금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대출회사 직원이라고 속인 뒤 저금리의 대출을 받으려면 보증금을 먼저 입금해야 한다며 D씨 등에게 돈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일반 금융권이나 대부업체보다 현저하게 낮은 금리를 제시하거나 대출을 미끼로 보증금 등을 요구하는 것은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수법”이라고 강조했다.

위의 사례들처럼 보이스피싱 범죄의 대표적인 유형은 검찰‧경찰‧금융감독원 등 기관사칭형과 대출빙자형으로 나뉜다.

기관사칭형은 금융정보가 유출됐다거나 범죄에 연루됐다는 등의 이유로 수사 또는 예금 보호 목적을 언급하며 계좌이체·현금 인출 등을 지시한 뒤 이를 챙긴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80%가량에 달하는 대출빙자형은 금융기관·캐피탈 등 금융권 직원으로 사칭해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대환대출해 주겠다고 속여 조정비·수수료·신용등급 전산비·공증료 등을 챙기는 수법이다.

경찰 관계자는 “고령자뿐 아니라 최근에는 20~30대 젊은 여성도 속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의 대다수는 자신은 범죄와 무관하다고 생각해 대처‧예방 방법 등에 대한 관심이 적다. 또 사기범이 불이익이 있다고 언급하는 방식을 사용할 경우에 당황하고 지시에 따르는 경향도 많다.

보이스피싱 일당들은 보이스피싱 대처 방법 등이 나오면 다른 방식으로 변모해 끊임없이 수법을 진화하고 있다. 따라서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표적인 예방 방법으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블로그 등 1인 미디어에 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게시하지 않는 것’, ‘계좌번호, 카드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경우 대응하지 않는 것’, ‘발신자 전화번호를 확인해 표시가 없거나 001, 080, 030 등 처음 보는 국제전화를 받지 않는 것’, ‘사기범이 개인정보를 도용한 경우 지인을 사칭해 입금을 요구할 수 있어 사실 관계부터 확인 하는 것’, ‘수상한 이메일이나 문자를 받았을 경우 즉시 삭제하는 것’ 등이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나 경찰 또는 공공기관에서는 개인정보유출을 사유로 은행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하라는 문자나 전화를 하지 않는다”면서 “이 같은 전화가 걸려오면 112에 바로 신고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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