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문재인 정부 내 권력 지도가 바뀌고 있다. ‘86 운동권’ 출신 한병도 전 정무비서관이 비서실장 다음 서열인 정무수석에 임명되면서 정치권에서는 청와대가 전대협 운동권 세력에 사실상 장악됐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문 대통령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3철’(전해철·이호철·양정철), 친노 원조 격인 안희정계와 부산 친노인사 등을 구주류로 전락시키며 신주류로 부상했다. 신주류는 구주류와 치열한 자리다툼에서 ‘전리품’을 챙기고 내년 있을 지방선거와 차기 당권 장악까지 노리는 모습으로 관망된다. ‘피를 나눈 형제도 나눌 수 없다’는 권력을 두고 양 진영 간 본격적인 ‘사즉사(死則死·죽고자 하면 죽고), 생즉생(生則生·살고자 하면 산다) 전쟁이 시작됐다.
  - 전병헌 전 정무수석 후임 두고 ‘운동권’-‘안희정’ 갈등
- 전해철 ‘조기 복귀’ 주장, 양정철 견제 속 靑 복귀 ‘안갯속’

 
문재인 정부 내 신주류인 임종석 비서실장 등 전대협 출신 ‘86 운동권’ 세력과 정권 초기 구주류로 전락한 안희정·3철 등 원조 친노 진영 간 권력투쟁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단초는 당·청에 ‘세력’도 ‘계파’도 없는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물러나면서 ‘빈 자리’를 두고 신·구 주류 간 자리다툼이 벌어지면서다.
 
전 전 정무수석의 후임으로 초기에는 강기정·최재성·정장선·오영식 전 의원 등이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강기정 광주시장, 최재성·정장선 경기도지사 출마설이 나오면서 불가론이 퍼졌다. 이어 청와대 발 ‘내부 발탁설’이 나오면서 박수현 대변인을 비롯해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한병도 정무비서관이 유력하게 대두됐다.
 
박 대변인은 지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안희정 캠프 대변인을 맡아 청와대 내 몇 안 되는 안희정계로 분류되고 있다. 반면 진성준·한병도 비서관은 각각 80년대 후반 전북대 총학생회 부회장과 원광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한 ‘86 운동권’ 출신으로 전대협 3기 의장을 지낸 임종석 비서실장과 막역한 사이다.
 
진 비서관과 한 비서관은 학번은 다르지만 67년생 동갑내기이고 66년생인 임 실장이 1년 선배다. 임 실장 입장에서는 한 비서관이나 진 비서관 누가 정무수석이 돼도 홀가분하지만 박 수석이 된다면 비운동권 출신에 2년 선배인데다 ‘안희정계’라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과는 전 전 수석이 자진 사퇴한 지 12일 만에 한병도 정무비서관이 정무수석 자리를 꿰차면서 일단락됐다. 특히 한 정무수석은 여당 내 율사 출신을 일일이 찾아가 전병헌 전 수석의 구속을 면하는 데 일조해 그 공을 인정받았다는 후문이다.
 
측근 정무수석 ‘탈락’날
안희정 ‘쓴소리’
 

한 정무수석이 임명되고 측근 인사가 탈락한 날 공교롭게도 안희정 도지사는 서울 성북구청에서 특강을 했다. 5.9 대선이 끝난 이후 ‘정중동’ 행보를 보이며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둔 채 도지사 임기 마무리에 전념한 터였다. 하지만 이날은 작심한 듯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에게 쓴소리를 보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안 지사는 이날 “‘대통령이 하겠다는데 네가 왜 문제 제기야’라고 하면 우리의 공론의 장이 무너진다”며 “이견의 논쟁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이어 “문제를 제기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이니’(문재인 대통령을 일컫는 애칭)는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다”며 “그런데 현재 진행되는 것을 보면 이견 자체를 싫어라 한다. 그런 지지운동으로 정부를 지킬 수 없다”고 했다.
 
나아가 안 지사는 “민주주의 공론의 장에서는 다양한 견해에 대해 도전과 토론을 허용하는 좀 더 고품격 지지자들의 교묘한 지지운동이 필요하다”며 “처음부터 닥치고 따라오라는 구조로 가겠다고 하면 그건 잘못된 지지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안 지사의 ‘고언’은 안 캠프에 일했던 인사들도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는 것이) 너무 빠른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발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신주류가 청와대를 접수하고 당까지 접수하려는 움직임을 간파하고 이를 견제하려고 의도한 발언이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이미 당·청 조직은 ‘주류 세력’이 장악한 상황이다.
 
당장 내년 6월 지방선거와 2개월 뒤에 있을 8월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일반 국민과 당원을 많이 확보한 후보가 광역·기초단체장 공천을 받고 당대표에 오를 공산이 높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안 지사 세력은 주류에 비하면 미약하다. 문 대통령의 지지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안 지사는 그동안 ‘8월 당대표 선거 직행’과 ‘6월 국회의원 재보선 후 당대표 도전’ 사이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안 지사는 11월21 측근을 통해 “재보선 출마 대신 도지사 임기를 마치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에서 안 지사에게 재보선 출마를 강권할 경우 당의 결정에 따른다는 입장”도 함께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트 추미애’로 거론되는 인사들 중 안 지사가 가장 유력한 가운데 김진표, 김두관, 송영길, 이인영, 우상호 의원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다. 김진표, 김두관 의원은 비주류인 데다 당내 조직이 약한 게 흠이다. 송영길 의원(63년생)은 1984년 연세대 직선 총학생회장을 지낸 ‘86 운동권’출신이다.
 
