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폭로 이어 도 넘은 사생활 침해

▲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 <뉴시스>
#. 지난달 9일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 ‘학벌주의가 심해졌으면 좋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익명으로 작성된 이 글에서 작성자는 “(내가) 어떻게 고대에 왔는데, 학벌주의가 더 심해져서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이 더 대접받았으면 좋겠다. 아예 진출할 수 있는 직업군이 분류되면 더 좋겠다”고 밝혀 공분을 샀다.
 
#. “○월 ○일 ○시 ○분 쯤 ○번 버스타고 학교 후문에서 내리신 분 누군지 궁금합니다! 제 이상형이셔서 여자친구 없으시면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항상 맨 앞자리에서 ○교수님 수업 들으시는 여성 분, 남자친구 있나요? 너무 예쁘셔서 계속 쳐다봤는데.” 지난 3월 21일 중앙대학교 대나무숲에 게시된 ‘고백’ 글은 20건에 이른다. 새학기를 맞은 각 대학교의 대나무숲에는 마음에 드는 이성을 찾는 글이 늘어난다.
 
대숲 열풍을 주도한 ‘익명성’을 활용해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거나 감정을 표현한 사례다. 그러나 최근 이런 익명성 뒤에 숨어 ‘무차별 비난’이나 ‘명예 훼손’ 등이 빈번해지면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숲에 올라온 글 가운데 적잖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실제 해당 집단의 구성원인지 신원확인이 되지 않은 이들이 집단에 대해 폭로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익명성의 어두운 면이 부각된다.
 
사회적으로 논란에 휩싸인 글은 검증되지 않은 폭로성 글이 많다. 고려대 대숲에 올라온 글이 화제가 되면서 언론에 보도되자 대숲을 둘러싼 비판여론이 고조됐고, ‘진짜 고대생이 쓴 게 맞느냐’는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고대 교내 커뮤니티 ‘고파스’에는 학교 명예를 훼손했다며 ‘대숲을 폐지하라’는 글이 수십 건 게재되는 등 비판 여론이 확산됐고, 결국 고대 대숲 관리자가 사과하는 사태로 번졌다.
 
사생활 침해의 문제점도 있다. 위 사례의 ‘고백 글’은 고백을 당한 대상자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제기된다. 고백 글의 댓글란에 자신의 이름이 태그(검색을 위해 부여하는 꼬리표)를 당하는 과정에서 이름은 물론 일상생활 일부가 공개된다.
 
실제로 개인정보가 노출된 사례도 있다. 지난해 A대학교의 대숲에는 과거 자신을 성폭행한 학생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폭로성 글이 게재돼 가해자로 추측된 학생의 신상이 털렸다. 대숲이 익명성을 무기로 성장했지만 완전한 익명보장은 되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확인 결과 사실무근으로 판명이 났고, 억울한 피해자만 만들어냈다.
 
이 때문에 관리자가 나서서 글을 걸러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당시 A대학교 대나무숲 관리자는 “폭로글, 저격글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필터링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고대에서 발생한 논란도 ‘왜 운영자들은 이런 글을 거르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한 대학교 대숲 관리자는 “대숲이 일부 악용된 사례가 있지만 순기능도 없지 않기 때문에 폐지보다는 문제점을 개선해 계속 유지해 나가야한다는 게 학생들 여론”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숲은 2012년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각종 불만과 애환을 토로하는 익명 게시판이 등장한 것이 시초다. ‘대나무숲’은 일연의 삼국유사에 실린 ‘경문왕 설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 복두장이 임금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대나무숲에서 털어놓았다는 이야기를 착안해 지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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