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세력을 키워 최후 승자가 되는 책략에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를 이용해 오랑캐를 제어한다는 의미) 전법이 으뜸이다. 
이는 특히 정면 대결이 껄끄러울 것 같은 상대에게 아주 효율적 전략이다. 상대방 세력의 성장을 더디게 하거나 아예 무너뜨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직접 상대를 대적하는 것보다 저비용 고효율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적들이 서로 싸우는 동안 아군의 전력을 강화할 시간을 벌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이이제이’ 책략의 ‘고수(高手)’는 중국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들은 이 계략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최근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를 두고도 중국은 ‘이이제이’ 전략을 쓰고 있다. 싸우지 않고 우리나라를 이용하여 미국을 아주 효율적으로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사드 논란을 계속 부추기면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으로 미국을 한·미 동맹 딜레마에 빠지게 하고, 우리에 대해서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강화해보겠다는 속셈이다. 실제로 중국의 책략에 한국과 미국이 쌍으로 말려들고 있는 정황이 짙다. 
그런데 이처럼 사드를 매개로 엄청난 실속을 챙기고 있는 중국의 술책이 지금 우리 정치판에까지 옮겨 붙은 듯해 보인다. 그 주체 세력이 미국보다는 중국에 가깝다는 사실은 국민이 다 아는 바고, 자신을 ‘보수의 보루’라 자처하면서까지 보수의 궤멸을 꾀하는 ‘이이제이’ 책략에 말려든 형국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당이 원내 교섭단체 지위를 잃었는데도 온갖 언론으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어찌 보면 이 같은 유 대표의 행보가 자신이 ‘이이제이’ 책략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응하는 고육지책일 수 있다. 하지만 보수 진영은 그를 크게 달가워 할 수 없는 처지에 내몰렸다. 보수진영 일각에서 의심의 눈치를 보내고 있는 집권세력의 ‘이이제이’ 책략은 유 대표를 이용한 국민의당 와해와 보수 진영의 메카 ‘대구·경북 고립’으로 요약할 수 있다. 
현 집권세력은 지난해 총선 때 전통 지지기반인 호남을 국민의당에 넘겨주었다. 그러나 대선에서 승리하고 호남 ‘인사 폭탄’과 각종 포퓰리즘 정책 등을 발표하면서 전세를 뒤집어 놓는 데 성공했다. 이어 유 대표의 뜬금없는 ‘공화주의’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통합론을 부각시키며 호남 민심을 완전히 장악하는 개가를 올렸다. 
집권세력은 이어 영남권 공략에도 나서 ‘적폐청산’을 기치로 부산·울산·경남에서의 지분을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확보한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마지막 남은 곳은 보수 궤멸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될 수 있는 대구·경북지역이다. 이곳을 도모하기 위해 집권세력은 또 유 대표를 최대한 이용해야 할 것이다. 그가 보수의 차세대 리더로 부상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TK의 반감은 더욱 고조될 것이란 계산도 할 것이다.
보수 진영은 작금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북한의 핵위협에 국제사회와의 공조와 대화의 중간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현 집권세력에 강력히 맞서기 위해서는 한가롭게 보수 주도권 싸움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말 궤멸당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벌써 보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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