하지만 송 의원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경선때 손학규 캠프에 합류해 친노 이해찬·유시민 의원 등 친노진영과 ‘각’을 세운 바 있다. 또한 추미애 당대표가 선출되던 8.27 전대에서는 친문계 세력을 업고 출마한 추 대표와 각을 세우며 당 주류 진영을 강하게 비판해 ‘컷오프’ 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으며 기사회생하고 ‘친문계가 자신을 통해 새판짜기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신주류가 송 의원을 포함해 이인영, 우상호 등 전대협 1기 의장, 부의장 출신 운동권 그룹에서 누구를 당 대표, 서울시장 단일후보로 내느냐에 따라 경선 구도가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 구도는 안 지사가 유리한 모습이지만 송영길·이인영·우상호 역할이 정리되고 후보가 단일화될 경우 안 지사가 무난하게 당대표에 오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신주류 측에서는 ‘우상호 서울시장-이인영·송영길 당권’으로 역할 분담을 정하고 문 대통령의 지지까지 얻어 일단 서울시장을 거머쥘 경우 두 달 후에 있을 전당대회 역시 자신들의 뜻대로 갈 공산이 높다.
 
동시에 여의도에서는 안 지사가 “재보선 출마를 접고 임기를 채우겠다”고 시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송파 지역에 재보선 출마를 위해 사무실을 마련했다”는 괴소문까지 돌면서 신주류와 신경전이 고조됐다. 이런 정황을 간파한 안 지사가 특강 자리에서 작심하고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비판하면서 신주류에 간접적으로 경고를 보낸 게 아니냐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해철, “양정철 조기복귀”
신주류, “시기상조”

 
신주류와 안 지사는 차기 당권과 대권을 두고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현재로선 신주류가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지만 집권 후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3철’(전해철, 이호철, 양정철)과도 긴장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의원은 내년 있을 경기도지사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11월30일 2주간 외유를 마치고 부산에 돌아와 노무현 기념관 설립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부산시장 출마설’에 휩싸인 상황이다.
 
반면 문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백의종군’을 선언한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은 일본에 머물면서 집필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특히 양 전 비서관은 문 대통령으로부터 3철중 가장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비서관은 20대 총선이 끝난 이후인 6월13일 문 전 대표가 네팔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떠날 당시 동행한 인사다.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의 집필을 도운 양 전 비서관은 ‘변호사 문재인’을 ‘정치인 문재인’으로 만든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기도 했다.
 
전해철 의원은 지난 추석 전 본지와 가진 특별 인터뷰에서 양 전 비서관의 ‘조기 복귀’를 주장했다. 전 의원은 양 전 비서관 관련 “양 교수는 문 대통령께서 현실정치할 때 곁에서 아주 많은 일을 했던 참모로서 문 대통령과 함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외국(뉴질랜드) 간다고 했을 때 난 만류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 의원은 “본인은 ‘너무 최측근이 옆에서 일을 많이 하면 다른 좋은 분들이 일할 공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외국으로 나간다’고 했다”며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까워 기회가 된다면 필요한 일을 하는 게 낫겠다”고 조기 복귀를 주장했다.
 
정가에선 이미 ‘양정철 연말 복귀론’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전병헌 전 수석이 물러난 이후 ‘정무수석 깜짝 발탁설’도 흘러나왔다. 국회의원 경력은 없지만 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고 최측근이자 ‘복심’의 선두주자이기 때문이다. 집권 직후 1기 청와대 라인업을 구성할 때에도 양정철 정무수석 카드가 거론된 바 있지만 본인의 2선 후퇴 의지가 강해 무산되었으니 복귀는 시간문제라는 관측도 많았다.
 
하지만 양 전 비서관의 기용은 성사되지 못했다. 역시 청와대 내 신주류로 부상한 운동권 인사들이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시기 상조’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여의도에 돌았다. 반대 명분으로 “당청 관계를 원만하게 진행하고 야당과 스킨십도 중요하다”, “비서실 내 팀워크도 따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청정치’ 표본에서
‘신주류’ 핵심으로 부상
 

무엇보다 임 비서실장이 리더십을 가지려면 나이와 중량감도 문제다. 양 전 비서관은 임 실장보다 2살 위인 데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라는 점이 임 실장에게 최대 부담일 수밖에 없다는 게 여당 내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래저래 문재인 정부 1기 청와대 핵심 권력은 전대협으로 대변되는 ‘86운동권 세력’이 쥐고 있는 모습이다. DJ 정부 시절 2000년 총선 때 발탁돼 정치권과 연을 맺고 ‘노무현 탄핵’ 바람이 분 2004년 총선 때 원내에 대거 진입했다. 한때 김근태·노무현·정세균 등으로 나뉘어 각자 다른 길을 걸어 ‘하청정치 한다’고 비판을 받던 이들이 17년 만인 2017년 문재인 정권과 함께 다시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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