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퇴직 행렬 속 “실적 때문에 잘리면 어떻게 하나”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돌아온 연말, 은행의 실적평가가 진행되는 가운데 은행원들이 실적 압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올해는 유독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디지털뱅킹(모바일·PC뱅킹) 서비스 이용 증가 등으로 영업점 방문 고객 수요가 줄어 은행원들의 영업 부침이 더욱 심각한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과도한 성과주의가 은행원의 고통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금융권 공공성을 훼손하고 금융 소비자 보호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계좌·카드·방카슈랑스 등 전방위 영업 압박
올해 디지털뱅킹 가속화로 영업 환경 악화일로


“안 그래도 일 년 내내 영업 실적 압박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연말만 되면 그 강도가 너무 심해 견디기 힘들 지경입니다. 하루 종일 아무도 실적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스트레스가 가시질 않아요. 그냥 성과금 포기하고 쉬고 싶습니다.”

일요서울이 만난 한 시중은행 은행원의 하소연이다. 어떤 직장인이라도 공감할 만한 내용이지만 연말만 되면 유난히 은행원들의 곡소리가 높아진다. 매일 달라지는 은행권 영업 순위를 두고 경영진들이 자존심 싸움을 하는 사이, 일선 은행원들이 그 부담감을 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올해는 영업 환경도 좋지 못했다. 인터넷 전용상품 실적 확대와 더불어 은행들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응하기 위해 비대면 영업을 강화한 탓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점포를 통폐합하거나 희망퇴직을 확대·실시하는 등의 움직임은 은행원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한다.

실제 올해 대출금리 인상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들은 선제적 비용절감을 위한 연말 대규모 인력감축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시중은행의 인력감축 규모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농협은행 등은 인력감축 프로그램을 본격화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지난달 20일부터 22일까지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앞서 우리은행도 지난 7월 희망퇴직을 실시해 약 1000명이 지원한 바 있다.

NH농협은행과 우리은행에 이어 타 은행들도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대규모 퇴직보다는 일부 지원자에 한해 명예퇴직 신청을 받을 계획으로 전해졌다.

또 영업 압박은 계좌, 카드는 물론 방카슈랑스(은행창구 판매 보험) 실적까지 전방위적으로 몰아세우는 모습이다. 금융감독원은 과도하게 보험 판매를 강요해 직원들에게 실적 압박을 준 시중은행들을 무더기로 제재했다.

지난 7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직원들에게 방카슈랑스 판매를 강요한 IBK기업은행과 KEB하나·우리·SC제일·대구·부산은행 등 6개 은행에 경영 유의와 개선사항 처분 조치를 내렸다.

특히 KEB하나은행은 전 직원이 공유하는 내부 게시판에 ‘1인 1건’ ‘모든 창구에서 방카슈랑스를 권유하라’ ‘지점을 방문하는 고객에게 하루 10번 권유하라’ 등의 내용을 담은 글을 올렸다.

기업은행은 내부 직원용 게시판에 ‘모든 직원은 고객에게 하루 1명 이상 보험 상품을 권유하라’는 등의 글을 올렸다. 한 지점에서는 방카슈랑스 판매 촉진 기간 동안 하루 평균 18.4건의 보험 계약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는 하루 평균 실적(2.3건)보다 8배나 많은 규모다.

이를 두고 또 다른 시중은행 은행원은 “연말이 되면 매해 똑같다. 연간 목표 성과율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많은 영업이 진행되는 시기”라면서 “상반기 결산 때는 하반기를 노려볼 수 있지만 연말 결산은 다음 기회도 없기 때문에 더욱 압박이 심하다”고 호소했다.

아울러 “은행권이 전체적으로 점포 수를 줄이고, 인원을 줄여 디지털뱅킹 위주로 사업을 재편하려 하는데, 마구잡이로 자를 수 없기 때문에 실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우스갯소리지만 심한은행(신한은행), 화난은행(하나은행)이라는 말을 들어 봤나. 그것이 은행원들의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은행원들의 하소연은 다양한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은 은행권 과당 경쟁의 근본 원인으로 KPI(핵심성과지표)를 지목하고 현행 방식의 KPI 제도를 전면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단기 실적 위주로 지나치게 세분화되어 실적 경쟁을 강요하는 KPI 탓에 금융소비자들은 불완전판매와 은행의 경쟁비용 전가에 따른 차별 피해를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금융노동자들도 장시간 노동과 불완전판매 책임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금융노조가 신한은행 등 8개 은행의 KPI를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은행별 KPI는 최대 97개에 달했으며 목표 달성률도 적게는 140%, 최대 180%였다. KPI상 목표 기준의 1.8배를 달성해야 최고 가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영역별 KPI의 비중도 전체 KPI 중 평균 62.6%가 상품신규에 배정돼 있는 등 상품 판매에 극단적으로 편중돼 있다. 금융공공성이나 금융소비자 보호가 상품 판매보다 훨씬 홀대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함께 실시된 조합원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고객의 이익보다 은행의 KPI 실적 평가에 유리한 상품을 판매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87%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조합원들은 가장 큰 이유로 과도하게 부여된 목표(66%)와 은행 수익을 우선시하는 KPI 평가 제도(56%)를 꼽았다.

가족, 친구, 지인 등에게 상품을 강매한 적이 있다는 답변도 75%로 매우 높았다. 교차판매 달성을 위한 상품 쪼개기(49%), 본인 자금으로 상품 신규(일명 ‘자폭’, 40%)의 경험도 많았다.

실적 경쟁이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은행원들은 은행 생활을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과도한 실적달성 경쟁(65%)과 장시간 노동(11%)을 꼽았는데 하루 평균 2시간 이상의 초과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은 “금융산업의 과당경쟁은 IMF 외환위기 이후 계속해서 강도가 높아졌고 이제는 오로지 수익만 추구하며 금융기관 본연의 공공성을 외면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과당경쟁은 금융소비자와 노동자, 은행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만악의 근원”이라면서 “(은행원들이) 영업 때문에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고, 소비자는 원하지도 않는 금융상품에 가입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를 입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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