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과 틀림도 구분 못하는 사회
다름과 틀림도 구분 못하는 사회
  • 장성훈 국장
  • 입력 2017-12-15 11:47
  • 승인 2017.12.15 11:47
  • 호수 1233
  • 6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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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사회는 건전한가?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한 나라의 사회가 건전한지 아닌지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 다름과 틀림을 제대로 구별하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보수와 진보를 예로 들어보자. 보수는 과거의 가치나 제도를 거울삼아 국가 발전을 꾀하지만, 변화와 개혁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입장을 취한다. 이에 비해 진보는 모든 사안을 전향적으로 생각하면서 적극적으로 변화와 개혁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보수라 해서 필요한 개혁마저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거부하는 보수는 가짜 보수다. 마찬가지로, 진보라 하여 과거의 것들을 모두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진보는 가짜 진보다.

  보수와 진보가 다른 것인가? 보수는 옳고 진보가 틀린 것인가? 반대로 진보는 옳고 보수가 틀린 것인가? 옳고 틀린 게 아니라 그냥 다를 뿐이다.

  성장과 분배 문제만 해도 그렇다. 보수는 성장을 좀 더 중시한다. 진보는 분배를 좀 더 우선시한다. 그렇다고 보수가 분배를 무시하지 않는다. 진보도 성장을 간과하지 않는다. 어느 것을 우선순위에 놓느냐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를 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는 다른 것을 놓고 무조건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우긴다. 보수와 진보의 의미마저 왜곡한 채 말이다.  왜 우길까? 그렇게 세뇌되어왔기 때문이다. 지나 온 역사를 보라. 오직 흑백논리와 획일주의적 사고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위정자들과 사회 지도자들이 이런 논리와 사고를 더 이상 하지 않게 하기는커녕 되레 부추겼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기득권 때문이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보신주의자들은 상대에게 기득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알면서도 계속 다름과 틀림의 의미를 왜곡해야 했다.

  정권이 바뀐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 하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다름과 틀림의 의미가 심각히 왜곡되고 있다. 지각 있는 인사들이 아무리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가 지지하는 세력이 하는 일에 태클을 거는 사람은 곧바로 ‘적폐’가 된다. 그리고 청산되어야 한다. 문자폭탄은 기본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 편이었던 사람도 한번 찍히면 가차 없이 적(敵)으로 매도된다. 법이 필요 없다. ‘인민재판’식이고 ‘내로남불’식이다. 4~5개 지문 중 가장 적절한 것만이 정답이고 나머지는 모두 틀렸다고 단정하는 시험 문제를 풀면서 자랐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불교계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어떤 노스님이 젊은 스님에게 “청결을 중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함께 숙박하게 됐을 때 누가 목욕을 할 것 같은가?”라고 물었다. 젊은 스님은 청결하지 않은 사람이 목욕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몸이 더럽기 때문이란다. 노스님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젊은 스님은 이번에는 반대로 답했다. 청결을 중시하는 사람이 목욕할 것이라고 말했다. 목욕하는 게 습관이 돼 있기 때문이란다. 노스님은 또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이에 젊은 스님은 “둘 다 목욕할 것”이라고 했다. 청결을 중시하는 사람은 목욕하는 게 습관이 돼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몸이 더러워서 씻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란다. 노스님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했다. 젊은 스님은 한참을 생각한 후 답을 했다. 둘 다 목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청결을 중시하는 사람은 몸이 깨끗해서 목욕할 필요가 없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씻는 게 몸에 배지 않아서 목욕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마침내 노스님이 만면에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드디어 네가 답을 다 말했구나. 관점이 다를 수는 있지만 네 가지 다 답이 될 수 있다."

  보수도 진보도 어느 쪽도 틀린 것은 없다. 단지, 생각이 서로 다를 뿐이다. 틀렸다고 생각하니 서로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다르다고 생각하자. 그래야 서로 이견을 좁힐 수 있지 않은가. 그래야 상대 의견을 존중할 수 있지 않은가. 틀렸다고 단정하면 서로 좁힐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진다.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아예 모르고 그런다면 그럴 수도 있다지만, 알면서 그런다면, 그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정치권은 물론 우리 사회 곳곳의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