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성 보기 위한 질문일 뿐’ vs‘아이디어만 가로채고 뽑지도 않아’

“회사 관심도를 확인하기 위해 넣은 것, 다른데 안 쓰여”
 
정부, 갈등 확대 막기 위한 법안 마련…실효성은 글쎄

 
[일요서울 | 오유진 기자] 2017년 하반기 공개채용 시즌이 막바지에 접어들며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의 하소연이 길어지고 있다. 일부 취준생들이 기업에 취업하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아이디어만 뺏긴 것 같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기업들이 채용 과정에서 기획안 제출, 타 경쟁사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아이디어를 수천명의 취준생들에게 얻고 있다는 것. 실제 2018년 하반기 공채 자기소개서에는 ‘경쟁사 대비 강점 및 보완점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 기술’하라는 기입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이를 두고 해당 기업과 일부 누리꾼들은 단순 ‘논리성’을 보려는 것이지 아이디어를 갈취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기업의 채용 문화가 급변하고 있다. 단순 학벌과 성적순이 아닌 실무에서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신입사원을 뽑기 위한 채용 전형이 많이 생겨난 것. 그러나 일부 취준생들은 기업에서 이를 이용해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얻고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2017년 하반기 공개채용을 한 기업 A사의 자기소개서 기입란에는 ‘당사의 제품 중 한 가지를 선택해 경쟁사 대비 강점 및 보완점 그리고 A사의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기술하라’는 항목이 존재한다. 타 기업의 경우 지원 동기, 성장과정, 사회활동, 준비과정과 본인의 강점과 약점, 입사 후 포부 등을 기입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최근 식품 기업 취업에 준비 중이라고 밝힌 B씨는 아이디어를 묻는 기업이 대부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신제품 아이디어 제안과 기존 제품 리뉴얼 방안 등을 면접이나 PT면접에서 많이 물었다”며 “대부분 기업의 면접 기출에 해당 내용은 빠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B씨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식의 질문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제안은 회사 들어가서도 충분히 할 수 있고, 실무자가 아닌 이상 제품 공정에 대한 이해도 없고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지 수박겉핥기식으로밖에 얘기할 수 없다”며 “(아이디어를 묻는 질의는) 공모전으로도 할 수 있으니 신입사원을 뽑는 것에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디어만 가로채고 뽑지도 않는다’는 주장은 온라인 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한 누리꾼은 기업 자소서와 PT 면접에서 ‘타사 대비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 ‘기업 장소 활용 방안’ ‘유투브 채널 구독자 상승 방안’ 등을 질문받았다고 했다.
 
다른 누리꾼 역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뽑는 것도 아니면서 대량 아이디어 수집은 취준생들을 이용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취준생들 대부분이 울며 겨자 먹기로 써낼 텐데 이런 건 법으로 막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실적 어려움 존재
 
실제 정부는 갈등의 확대를 막기 위해 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미 자리 잡은 채용 행태가 변화하긴 쉽지 않을 전망이라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14년 초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채용절차 공정화법’) 제정했다. 이 법은 채용과정에서 구직자가 제출하는 채용 서류의 반환 등 채용절차에서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항을 정해 구직자의 부담을 줄이고 권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제정된 최신 노동법 중 하나다. 채용절차 공정화법은 상시 근로자를 30명 이상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에는 모두 적용된다.
 
그러나 해당 법의 실효성에는 허점 투성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 취준생 대부분은 자신이 원하는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한 기업에 몇 차례 이력서를 넣는다. 취준생 입장에서는 자신이 뽑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업에 제출했던 아이디어를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또 10여 곳 이상 지원하는 취준생들 입장에서는 일일이 제출 기업에 서류 반환을 요청하는 것도 힘든 상황이다.
 
이학주 노무법인하나 노무사는 “구직자로서 어렵게 개발한 아이디어를 회사가 ‘채용’이라는 핑계로 가로채는 일이 이제는 없어져야 한다”며 “개인정보가 다량 기록된 이력서 등을 회사가 임의로 활용하는 일도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노무사는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취업하는 입장에서 회사와 싸워야 하는 부분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법률적으로 따로 보호받을 수 없어 해당 법으로밖에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이디어 가로챈 것 아냐
 
반면 ‘아이디어만 가로채고 뽑지도 않는다’는 주장을 전면 반박하는 이들도 있다. 해당 기업들과 일부 누리꾼들은 해당 질문들은 단순 ‘논리성’을 보기 위함이지 아이디어 가로채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한 누리꾼은 “실제 입사한 사람들 중에 그 정도의 아이디어를 낼 사람이 없겠으며, 자소서 항목으로 넣을 정도면 이미 실질적으로 추진 중인 얘기”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지원자들의 아이디어 정도는 이미 부서에서 논의되고 사업성 없다고 폐기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A사 관계자는 “평가 요소가 논리성이나 회사의 관심도를 확인하기 위해 넣은 것이다. 다른 회사도 그렇게 하고 있다. 본사의 경우 400자로 제한하고 있고 방향성 제시 정도이기 때문에 심사위원은 다양성과 논리성 위주로 평가한다”며 “자기소개서 같은 경우 서류심사위원회에서 타 부서에 공유하지 않는다. 비밀 보장을 하고 있고 철저히 준비한다. 다른 곳에 쓰이지 않는다. 회사에 대한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보기 위해선 이런 항목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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