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n 여행 이야기] 가을을 보내는 방법…낭만가도 안동
[Go-On 여행 이야기] 가을을 보내는 방법…낭만가도 안동
  • 프리랜서 이곤 기자
  • 입력 2017-12-11 10:18
  • 승인 2017.12.11 10:18
  • 호수 1232
  • 6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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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안녕히 보내야 한다. 그렇게 멋진 단풍을 보여 주었고, 낭만적인 가을바람을 불어 주었으며 또 가을 그 자체로 곁에 머물다 갔기 때문이다. 유난히 아름다웠던 가을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한 안동의 로맨틱 가을 환송식.
       안동에 멋스런 길이 있다. 멋이란 단순히 외향적인 풍김에 머물지 않는다, 풍경을 담되 동시에 정경을 품어야 하고 또 기품과 함께 그것을 떠안는 깊은 정신이 스며 있어야 한다.

안동이라는 고장을 어찌 몇 개의 단어나 표현으로 규정지을 수 있을까마는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이름에 또 하나의 근사한 수식이 마련됐다.

안동이라는 예스러움과 정신적 울림을 길로써 표현해 낸 안동의 ‘낭만가도’. 안동의 길을 걸으며 가을이 주는, 길이 건네는 그리고 안동이 전하는 정서를 만끽하는 것, 구석구석 늦은 가을빛으로 반짝이며 빛나는 안동식 낭만.
 
      지례예술촌
 
넉넉한 임하호를 품고 있는 지례예술촌. 깊은 산속에 오롯하게 자리 잡은 지금의 고택은 기존의 지례마을이 임하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의성 김씨 지촌파가 1663년에 지어진 종택과 서당, 제청 등을 1986년에 그대로 옮겨와 안전하게 이식해 놓은 집이다.
      길 입구에서도 차로 굽이굽이 30~40여 분은 족히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은거지. 이렇게 외진 곳에 이처럼 멋진 곳이 대한민국 땅 또 어디에 있을지, 산과 호수와 은은한 모습의 고택, 게다가 나지막하게 내려앉아 바스락거리는 가을이 어우러져 풍기는 지례예술촌의 아름다운 정경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직접 보고 걸어봐야 할 지례예술촌. 고택 담장을 끼고 산책길이 조성돼 있는데 긴 코스는 아니지만 호수와 산과 고택과 무엇보다 안동 선비의 속 깊은 정서가 숨어 있어 꼭 걸어봐야 할 아름다운 길이다.
      더불어 넓은 임하호를 내 집처럼 앞에 두고 감상할 수 있다니 이것은 분명 지례예술촌에 내린 축복. 안동의 정신이 그러하듯 나눔과 배려의 마음가짐에서 출발한 지례예술촌이기에 탈춤공연, 국악공연 등 다양한 공연 행사가 수시로 열리며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아름답고 고즈넉한 곳에서 고택 체험 및 숙박도 가능하다.
 
용계리 은행나무
 
지례예술촌에서 박곡리로 나와 도연교를 지나 내려오면 커다랗게 자라 있는 용계리 은행나무가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 은행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용계리 은행나무는 원래 이곳에 있는 나무가 아니었다.

풍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던 것을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지 않게 옮겨 심은 것. 하루에 1~5cm씩 3년 동안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귀하고 귀한 나무로 안동 사람들이 지닌 자연에 대한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수령은 무려 700여 년. 바람이 불면 수백 만 개의 은행잎이 사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떨리고 낭만가도에 한 자락 바람을 실어주는 곳. 큰일이 있을 때면 소리를 내며 울었다는 은행나무는 자리를 옮긴 후에는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고 전해 구슬픈 마음도 든다. 은행나무 아래라는, 더 없이 시적이고 낭만적인 곳.

버스로 기획해서 주관하고 있는 낭만가도 상품을 이용할 경우 은행나무 아래 푸른 잔디 위에서 로맨틱한 식사를 즐길 수 있어 색다르다. 안동의 농부들이 들판에서 일하다 먹곤 했던 ‘들밥’을 제대로 만들어 내는 유기농 점심은 도심에서는 거의 접할 수 없는 시골밥의 정석. 버스로 기획은 앞으로 계절별 안동 낭만가도를 진행할 예정이다.
 
    묵계서원
 
안동 최고의 사과 재배지로 알려지는 길안면으로 내려와 당진-영덕 고속도로를 지나면 묵계서원으로 들어오는 입구와 만난다.
    길에서 야트막한 고갯길을 따라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10여 분 남짓. 묵계서원은 숙종 때 세워진 소박하고 단정한 서원으로 평생 대쪽같은 삶을 살았던 청백리의 표상이자 안동의 선비 정신을 퇴계보다 앞서 뿌리 내린 보백당 김계행 선생과 세종 때의 명선비 옥고 선생을 봉향하고 있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광풍에 훼철됐던 것을 후대에 도내 유림과 안동 시민들이 재 복원할 정도로 유서 깊고 명망 높은 다. 내부에는 본 강당인 입교당과 문루인 읍청루와 동재, 진덕문 등이 있어 서원의 격을 더한다.
    서원이 건립될 당시 궁이 아닌 곳에서는 굵직하고 둥근 나무를 사용해 건축물을 만들기 어려웠던 시절이기에 읍청루를 바치고 있는 둥근 기둥의 특색이 돋보인다.
    또 입교당을 받치고 있는 투박한 돌덩이들은 오히려 반듯하게 쌓는 것보다 더욱 견고하고 튼튼하다고 하니 여러모로 건축적인 가치가 숨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원 바로 옆에 헐리지 않고 당시 건물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서원의 관리소 격인 주사가 있으며 그 건너 안동 김씨 묵계 종택이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만휴정
 
묵계서원에서 내려와 길을 건너고 하리교를 넘어 산골짜기로 더 오르면 낭만가도의 마지막 지점인 만휴정과 만난다.
   김계행 선비가 만년에 속세를 잊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산속 너럭바위 밑에 만든 정자. 송암폭포를 따라 맑고 거칠지 않게 흘러내려오는 물줄기가 시원하고 그 속에 틀어박혀 자연과 벗하는 만휴정은 그 자체로 학자요 선비이며 김계행이다.

김계행은 “지극한 즐거움을 산수에 부치고, 행함과 그침은 천기에 따르며, 세상 밖에서 노닐며 세상사를 뜬구름 같이 가볍게 보았다”며 그의 자연과 탈속에 대한 예찬을 풀어낸 바 있다. 
   길 끝이 오롯이 만휴정이기에 만휴정을 목적지로 삼지 않는다면 인적은 거의 없고, 그래서 이렇듯 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의 가을 사색은 필연적인 감정이자 자세이다.

지례예술촌이 임하호를 앞에 두고 풍류와 낭만의 절정에 잠겼다면 폭포와 나무 숲 사이로 모습을 보이는 만휴정 또한 그러할 것. 안동 곳곳에 숨어 있는 그 정신과 풍류가 가히 존경스러울 정도다. 만휴정 본당으로 들어가려면 계곡을 건너야 한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다리이지만 과거에는 필시 나무다리였을 터. 얼핏 당시의 정취가 그립다. 만휴정에 가만히 앉아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흘러가는 물소리와 나뭇잎에 이는 바람소리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합세해 만들어 내는 그 지극한 사위가 온몸을 가물가물 휘감는다.
 
예던길
 
낭만가도의 정취에 반해 안동의 길을 좀 더 걷고 싶다면 예던길 역시 그러한 마음을 받아줄 것이다.

예던길은 안동의 정신적 지주이자 대한민국 정신의 수장인 퇴계 이황이 자주 거닐던 길을 후대에 와서 새롭게 만든 길로, ‘퇴계 오솔길’로도 불린다. 아직 크게 알려지지 않은 탓에 의외로 도보 여행의 백미가 숨어있는 길이기도 하며 낭만가도와는 또 다른 고즈넉하고 한적함이 길 위에 점점이 뿌려져 있는 구간이다.
  예던길에서 ‘예’는 ‘끌다, 고달프다’는 의미로 흔치 않은 한자에 숨은 의미가 사뭇 궁금하다. 예던길은 현재 일부 구간이 사유지로 돼 있어 당시의 길을 그대로 걸을 수는 없다.

하지만 고산정을 시작으로 농암종택을 따라 낙동강 변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예던길의 정취를 충분히 차고 넘치게 느낄 수 있으니 안동까지 와서 이 길을 그대로 지나칠 수는 없다.
 
고산정
 
봉화의 끝자락이자 안동의 시작점인 가송리 소뚜들에서 낙동강을 따라 걷다 보면 강 건너 암벽 옆에 소담한 정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고산정. 퇴계의 제자였던 성재 금난수가 수학하던 정자로 퇴계 역시 제자의 거처에 자주 왕래하며 풍류를 즐기고 시를 남기곤 했다.

고산정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건너에 펼쳐진 절벽 내병대의 풍경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나무로 뒤덮인 암벽은 드문드문 드러나 있을 뿐이지만 만일 이곳에 나무들이 없었다면, 그래서 유유한 낙동강과 장쾌한 단애로 그림이 이루어졌다면 감히 우리나라 최고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을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고산정 마당에 탱자나무 한 그루가 심겨 있는데 탱자꽃이 지닌 꽃말이 ‘추억’이며, 탱자나무에는 ‘사람은 주변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 숨어 있다. 주변 환경이란 곧, 이곳의 풍경과 퇴계를 일컬음이다.
 
 농암 종택
 
연산군 때의 학자이자 선비였던 농암 이현보의 종택으로 이현보는 ‘어부가’의 작가이자 조선시대에 유일하게 은퇴식을 했던 학자로도 유명하다.
 귀향 후에도 안동의 산세를 벗하며 조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이현보. 현재의 종택은 1370년에 지어진 것으로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고택을 후대가 이전, 복원한 것이다.

농암은 나이 차를 넘어 퇴계와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택 주변으로 농암선생의 학덕을 기리고자 세운, 안동에 남아 있는 7개의 서원 중 한 곳인 분강서원이 있으며, 애월당과 강가에 세워진 누각인 강각으로 이어진다.
 강각을 지나 낙동강이 유유히 돌아 나가는 오솔길로 접어들면 퇴계가 그토록 사랑했다는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제공=여행매거진 G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